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48:4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편 85:10-11
말씀을 붙들고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를 기억하고 그에 따른 실현을 놓치지 않고 주의 구원을 노래한다는 것에 대해 묵상하게 하신다.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 48:4).” 말씀을 정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혜의 유산’임을 명심하였다.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
첫 월급을 탔다며 가족 어른들께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십일조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의 주께 드릴 헌금에 대해 한참 더 당부하였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주를 온전히 바라고 의지하는 일일 것인데, 이는 막연한 느낌이나 생각이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왜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리 붙들고 의지하고 준행하는 삶으로의 드러남이었다.
그래서 지혜자는 기도하였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얼마나 자주 또 아무렇지도 않게 헛된 것과 거짓말에 물들고는 하는지. 그게 보면 다 돈 때문이고 먹고 사는 일로 인한 것이었다.
적당하다는 것, 그 기준은 하나님을 알고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삶의 정도였다. 그래서 가난이 부유함보다 유익하고 병약함이 건강함보다 나은 거였다. 수시로 주를 바라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갑자기 발목이 아팠다. 아픈 다리가 아픈 것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 점점 기운이 떨어지고 힘에 부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곧이어 내가 연약함을 주께 아뢰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병원에 들러 몇 주일 치 복용할 약을 들고 왔다. 주중에 못 보다 만나니까 반가웠다. 녀석은 악수를 하자는데 포옹을 하였다.
아침에 문을 닫다 문틈에 강아지가 끼어 괴성을 지르고 자신이 더 놀래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픈 아이’였다. 새삼 인식하면서 더욱 주를 바라게 된다. 이처럼 말씀을 붙든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의 안위하심을 붙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것이 지혜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이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게 발원하여 그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당장 딛고 설 수 없는 통증으로 아찔하였다가 나의 기도는 아이가 오는 날이어서, 말씀을 전할 때 일어설 수만 있도록, 하는 정도의 간절함으로 주를 바라였다.
하나님이 어찌 하실지, 이를 저리 옮기실지 저것을 이리 두실지 누가 알겠나. 아이와 같이 있으면서 새삼 ‘아픈 아이’인 것을 깨달은 것처럼 주의 도우심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노랗게 질려 두려움에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께 기도하였다는 아이의 표현이 실감되었다. 같이 시편을 읽고 나누고 점심을 먹고 탁구를 쳤다.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장갑과 목도리를 선물하였다. 조그만 가방을 어깨에 둘러주고 이것저것 챙기고 살펴서 보냈다.
햇살 고운 글방 안은 포근하였다. 게으름부리고 있는 아내를 다그쳐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데려다주었다. 어디에 뭐가 있고, 무엇이 안 좋고, 어떻게 위험하며…. 하는 진단이 하나둘 늘어나는 나이였다. 더욱이 가족력에 암으로들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 아내는 더욱 긴장하면서도 의사의 한 마디 말에 흐렸다 개었다 그 마음이 들락거리는 것이다. 일찍 끝날 줄 알고 병원 밑에서 기다리던 게 두 시간이나 흘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우리에겐 다스리고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다. 몸의 건강이 단연 제일 가까운 일이다. 어디가 자주 아플 나이다. 모든 걸 길들일 수 있다지만 세 치 혀는 어렵다. 무엇으로 감사를 놓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7-8).” 참 두려운 말씀이다. 늘 실감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일면 나도 모르게 먼저 부정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걱정이 앞서면 원망이 먼저 이는 것과 같다. 툭,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방도가 없다. 여자로 사는 건 힘든 것 같아. 아내의 말에 어림잡아 짐작이 되었다. 이런저런 질환과 그 위험요소가 남자보다 더 많다는 데서 의사의 말을 듣고 하는 소리인 것 같았다. 하루가 그렇게 뚝딱 흘러버렸다. 오전에 아이가 왔다가고 오후에 아내 병원에 데려가고, 그러는 동안 어디가 아프고 무엇으로 두려움이 일던 마음이었다.
오늘 나를 여기에 두신 이의 목적을 늘 묵상해야 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곧 내가 오늘 주의 뜻대로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 지으심을 받았다는 논리다. 모든 만물이 그러하였다.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시 97:6).” 한 해가 이제 이틀 정도 남은 시점에서 새삼 더하시는 날들의 의미가 새로운 것이다.
티격태격 하면서 여전히 서로가 철딱서니 없는 연애시절처럼 구는 아내와의 관계가 불현듯 오묘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만난 것부터 사랑하며 이날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신비로움처럼 여겨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검사가 두 시간을 채우는 동안 막연히 차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새로웠다. 늘 보면 오늘 말씀이 이를 함축하여 설명해주시는 것 같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5:10-11).”
모든 게 주의 은혜요 극진하신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져온 날들이다. 나야말로 악을 악으로 여기지 못하고 죄를 죄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살던 사람이어서, ‘내 아들아 나도 안다.’ 하며 이르는 아버지 야곱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내가 아는 것과 주가 이루시는 것 간의 간격을 좁히며 사는 삶이 복된 것이다. 곧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12).” 이를 입증하는 것이 생활이었다. 늘 모자라고 쪼들려 없이 사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넉넉하였고 충만하여 오늘까지도 채우시고 더하시는 은총의 날들이었다.
살면서 삶 가운데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는 것의 증인으로 살아왔던 셈이다. 또한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던 날들이다. 나는 늘 어디가 아프고 힘들고, 무엇이 모자라고 답답하였다고 여겼는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시던 날들이었다(시 85:10-11). 발작적으로 아이가 보였던 두려움을 정도를 가늠하여보다 주를 찾았고, 아내의 검진에서 이런저런 염려와 우려를 두고 주께 의뢰하였다. 곧 우리의 약함이 우리로 강하게 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3).” 말씀을 소리 내어 되뇐다. 그 의미가 참 깊다. 돌아보면 지난 날 나의 모든 날들이 그러하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나는 순 엉터리로 사는데 주의 긍휼하심은 여전하였으니. 주의 의가 나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8:2).” 나를 약한 데서 강하여지게 하심이었다.
곧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우리의 약함을 통해 더욱 주께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이 참 좋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6:8-10).”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가도 주가 이루시고 이끄시는 삶을 딛고 설 때마다 확신하게 하시는 일이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나는 주로 말미암아!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5:10-11).” 그러므로 “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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