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신명기 31:6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편 69:30-31
긴 하루였다. 마침 아이가 복지관에 가는 날이라 오지 않았다. 새벽 일찍 응급실로 갔다가 운영을 하지 않아 돌아왔다. 오전에 일찍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위내시경과 종합 검진을 하였다. 어깨와 허리도 엑스레이를 찍었다. 척추분리증 뭐라 하면서 척추 끝과 양쪽 다리로 이어지는 무슨 뼈가 끊어졌다고 했다. 더 어그러지면 수술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만 하였다. 어깨는 힘줄이 끊어진 것 같다며 엠알아이를 찍자고 하였다. 너무 비싸 다음으로 미뤘다. 위는 깨끗하였고 경련이 이는 건 단순히 신경성이라고만 하였다. 이래저래 나은 게 없었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신경을 쓰긴 내가 무슨 신경을 쓴다고! 쓴다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저들에겐 우스운 것일 뿐인데! 공연히 심통이 난 사람처럼 터덜터덜 걸어서 글방으로 갔다. 아이가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실습을 끝내고 직업훈련장으로 간다며 카톡을 했다. 저는 내게 두시는 위로라. 나로 하여금 쓸모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그저 격려하고 응원하고 말동무가 되는 것밖에는 없으면서, 그래서 아이가 안 오는 날에 이처럼 야단법석을 떨어 다행이었다. 오후께 중1 아이가 일찍 왔다. ‘장애인의 날’ 글쓰기에서 우수상을 탔다며 상장을 내보이고 으쓱하였다. 시원한 물을 내주고 비스킷을 주며 축하하였다. 내게 두신 아이들로 족하였다.
아이는 메일을 보고 답이 없었다. 대놓고 하나님 없이 평안은 없다고 했더니 할 말이 없었던가보다. 그러게, 이렇듯 신경이 쓰이는 일이야 내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나의 미천한 육신으로 나는 나를 이끌고 이 길을 가는 것이다. 나의 늙으신 부모는 더 어렵기 전에 손수 차를 운전하여 전국일주에 올랐다. 어제는 여수 애양원 교회에 들러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 되었다. 몇 개월 그곳에서 병원 생활을 하였고, 나환자촌 교회로 손양원 목사가 담임하였던 교회이다. 아버지는 올 때마다 아가서를 본문으로 새벽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감회가 새롭고 아득하였다. 그런 거 보면 다들 저마다 육신의 곤고함을 이끌고 산다. 또는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여러 환난과 고난을 이고 지고 산다. 나는 아이에게 평화는 오직 의를 심음으로 거두는 열매라고 하였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그 화평은 위로부터 온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17).” 저의 특징은 뚜렷하여서 성결과 관용과 양순함과 긍휼과 선한 열매로 편견과 거짓이 없는 화평이다. 고로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18).” 다시 말하면 의의 열매를 심어야 평화가 온다. 의는 이것이니, 오늘 아침 말씀은 이를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주어진 날을 묵묵히 사는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문둥병으로 시력을 잃고 남은 평생 장님으로 살면서 저가 택한 길은 말씀을 암송하는 거였다. 그렇게 예닐곱 명의 소경은 모여 같이 암송하며 기도자의 사명을 다하였고, 언제나 나의 이름 석 자도 저의 입에서 불렸다. 아버지는 사진을 보내고 저들 이름을 적으며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갔음을 확신하였다. 정말이지 딱 40년 전의 어린 나는 저들의 무모함이 놀라웠다. 늘 보면 웃었다. 그때는 화평이라는 말의 뜻도 알지 못했다. 얘가 어디 누구 목사님 아들이야! 하고 나를 소개하며 저들끼리 손을 휘젓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기억도 난다. 의를 심어 얻어지는 화평이라! 이는 담대히 두려워하지 않고 떨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만 바라는 일이다. 그게 소경이 되는 질병이든,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패이거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그런데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성경은 묻는다. 나는 아이에게 메일로 그 이야기를 하였다. 교회는 이제 아예 나갈 마음도 없다는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답장이 없는 건 당연하였다. 평안하지 못하는 건 의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선의 의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런 말이 저의 귀에 들릴지 안 들릴지 나는 되묻지 않았다. 구슬려 말을 현란하게 해준다고 해서 돌이킬 것도 아니라면 때론 직설화법으로 저의 영혼을 찌르는 수밖에 없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5:10-11).” 이와 같이 명쾌한 진리 앞에 붙들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저 나의 보잘것없는 육신의 곤고함 때문이라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과 사정이 곧 화평이었다. 아이가 직업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카톡을 했다. 그럼 나의 하루 일과도 정리가 된다. 어땠니? 하고 전화를 걸어 아이와 통화를 하고 위하여 기도한다. 내가 저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 같지만 늘 되돌아오는 것은 저로 인해 돌려받는 화평이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다. 이 둘은 같이 간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곧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 달라진 것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게 자신이다. 전의 내가 아니다. 전에 눈멀고 귀먹던 때를 한탄한다. 그래서 나는 메일에 썼다. 부디 나처럼 어리석은 먼 길을 돌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바울이 사울이던 때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자신을 두고 다들 몸둘 바를 모르는 게 화평이다. 내가 이룩한 성과가 아니란 걸 안다. 그리하여 우린 그 크신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아프다는 소린 서로에게 늘 구차한 게 된다. 남이 들으면 안 됐고 자신에게는 구슬프기만 한 소리다. 그런데 그것이 화평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오늘 시편 69편의 말씀은 이른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17).”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에게 의뢰할 것인가?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13).” 세상에선 구차해도 주 앞에서는 진귀한 은혜였으니, 저들의 소경됨이 그 어떤 출세와 성공보다 복됨이 아니었겠나? 나의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진 삶을 살게 하였던 것처럼. 나의 육신의 곤고함이 의를 구함으로 화평하게 하는 단서였으니,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15).” 나는 이제 주께 아뢸 수 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16).” 그리하여 확신하는 것이다. 오늘의 별 볼일 없는 나를 이처럼 주께 드림으로, 내 노래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것이 그 어떤 것보다 귀하디 귀할 것임을.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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