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신명기 1:33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시편 39:9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마음이 어렵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자신을 웃어넘길 줄 안다. 오히려 누굴 위한다. 그 마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그리 되는 마음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말해 봐야 소용없는 자 앞에서 내 입에 재갈을 물린다. 잠잠하여 선한 말도 않는다. 그랬더니 근심이 더 심하다. 내 마음이 뜨거워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 불이 붙는 것 같다.
나의 연약함만 여실히 드러날 따름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33-34).” 말씀 앞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 아이는 전에 다니던 교회 청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좋아했다. 혼자 성경공부를 하고 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 교회 처지가 남은 아이에게 미안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좀 큰 교회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혼자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생각하기는 감정과 이성이 혼재한다. 안쓰러움으로 저의 영혼을 위할 수는 없다.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럭저럭해도 그러는 게 좋은 것이니 그걸 뭐라 탓할 일은 아니겠으나 새삼 나의 빈궁함이 미안하였다. 그래서 다들 큰 교회를 꿈꾸고 더 큰 교회로 도약하는 것이겠으니. 뜬금없이 이 말씀이 연관이 되어온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뭘 많이 해줘야 하는 건 아닐 테지만,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는 아이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혼자 남아 성경공부를 하던 아이를 생각하였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3).” 오늘 말씀이 나를 붙드신다. 나보다 먼저 앞서시고 길을 밝히시며 지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묵상한다. 나로 여기에 세우신 이가 나로 이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면 오게 하시는 이도 가게 하시는 이도 한 분이실 것을. 나는 다만 내게 두시는 한 영혼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겠으니.
이것저것 할 말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큰 교회는 또 큰 교회를 통해 이루시는 주의 섭리와 그 가는 길이 있는 것이고, 나는 다만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말씀 앞에 앉아 입을 다문다. 생각하기는 종종 나를 멍들게 한다. 누가 때려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한다. 어디서 읽었는데 저는 우상을 ‘사람의 생각을 투영한 존재’라고 정의하였다.
그게 옳다고 여겨지는 무엇이다. 신념이든 아집이든 또한 그리 행하는 일이 숭배이겠다. 단지 하나님을 개념으로 놓는 일도 그와 같다. 너무 멀고 귀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고 다가갈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떤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나의 생각을 들추신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 4:8-9).”
그게 편하고 좋으니까. 안이함은 어떤 친구보다 가깝고 허물이 없다. 내게 익숙한 무엇이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일부러 나의 마음을 흔드시곤 하신다. 아이가 보내온 사진 한 장에 마음이 어려웠다. 여러 명의 청년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였다. 저들이 어찌 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 일이다. 좋다고 여겨주니 좋은 것이어서 좋다고 하는 데야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일 테고.
기껏 예배 끝나고 아이 영어를 봐주겠다며 마음 쓰던 아이만 뻘쭘하게 남겨졌다. 괜히 미안하고 불편했다.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고 길게 말하지 못하였다. ‘아픈 아이’로 여겨 우리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였다. 덕분에 아이와 둘이 앉아 에베소서 3장을 읽고 나누었다.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관여하시며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나타난 일들이 보이기 이전부터 주의 경륜에 따라 계획되고 실행되어 비로소 오늘 우리에게 맞닿은 것이었으니. 우리도 다만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결코 우리가 주목받는 생이 아니다. 다만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그러니 나의 시름도 어줍기만 하여 하나와 둘 사이에서 힘에 겨울뿐이다. 그런 큰 교회 수백 명을 상대하는 차원의 일과는 다를 것이니.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주의 뜻을 바람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다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7).” 그저 나는 내 몫의 복음을 전할 뿐이다. 내가 누굴 오게 할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영생을 얻게 할 수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믿음을 설명할 때, 믿어지지 않는데 믿어지는 신비라고 하였다. 믿음은 결코 내 이성과 이해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믿어지지 않아 몸부림치는데 믿을 수 없는 그것을 믿고 있으니 그게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복음이란 그렇듯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18-19).” 우리 안에 두신 ‘알 만한 것’이 귀한 보배였다.
누가 내게 물으면 나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20).” 나는 아이에게 이와 같은 대목을 설명하였고 왜 우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하는가하면 그 믿음은 나의 신념이나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믿어지는 일이어서 신비할 따름인 것이다.
곧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신 1:29).” 내 곁에 나보다 더 커 보이는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다. 주눅들 것 없다. 하나님이 먼저 가시며 날 위해 싸우실 것이다(30). 곧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31).” 이 일을 믿지 않는 데야 별 수 있겠나? 다만 분명한 것은,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33).”
부디 나의 믿음이 또한 신앙이 어엿하기를. 어엿하여서 나와 함께 가는 아이에게 증거가 되길.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주 앞에서 굳건하기를. 의연하여 주만 바라기를. 누구에게 두는 마음이 내 것이 아니어서 오롯이 주의 마음으로 주의 사랑을 가지고!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그러므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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