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전봉석 2019. 5. 27. 07:03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 9:14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시편 81:13

 

 

우리의 생각하기는 하나님께 묻는 일이다. 주를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예수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곧 생각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성령을 욕되게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하라(10:29).” 이로써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한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32).”

 

말씀을 듣고 음미하며 삶에 이어 자신을 돌아보아 주의 은혜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참으신 이,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12:3).”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생각하기로 우리의 어려움이 우리 곁의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게 한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13:3).”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아이를 생각하는 일은 즐겁다. 가령 아픈 아이를 격려하여 영어를 가르쳐주는 아이가 아이에게 100점을 맞으면 평일에 와서 고기를 사주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마음이 갸륵하여 감사를 실현한다. 아이로 인해 모두가 감사를 실현하는 계기가 된다.

 

감사는 말로만 드려지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에서 비롯하여 삶으로 실현된다. 그래서 주신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신앙적인 행위가 된다. 맡기신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가는 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12:3).” 생각만 많고 감사만 늘어져도 추하다. 이를 삶으로 살아서 행하여지는 실현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말씀은 이를 돌아보아 그렇지 못하였을 때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9:14).” 곧 우리의 생각하기는 주께 묻는 생활이었다.

 

주께 묻지 않을 때 우리의 그릇됨은 영락없다. 그 마음은 완악해지고, 미혹된 길을 분별하지 못하며, 결국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95). 그러므로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8).” 이에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10).” 그리하여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11).”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여 매일 매순간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다. 누가 무슨 일로 교회를 안 가기 시작했다는 둥 무엇에 의해 다른 종교를 찾았다는 둥 하는 소리는 모두 똑같다. 주를 생각하기를 그치면 마음은 완악하여지고, 삶 가운데서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며, 결국에 안식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81:12).”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 더러는 이러하고 더러는 저러한 것에 대해 나는 두렵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이러하여 오늘은 주를 바라고 예수를 생각할 수 있어서 은혜이다. 어떤 순간에 내가 주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누구처럼 하필 그때 은인은 만났더라면, 또는 구상하던 사업이 잘 풀렸더라면, 세상적으로 나은 결과를 구해 이를 축복으로 삼았더라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고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3:13).” 아이가 남아 같이 교제를 하고 뜻을 합하여 아픈 아이를 위할 줄 아는 게 기특하여 감사하였다. 늘 말씀 붙들고 살자. 묵상하자. 무슨 일 있으면 서로 알리고 기도하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를 배웅하며 말하였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4).”

 

오늘 말씀은 내 안에 두시는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주께 묻고 그 뜻을 구하는 일이 약해지면 영락없다. 처가 쪽 저쪽 어디, 나름 저들은 승승장구하며 사업이 잘 되는가 보았다. 사층 건물을 개보수하여 다섯 개의 점포를 삼남매가 나누어 법인으로 등록하고 운영하는가보았다. 듣다보면 절로 부럽기도 한데 나는 저들의 잘 됨이 위태롭고 도리어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러자니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려서 헤어나질 못한다.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하여 밤 열한 시까지, 그러니 귀가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까운데 오피스텔을 얻어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면서까지! ‘예수를 생각하기는 묘연한 것이다. 되레 그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미련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돈을 잘 벌면그것으로 가장 큰 축복이라 여기는 마당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3:19).” 둘러앉아 서로들 잠깐 이야기를 할 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들었을까? 성경공부를 해야 하니 그만들 일어나시라 할 수 없어 같이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도 신앙공부이겠다 생각하였다. 평생을 모아 빌라를 구하고 여러 가구를 들여 세를 놓고 임대업으로 노년을 대비한 부모와 안 믿는 두 동생이 항상 기도제목이라. 하필 그 건물 옆에 교회가 있어 밤낮없이 시끄럽고 무질서하니 그게 더욱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있었다. 또한 뭐라 전한들 자신들 주장과 생각이 강한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에 부딪치며, 오늘 우리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는 듣고 생각하여 돌이키나 누구는 이내 멀리하였다.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4:7).” 온통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주를 생각하고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시는 것이 가장 귀한 감사였다. 아이가 있는데 그러저런 말을 해서 신경 쓰이다가도 그게 공부가 되려니 하고 가만 두었다. 아이도 전에 같으면 그냥 갔을 텐데 묵묵히 듣고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나는 종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가장 귀하게 예수를 생각하는 기회기 된다는 것을 느꼈다. 평안이란 어쩔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그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예수를 생각하는 길뿐이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81:10-11).” 그러므로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13).” 이에 듣고 따름이 한정된다. 주의 백성이어야 성립이 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한껏 주께 향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신분이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1).” 그렇듯 예수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신나고 참 다행스러운 일인지!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7).” 나는 주께 부르짖을 수 있어 좋다.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