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전봉석 2019. 9. 29. 07:04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왕하 8:11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시편 52:7

 

 

우리 안의 악함을 보고 눈물 흘린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세 치 혀끝도 간수할 수 없는 게 우리들의 악함인 것을 오늘 본문은 상기시키신다. 곧 자신이 왕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어 숱한 사람을 죽이고 백성을 괴롭게 할 것을 하나님의 사람은 저를 보다 운다. 의아해하며 저는 묻는다.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왕하 8:12).” 하지만 저는 이를 부인하고 자신이 그럴 리 없다고 여긴다.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13).”

 

이어 시편은 사울의 사람 도엑이 선지자 아히멜렉과 함께 선지 생도 80여 명을 죽이는 일을 두고 절규한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52:1).” 스스로 설마하며 악을 행하는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 같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8).”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하나님 집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누가 오기로 하였다가 몸살로 인해 오지 못하였다. 혼자 글방에서 저를 기다리는 동안 로이드 존스 목사의 <승리하는 기독교>를 읽었다. 설교원고를 읽어보고 누구를 생각하며 주의 이름을 불렀다. 오면 같이 성경공부를 해야지, 매주는 어렵다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그러자고 해야지, 혼자 생각이 무르익었던 터라 마음이 허탈하기도 하였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지만 한 영혼이 돌이키기까지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만큼이나 고단한 모양이다. 오죽하니 주께서 죽어주시기까지 하여 살리셨을까! 그러므로 우린 다르다. 달라야 하고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는 세상 사람과 같을 수 없다.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우리는 이제 엄연히 육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영적인 사람이다.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마음을 비춘 사람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4:6).”

 

그러므로 어둠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으로 눈물 흘릴 줄 안다. 어찌 조금 바뀐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람이다. 결코 내 힘으로 된 게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도 내 자랑이어서 우쭐하거나 저보다 낫다고 여길 텐데, 어쩌면 저의 번아웃증후군이 기껏 오기로 했다가 마음을 도로 붙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저를 위해 생각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사람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결코 다른 이름은 없다. 다른 방도도 다른 길도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오직 한 길, 저는 나의 빛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게 끝이 아니라 저는 나의 통치자, 임금이 되신다. 그러므로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5:31).”

 

중딩 시험 때라 아내가 아이들 보충을 해주고 나와서 늦은 점심을 같이 먹었다. 늘 시끄럽고 발랄하고 유쾌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아내와 같이 동네를 멀리 돌면서 산책하였다. 딸애와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친구처럼 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득 뒤따라 걷다 혼자 아파서 힘들어하고 있을 누구를 생각하며 마음이 안쓰러웠다. 상대적으로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결코 저만도 못한 삶을 살았을 나를 이처럼 주의 인자하심 가운데 두시니,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52:4).” 말씀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8).” 이제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만이 산다. 내 안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믿음을 기뻐한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8-19).”

 

성경이 날 위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나타낸다. 저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온다고 하여 누가 올 것이라 준비하고 있다 허탈해진 마음이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주께서 내 안에 무르익게 하시려는 게 있음을. 저에게 더욱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려 하심을. 우리가 거의 30여 년 만에 만나 그처럼 급속하게 다시 교회로 저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아침마다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는 것으로 나는 이미 놀라웠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1:20).” 우리를 통치하실 것이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21).” 우리의 머리로 삼으셨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2).” 말씀을 따라가며 묵상하는 일이 위로였다. 큰 힘과 능력이 되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

 

오면 같이 에베소서를 같이 읽으며 시작할까, 하고 있었다. 아내와 딸애 뒤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한참씩 그를 생각하였다. 안 됐고,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종종 가슴이 먹먹하다가도, 그런 가운데 주의 인자하심이 저를 더욱 온전히 주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이처럼 생각하고 또 아파하고 울 수 있는 게 우리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일까?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나도 모르게 나를 의식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왕왕 느끼는 일은 쉰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익숙하지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저는 어떠하겠나? 누굴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태국여자라.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도 하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이가 저를 거절하고 그의 마음을 어히려 불쾌하게 받음 모양이니 그 속이 또 오죽할까. 나는 자꾸 혼자 생각하다 헛발을 딛곤 하면서도, 어쩌겠나? 마음이 그리 가게 하신다. 그리 두게 하시는 마음으로 나는 자꾸 주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주의 인자하심이 아니고는 어찌 감당이 안 되는 세월이다.

 

그러할 때 가장 두려운 일은 자기가 자신의 힘을 의지함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52:7).” 도엑이 괜히 도엑만 도엑이겠나? 우리 안의 도엑은 숱하고 숱하여서 임기웅변으로 살고자 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8).”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을 의지하자. 나는 저에게 문자를 그리 보냈다. 몸조리 잘하고 늘 말씀 붙들고 살기를. 그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