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전봉석 2019. 10. 1. 07:14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왕하 10:10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시편 54:4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아합의 남은 자손들까지 예후는 모두 죽였다. 이는 예언의 성취이다(21:24). 그렇다고 예후가 주의 사람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저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내버려두어 백성이 예루살렘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예후는 이를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라 권력을 도모하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었다. 어쨌든 거슬러 올라가 아합에 대한 예언으로 70명의 왕자들이 죽었다. 이러한 내용으로도 알 수 있지만 목숨이란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지.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03:15).” 그러므로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40:6-7).”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죽음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참으로 그렇지 않은가. 건강? , 명예, 권력 그 어느 것 하나 나에게 확실하지 않지만 오직 죽음만은 누구도 어느 누구도 마다할 수 없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 차라리 풀과 꽃은 이듬해에 다시 피고 자란다 하나 인생은 죽음으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 사람은 죽음과는 별개의 존재여서 영적인 존재다. 어떤 사람도 개와 돼지로 비유할 수 없는 것은, 짐승은 죽으면 땅으로 내려가나 사람은 그 영혼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선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으로 시작이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존재이다. 이는 믿는 자이나 안 믿는 자나 모든 인생은 동일하다. 누가 누굴 죽이고 그 권력으로 어찌 권세를 누렸다고 해도 결국은 저도 죽는다. ‘죽음만이 확실히 내 것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의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런 진리는 없다. 우리는 결코 무()에서 왔다 무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죽음은 하나님이 이루신 게 아니다. 경고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7).” 그럼에도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이를 억울해한들 의미가 없다. 아담의 죄를 가지고 우리는 태어났다. 그런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저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이였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는 우리의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다시 복원하시는 의이다. 죄로 인해 육신의 죽음이 우리 모든 인생을 풀과 꽃과 같이 죽게 한다. 하지만 이제 더 끔찍한 죽음이 남았으니 영원한 죽음이다. 이는 죽음 너머의 죽음으로 지옥이다.

 

누구와 통화를 하고 친구하기로 했다. 저에게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제안하였고 그럼 고맙죠, 하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토요일에 함께 나눌 말씀으로 죽음을 화두로 정했다. 이 땅에서 어찌 살든, 어떤 신분으로 얼마나 행복을 누리며 어떻게 잘난 사람으로 살든,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젊어서 죽든 늙어서 죽든 모든 인생은 죽음을 꺼려하고 마치 자신은 죽지 않을 사람처럼 기를 쓰고 산다. 사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죽음 너머의 일은 한사코 외면하면서 말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16:31).” 곧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나고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또 어디 있겠나? 누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믿겠다는데 이와 같은 말씀이 믿어져서 주께 감사하고 죄를 자복할 수 있다는 것이!

 

오후께 노인이 건너와 무슨 음악을 USB에 담아 달라고 했다. 저의 사무실로 가서 음악 파일을 열어보니 지루박과 탱고와 부르스에 쓰이는 곡이었다. 묻지도 않은 말로 한참을 옆에서 설명하고, 나는 저의 말을 들으며 그 곡들을 저의 이동식디스크에 담아주었다. 노년을 보내는 동안 그리 취향을 살려 흥을 돋으며 사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데 뭐라 한들. 아내가 치매 초기를 보이고 우울증으로 종종 경고를 받으면서도 저들 모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생 다 그렇지 뭐, 하는 투다. 저의 말마따나 인생 뭐 있겠나? 사는 동안 즐겁게 살다 죽으면 끝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 너머의 경고에 대해서는 듣질 않는다. 누가 저들 마음에 억지로 믿음을 담아줄 수 있겠나? 아무리 들려주고 보여준다 해도, 마치 죽음과 상관없이 사는 인생처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것이 인생일 따름이니!

 

누구와의 통화와 노인과의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교훈이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우리에게 주신 오늘의 어려움이 값지고 복되지 아니한가? 느닷없는 아이의 공황과 또는 누구의 강박과 심지어는 고아로, 장애인으로 평생을 굽실거리듯 살았던 날들에 대해 오히려 그것이 복이라! 퇴근길에 누가 또 전화를 하였다. 자신이 너무 사람들을 의식하고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 상하고 손해 보면서까지 산 게 아닌가, 하는 소릴 하였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저들 속에서 살고 싶다는 절박함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이상하게 또 누구와 통화가 있었다. 우리가 같이 아는 누가 우울증이 와서 조모조마하다는 소리를 하였다. 다 늦게 이혼당하고 혼자 대학교 다니는 아이 하나를 두고 아이들 글짓기를 가르치며 살고 있는데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거라.

 

툭 하면 울면서 전화하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해다니 어쩌면 좋은가, 하고 내게 묻는 것이다. 들어보면 영락없다. 저도 젊을 때는 믿음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종종 교회를 다녔다. 지금도 가끔씩 저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가고는 한다. 그럼에도 그 영혼이 고달픈 것이다. 죽고만 싶은데 용기는 없고, 사는 재미는 없는데 돈은 벌어야 하고, 아무리 벌어도 나가는 게 늘 더 많은 터라. 이제 죽자니 혼자 남을 아들이 걸리고, 살자니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듣다보면 점입가경이라. 나는 통화를 하며 친구에게 네 곁에 두시는 영혼이라! 기도하며 잘 돌보시게! 하고 권하였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예언의 성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누구는 저로 인해 그 후손이 몰살당한 것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인류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16).” 모든 말씀이 응하였고, 예수님도 이를 따라 오셨으며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셨다. 나는 누구에게 아침마다 말씀을 보내면서 말씀 붙들고, 말씀만 의지하고 살자는 말을 계속 되풀이 한다. 이는 저에게 당부하는 말이면서 나 자신에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남들이 어떠하든,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고 해대든, 모두가 정신 나간 세상살이에서 그저 사느라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죽음과는 상관없이 사는 몰골로 살아가는 형국을 바라보며!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3:5).”

 

이제 나의 남은 날 동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9:6).” 주를 경배하고 주께만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이는 죽음 너머의 영생을 위한 일이었으니, 누구와 통화를 하든 또는 만나든, 함께 곁을 같이하며 동행을 하든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115:1).” 그리하여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54: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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