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전봉석 2019. 5. 16. 06:54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신명기 32:39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편 70:4

 

 

스승의 날이라고 아이가 전화를 주었다. 안부를 묻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글쓰기를 하시라, 그리 권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염려하였다. 어디서 상담을 받는 이상으로 글쓰기의 효과에 대해 나는 신뢰하고 있다. 요즘은 어디 응모할 수 있는 대회도 많고 상금도 적잖으니 동기부여가 될 거였다. 저마다 자신이 겪어온 날을 글로 서술하여 누구에게 들려줘야한다면 십중팔구 무기력에서 헤어날 수 있다. 내재된 수치심에서도 놓여날 수 있다. 말이란 자체로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누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저도 써도 될까요? 하는 아이 말에 풋, 하고 웃으며 그 말을 십 년 전부터 들었다고 일갈하였다.

 

가령 아픈 아이의 경우 매일 오면 글을 쓰게 한다. 말이 일기지만 아이는 늘 의식을 흐름대로 이끌린다. 시간과 공간의 체계를 설명해도 허사다. 맥락이 없고 주체가 혼용되어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멀다. 그럼에도 쓰는 자체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그 이야기는 엄연하게 아이의 삶이다. 느낌이고 경험이고 담고 있는 고통이다. 뭐가 뭔 소린지 나는 되묻지 않는다. 다만 그 가운데 담겨 있는 상한 심령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늘 나의 바람이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50:4).”

 

내가 똑똑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라 여긴다. 나는 아이가 어머니 걱정을 하며 글쓰기에 대해 말할 때 새로운 관심을 내 안에 두시는 것을 느낀다. 하루를 마음에 두고, 다음 날에 전화를 드려보마. 아이에게 그리 말하였던 것도 그와 같은 시간이 결코 우연으로 흘러갈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의 변화를 확신하는 일이다. 전의 내가 아닌 것이다. 은혜를 알면 알수록 빚진 마음으로 살게 된다. 이때 우러나는 고마움이란 감사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 바울 사도의 이와 같은 마음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오후께 지팡이를 짚고 산보를 갔다. 천천히 걷는데도 등짝에 땀이 찼다. 여름 같은 봄날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웠다. 아이는 복지관에서 일찍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카톡을 주었다. 같이 찍은 예닐곱 명의 사진도 같이 보내왔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나야말로 저들 모두에게 빚진 자라. 예전에 어느 장애인 단체장이 내게 말하였다. 당신은 수혜자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투쟁하여 얻어낸 결과를 누리고 사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이 났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32:7).” 저는 뇌병변으로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몸을 뒤틀며 말을 하였다.

 

우리는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간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병이 무기력증이다. 가만히 있는 일이다. 이는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6-17).” 이에 하나님을 아는 삶이란 그 가치에 투자하는 삶이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12:33).” 이를 알기에 아이와의 통화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끄심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아이의 말도 안 되는 글을 같이 소리 내어 읽고 호응하고 감탄하고 격려하는 나의 보잘것없는 관심이 그것이라. 내 소유를 팔아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드는 일이다. 말품과 발품을 팔아서 얻는 것으로 도둑도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는 곳에 보물을 쌓아가는 것이다. 누가 내게 고마워할 일이 아니라 내가 주께 감사하는 일이다. 내 영혼을 살리시고 먹이시고 위하여 돌보시는 손길이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이제 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나의 늙으신 부모의 전국일주를 응원한다.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은혜 아닌 게 어디 있었나?

 

지난 날 우리의 가난도, 몹쓸 질병도, 서러움도, 고단한 발길도 돌이켜보면 그리 행하신 데 따른 주의 은혜였으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누가 나를 측은히 여길 때 나는 나의 측은함으로 주의 은혜를 누린다. 허리가 어떻고, 어깨가 어떻고 그래서 앞으로 뭐가 어쩔 것이란 염려나 근심에 대하여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평안이었다. 더는 내가 뭐라 일러 어찌할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하여는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놓아두자. 당장 내 곁에 두시는 이 아이 하나로 족하였다. 저 아이와 아이엄마의 사연이 기도제목이었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리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지 자꾸 내 힘으로 어쩌려고 하니까 속이 뒤집어지고 안달복달 위경련이 잦은 것도 불충이라 여겨졌다. 이 또한 내게 두시는 일이라면 나의 나약함으로 주를 더욱 사모함이라. 오늘 말씀을 그리 다시 되새겨보면,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32:39).” 능히 주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주가 다스리신다. 비록 늘 저조하고 더디고 볼품없는 결과일 뿐이지만,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70:4).” 그리하게 하시려고!

 

오늘 내게 두시는 나의 모든 송구함까지도 주를 향하게 하신다. 별 것도 아닌 일에 긴장을 하면 속이 볶이고 설사를 하고 두려움이 밀려들어 불안을 가중시키지만 나의 평안은 그와 같이 치대는 현실 중에서 얻는 것이었다. 보면 늘 한결 같으세요. 걱정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분 같아요. 누가 와서 나의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과 함께 그렇듯 말할 때 나는 민망하다. 누구보다 아등바등 치미는 조바심에 몸서리치며 사는 사람인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나는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며 한 시도 주가 아니시면 살 수가 없는 사람인데.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32:47).” 화평케 하는 자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름 하는 자였다. 하나님 없이는 평안이 없다.

 

내가 아는 세상은 온통 불행뿐이다. 저마다 행복하기 위해서들 기를 쓰고 살고 있지만, 그 수고가 고단할 뿐이다. 다들 요지경이라 뭐라 한들 들리지 않는 소리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부디 나에게 들리는 것을 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나에게 보이는 것을 저들에게는 들려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저의 긍휼하신 사랑하심을 알려줄 수 있다면.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36).” 고로 다만 주께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70:1).” 다른 길은 없다.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