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전봉석 2019. 5. 17. 07:08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명기 33:29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시편 71:14

 

 

지갑을 또 어디에 두고 왔다. 새로 준 텀블러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였다. 충동적으로 옷을 샀고 그것을 도로 환불 받으려다 무안을 당했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교차했다. 기분은 가라앉았고, 무슨 말인지 횡설수설 엉뚱한 소리를 이어갔다. 글은 장황하여 서로 교차하는 내용이 없었고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나는 일부러 자신을 좀 이겨보자.’ 하는 주제로 글을 하나 더 써보게 하였다. 그러자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뒤적였고 음악을 정리하며 바쁜 척 딴 짓을 하였다. 모르는 척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녀석은 눈치를 살피더니 다 썼어요, 하고 글을 올렸다. ‘사람을 사랑합시다.’ 글은 그 한 줄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러는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싶어 속이 더 울렁거렸다.

 

그럼에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서로 덕을 세우기를, 이는 주께서 내게 두시는 은혜이다. 오늘 말씀은 나를 일깨우신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33:29).” 나만큼 구원을 얻은 자가 누구며, 주는 나를 돕는 방패시고 주는 나의 영광의 칼이시다. 내 안팎의 대적을 복종하게 하신다.

 

아이와 약속대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대화는 어려워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하였고 어디 글을 적어 보내 상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지난주엔 멀리 사는 아들네 집에 손수 차를 몰고 딸애와 같이 다녀오기도 하였다. 나와 같은 병명인 불안장애였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힘에 겨워하였다. 나는 나의 이런저런 일상을 들려주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도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럼에도 움직이는 게 일과이고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사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다 알지만 그래서 못하겠다는 게 무기력이었다. 무력감은 불안을 끌어안고 예기불안을 허용한다. 누가 들으면 헛웃음만 날 소리지만 그것으로 꽤 긴 세월을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들 딸 모두 가르쳤던 선생이고 같은 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대화는 불편해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하자고 하였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71:14).” 그러니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구나! 구구한 형편이야, 그것으로 아이를 마주하고 이런저런 사연을 접하며 위로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다만 주께 소망을 둔다. 내가 저이 마음을 바꿀 수도 없고 그 상태를 호전시킬 수 없으며 낫게 하고자 마음을 쓰는 일도 아니었다. 다만 오늘 내게 두시는 일이다. 나는 또 금세 까먹고 엉뚱한 소릴 하는 아이를 만날 것이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면서 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성경공부를 할 것이다. 같이 식사를 하고 어디 어떻게 잘 다녀왔는지 살피고, 또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면서.

 

일흔 번씩 일천 번이라도 하고 또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 왜 그러고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더하라! 주가 주신 날 동안 주가 맡기시는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는 것이다. 1 아이는 몸을 비틀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느라 용을 썼다. 그럴 거면 하지 마! 하고 쫓아내고 싶지만 아이도 아이 스스로 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스킷을 주고 시원한 물을 한 잔 건네며, 더하고 더하는 마음이 나에게 바라시는 수고가 아닐까? 그리 생각하였다. 믿음으로 끝이 아니다. 덕이 있어야 한다. 그 덕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절제를 얻는다. 내가 아는 나의 노력으로 이룰 일이 아닌 것이다. 인내가 필요한데 인내는 곧 경건의 연습이었다. 저를 사랑하는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믿음도 덕도 지식도 절제도 경건도 우애도 비로소 사랑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었으니!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할 수도 없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아이를 낫게 하거나 호전케 할 수는 없다. 누구와 통화를 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누는 일에서도 내가 애쓴다고 해서 될 게 아닌 것이다. 나는 다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71:18).” 주가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내가 기력을 다하여 주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수로 고착된 저들의 마음을 흔들어 녹일 수 있겠나? 내재된 수치심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어쩐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이를 고친다고 능사가 아니고 나았다고 전부가 아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다고 한들, 죽었던 이가 살아났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대수이겠나. 주를 믿지 못하는 모든 나음은 낫지 않음만 못하다. 되레 어렵고 힘들 때가 삶은 더 간절한 법이다. 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내가 의로워서 의로워진 것이 아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 이런저런 말 할 거 없고, 내가 저들보다 나은 것은 주의 은혜뿐이다. 은혜를 입어 평안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게 은혜였다.

 

그리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3-4).” 어깨 힘줄이 끊어졌네, 허리는 척추분리증으로 늘 어디가 아프고, 걸음을 옮겨 삶을 다하는 게 고단하기만 하지만! 환난이 나로 인내하게 한다. 그 인내로 나의 인격은 주와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게 한다. 그와 같은 성품으로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이 더욱 친밀하게 다가온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돌아보면 저 까마득하게 어릴 적, 식구가 같이 살 집이 없어 셋방을 전전긍긍하면서도 주를 바라는 나의 부모가 그 믿음을 온전히 지켰음으로 마땅하였다. 성북구 어느 건물 옥상에 임시 가옥을 짓고 화장실도 없이 살았던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도 주일이면 찬송과 말씀이 이어지고 형제 우애에 사랑이 더해졌으니 감사하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에도,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나는 그러하였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나는 가만히 인정하고 수긍한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돌아보면 항상 매순간 그러하였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어디서 함부로 여김을 받은 적 없고 누구에게 괄시와 천대를 받은 바 없었다(33:29). 모든 날들이 은혜였으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71:14).” 이제 나의 남은 날 동안에는 받은 것을 돌려주고 나누어주어 자자손손 증거가 될 수 있기를.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9, 18).” 이는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15).” 고로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16).” 단지 오늘에 이르러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17).” 하나하나 그 무엇도 허투루 나를 두신 적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19).” 다만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