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민수기 33:55-56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시편 35:13
애굽을 떠나 올 때 같이 따라 나온 잡족으로 인하여 두고두고 고생이었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출 12:38).” 저들은 사사건건 불평과 원망의 불씨였다. 그런데 이제 들어가는 땅에서 남겨두는 이로 인하여 저들이 눈에 가시 같고 옆구리를 찌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니, 주의 단호하심이 버겁다.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33:56).”
따라오고, 남겨두고. 진을 쳤다가 떠났다가. 고단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광야길이다. 나는 이를 내 안에 따라 나온 ‘잡족’과 늘 부대끼며 씨름하는 ‘원주민’으로 이해한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늘 나 때문이다. 내가 제일 나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들들볶듯 안달은 여전하고 조바심은 다를 게 없어서 이렇게 혼자 앓다 죽겠다. 마음은 고달픈데 그것으로 주를 더욱 바라게 되는 계기이기도 한 것이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살아도 내가 사는 게 아니구나싶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와 같은 결의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7:18).” 하는 이와 같은 싸움이 연신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닌 나와 나를 몰아낼 내가 필요한 것이다. 떼어내지 못하고 몰아내지 못한 나로 인하여 여전히 나는 고달픈 것이겠구나. 설교원고를 작성하고, 천천히 걸어 점심을 먹고 오고, 나는 휘적휘적 마음은 괜찮았다. 여전히 안달도 나고 조바심도 일어 마음이 어려운데도, 어떤 평안이 있었다. 할 만큼 했다는 데서도 더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어서, 거기까지. 다음은 주가 하실 것이다, 하는.
헤어졌대.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미적거려서 정 떨어졌대. 자기가 마음 접고 먼저 헤어지자 그랬대. 생각보다 밝아. 아내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소곤소곤 아이의 말을 전하였다. 나는 모르는 척 하며 돌아누워 안도하였다. 어쩐지. 그 앨 위해 기도하였다. 이런저런 사정이야 그 애 탓이겠나. 하물며 저의 우유부단한 성격까지도 저가 스스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주께서 위로하시고 함께 하시길. 더 나은 짝을 허락하시고 저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시기를. 그리하여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 35:13).”
아내는 입을 씰룩거리며 히죽거리고 아이 몰래 웃었다. 보니 생각보다 그리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아! 하면서 체증기가 풀린 사람처럼 시원해하였다. 하긴 서로가 어쩌지 못하고 각각 서로를 쩔쩔매다 그 짐을 내려놓은 셈일 테니. 그런 거 보면 사랑이란 게 참으로 모진 것 같다가도 어처구니없이 허망하기도 하다. 나는 모르는 척 하면서도 한편으론 안도하였다. 잘 지나가고 이겨낼 것을 믿는다, 그 애나 우리 애나.
우리에게 두신 한평생이 때론 고단할 따름이어서, 떠나고 치고 떠나고 치고 진을 쳤다 허물고 쳤다 허물고 하기가 하세월이다. 사는 날 동안은 그래야 하는 것이라, 사는 집도 그렇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서도 그렇고. 나는 드러누워 TV를 보다 잠들었다. 한 시름 놓는가 하면, 또 치고 떠나고 해야 하는 길이어서. 오늘 본문은 읽는 내내 숙연하였다. 그러는 동안 숱한 사람이 죽고, 40여년 여정 끝에 아론도 죽었다. 죽고 죽어서 모두가 죽은 뒤에나 당도하게 되는 땅을 생각하면 아득하였다.
그러해서 이제 좀 나은가 했더니 싸움은 이제부터라. 몰아내야 한다. 쳐내야 할 게 너무 많다. 내 안에 여전한 아집과 아둔함에 대하여,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 가중하여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시는 오늘 말씀이 내 안을 꽉 채운다.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누구 몫이 아니라 내 몫이어서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나의 싸움이었다. 나의 싸움은 끝도 없는가싶더니,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의지할 것은 오직 주님뿐이라. 친구도 가족도 심지어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아닌, ‘주를 두려워하라. 그럼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 누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저런 와중에도 내게 두시는 마음이라니.
이런저런 안달이야 여전한데 그리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서 앞서 그리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성경의 당부하심을 알 것 같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구원의 증거다.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이 그러하고, 일련의 되어짐들이 그러하고, 누구를 향한 마음이 그러하고, 저의 들려오는 소식이 또한 그러하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은 안달뿐이라. 주가 다 하신다. 나는 그저 애면글면 속만 끓이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지만 주가 이루어 가시는 게 전부다. 진을 치고 또 떠나고 떠난 길에 또 진을 치고 고단한 몸을 누일 때마다 누가 죽고 새로 나고, 우리의 생사화복이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문득 드는 생각이 다 지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신 시간의 손길이 우리의 상처 난 마음도 위로하시고 진을 쳤다 떠난 자리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었으니. 주님이 날 위해 싸우시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시 35:1).”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조차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여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2).” 주가 상대하신다.
모든 이김은 주의 것이라. 내가 준비하고 애써 수고하는 것 같지만,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나는 이를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내 친구와 내 곁에 두시는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며칠째 인질극으로 인해 야근에 밤샘 대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아들에게도 말하였다. 네가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주가 하신다. 주가 하시기를 우리는 비로소 바란다. 다 기진하여 털리고 망가진 뒤에 하든 앞서 귀 기울여 지혜로 하든,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시 35:9).”
다들 이런저런 사연과 우여곡절로 끊이지 않는 인생이나 것도 보면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의 차이는 엄연하여서 왜 저리도 평안이 없고 고달프기만 할까? 한다고 하는데도 왜 저처럼 애달프기만 할까? 가만히 보면 여전히 그 따라 나온 ‘잡족’ 때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남겨둔 ‘원주민’ 때문이었다. 내몰지 않고 있으면 그러는 동안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눈에 가시고 이는 옆구리를 찌른다.
더하여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그리 행하심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주를 두려워할 줄 안다면 더는 두려울 게 없다고 한 아무개의 말이 참으로 옳다. 바로 두려워하면 다른 두려운 게 없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말씀 앞에 자세를 바로 하며, 누구를 생각하며 저를 위해 기도한다. 저 또한 위로하시고 붙들어주시기를.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 35:13).”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23).” 그리하여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27).” 그리하면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28).”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0) | 2019.04.13 |
---|---|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0) | 2019.04.12 |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0) | 2019.04.10 |
진영에 들어올지니라 (0) | 2019.04.09 |
복이 있도다 (0) | 201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