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민수기 35:34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시편 37:3
실은 남과 다름없이 겪으며 살지만 누군 쓰러지고 누군 일어선다. 누군 멈추고 누군 앞으로 나아간다. ‘받아들임’은 그래서 중요하다. 문제는 문제로 풀 수 없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괴롭고 어렵다. 하면 이 괴롭고 어려움은 주의 선하심을 바라고 구하는 계기가 된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우린 알 수 없다. 어쩌면 평생을 고달파야 할지도 모른다.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도 있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말이 옳게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나는 내가 알고 구사하는 말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그리 표현한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쓰지 않고 러브라고 쓰면 왠지 생소하다. 나의 말은 나의 구사(構思 앞으로 할 일의 내용, 규모, 과정을 생각함)의 세계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울면서도 그리 말할 때 나의 울음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다. 아이와 통화 후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나의 울음은 마른 눈물로 어깨만 들썽거리다 입을 삐쭉거렸다.
내가 사는 땅이 단지 내 땅이 아니라는 데서 위로를 얻는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민 35:34).” 내가 거주하는 땅이 하나님이 거주하는 땅이다. 그럼 그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을 먹고 산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3).” 하나님은 선하시다.
아이엄마와 통화하며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결국 아이가 ‘짤렸다.’ 잘린다는 이 단어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소외와 멸시와 천대를 내포하는 의미다. 그저 경영이 어려워져 그러하다며 복지관에 그리 통보하였는데 그 사정이야 모를 일이고. 장애인지원으로 급여가 지불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건 아닐 것 같고. 냉소적인 어감으로 ‘짤렸어요.’ 하는 데서 나의 마음도 서러웠다. 아이는 회사가 그런 걸 모르고 엄마나 복지관 선생이 그리 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몸이 안 좋으니까. 좀 더 다른 공부를 해야 하니까. 이런저런 변명도 궁색한 것이 아이와 통화하며 아이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가정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딸애가 찔끔 눈물을 흘렸다. 헤어졌다면서 헤어졌다는 것을 인식할 때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정들었을 테니 한동안은 어쩌겠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구는 시어머니가 결국 시력을 모두 잃었고 시아버지까지 골골하는데, 신랑은 외국으로 출장을 갔다. 친정부모는 뜬금없이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하였다. 막내딸의 납치소식에 그래도 노인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간신히 봉변을 모면한 모양이다.
다들 겪고 겪는 일이 고단하고 어려울 따름이다. 어디 교류분석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약 25000시간 분량 정도의 해로운 소리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감각에 저장이 되어 있다가 누구 말에 서럽고, 어떤 소리에 놀라고, 때론 그와 같은 소리에 화를 못 참고 분을 내고 급기야 살인을 하게도 한다. 이처럼 말이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한껏 태연한 척 아이엄마가가 근황을 설명하며 다분히 냉소적인 표현들을 쓸 때 나는 주위를 환기 시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잠꾸 말해주었다. 그러해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어떠하든 하나님은 선하시다.
수천 년 전 다윗의 입을 빌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이 말은 오늘에 이르러 나에게 영향을 준다. 곧 우리의 유전인자에는 말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우리는 말을 듣고 살았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우리는 서로 말을 하고 말로 위로를 받고 말로 상처도 받는다. 하필 아이엄마는 이번 주말에 바쁘다. 나는 아이에게 병원에 들렀다가 일찍 오라고 하였다. 성경공부하고 같이 영화보자고 하였다. 아이는 좋아라했고 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딸애는 머리와 눈썹을 한다고 했고 아내는 같이 그 곁에 있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저 같이 있을 뿐이다. 공부방으로 오는 아이 중에 누가 자꾸 엘리베이터에서 오줌을 쌌다. 누구겠다 싶었는데 영락없이 그 아이였다. 민원이 들어가고 우리는 주민들께 사과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 발각됨으로 끝이 났다. 스트레스란 무서운 것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말을 듣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복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저와 우리의 구주로 오셨으며, 오늘에 우리 또한 같은 말로 위로를 얻는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입맞춤은 정(情)이다. 환영의 의미다. 정이란 ‘느끼고 일어나는 마음’이다. 길을 가다가도 아이를 보면 깨물고 싶고 입맞추고 싶은 게 그 때문이다. 물론 함부로 그랬다간 큰일나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입맞춤이라. 저에게 ‘느끼고 일어나는 마음’이 없다면 그냥 그게 끝이 아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길에서 망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입맞춤이 없을 때 정도 없다. 저 부부는 오래 전에 헤어져 그 원인으로 아이가 그러한 것인데도 여전히 이혼도 아니고 별거도 아니고 애매하게 헤어져 산다. 그러느라 두 아이는 ‘진노하심으로’ 힘들다. 서로를 짝지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이런저런 나의 모순된 이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겠다. 결혼이란 그만큼 엄중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내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 내 땅은 하나님의 땅이다. 나는 오늘 말씀을 그리 읽는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민 35:34).” 그 땅에서 우린 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한다. 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는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3).”
내 수고와 노력으로 밥벌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주의 성실하심이었다.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게 선이다. 선을 행함이란 주의 선하심을 아는 일이다. 이를 붙들고 의지하는 것이다. 아이가 짤렸다! 아이엄마는 속상하다. 아이도 눈치로 안다. 서로 모른 체 한다. 어떤 울분을 감출 길이 없다. 죽어라 하고 열심을 다해 산다고 사는데도 사는 게 너무 어렵다. 벌써 오십 중반이라.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와 같이 할 수 있는 뭘 해야 하는데, 내가 없어도 아이가 잘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아이엄마의 말이 흔들리는 전철 소음으로 울먹거리듯 들렸다.
어디쯤일까? ‘때가 차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우리는 알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결정을 내려주시네요. 저도 언제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엄마의 말을 듣고 있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때가 차매 결국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주의 자녀이지만 그 삶이 고달프고 또 시달리는 것은 남들 다 겪는 저마다의 고충이겠으나 우리의 특권은 엄연하여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기본을 놓지 않고 의지하는 것이다. 더 좋은, 더 선한 길로 인도하시려고! 나는 온 마음을 대해 그리 말해주고 싶었고 그리 아는 게 다였다. 왜 또 그런 일을 주셨는지, 아무리 애써도 왜 자꾸 사는 게 이처럼 어렵고 힘들기만 한지. 나는 시원하게 말해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선하시다. 어떠해도, 선하시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시 25:8).” 그렇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무엇으로 위로하고 어떤 확신을 더해 위로해줄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더 좋은 길로 인도하려 하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다. 나는 아이엄마에게 거듭 강조하였고, 가정예배를 드리다 마무리 기도에서도 그리 말하였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이 길 위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먹고 삽니다. 주의 땅을 더럽히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37:3).”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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