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욥기 38:41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시편 66:5
저들처럼 주께서 일일이 말씀하신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욥 38:41).” 곧 오늘 날 이 땅의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모르시고 계신 게 무언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어느 것도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1).” 이에 대해 오늘 시편의 표현은 간결하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시 66:5).” 와서 보라, 하신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새삼 경이로울 따름이다. 속속들이 다 드러나는 가운데 이단의 면면이 까발려지고, 교회들의 안이하였던 모습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하시는 이가 누구인가? 와서, 보라.
이러할 때 우리의 자세는 극명하였다. 근신을 지키는 것,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잠 3:21).” 나는 지금의 이 현상이 무엇에 대한 징계나 심판의 의미가 아니라, 자녀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 같다. 그리하여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는 것이다(5:2). 그러할 때 우리의 무장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마음을 강하게 먹고 구원의 투구를 쓰자. 진리의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다(엡 6:14-17). 그러할 때 우리 안에 생겨나는 감정은 오래 참음이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사람에게나 사태에서나, 자신에게나 모든 사람에게서 오래 참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아는 까닭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 66:20).” 오늘 말씀을 오래 음미하고 입 안에 머금는다. 그 하나님이 나를 보전하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나는 이처럼 말씀으로 나를 덮는다. 아이가 오지 않아 종일 혼자였다. 날은 궂어 몸은 어디가 아픈데, 아픈 것도 일이라 그러려니 견딜 만도 하였다. 토요일에 성경공부를 오는 친구는 한두 주 오지 못하게 하였다. 서운해 하는 것을 그리 선을 그었다.
우리의 감정은 여러 모양이라 일일이 대응할 게 못 된다. 그래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마음 굳게 먹고 허투루 굴지 말며 은혜를 바랄뿐이다. 굳세어라(사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신 7:21, 31:6). 저가 말씀하시길,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8).” 내 앞에 가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신다.
아이는 어디 취업이 되어 3월 9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되었다. 다음 주까지만 평일에 글방에 온다. 마음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서운하고, 개운할 줄 알았는데 염려가 앞선다. 것도 ‘정식 근무’라 하루 종일 매여 있는 일인데 잘할 수 있으려나싶은 우려도 걱정도 있다. 그러면서도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 참으로 오묘하실 따름이다. 코로나 사태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또한 주가 다스리실 것임을 안다. 다만 나의 자세를 염려하는 것이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나이 들어 로마 감옥에 갇혀 곧 죽을 바울은 그리 당부하고 있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말씀을 분별하게 하시기를. 주 앞에 나는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기를. 그 인정된 자로 드려지기를. 아이의 소식을 듣고 어떤 감사와 불안이 동시에 일고 고마움과 서운함이 덧붙어서 생겨날 때에 주가 주시는 말씀이라.
내게 가장 달콤한 유혹은 ‘다른 일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일이 아니고 ‘다른 데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러할 때 그 모든 일을 맡기시고 주도하시고 간섭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주목하게 하신다. 내가 택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었으면, 다른 곳이었으면 하는 따위의 마음은 은근한 불신앙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유구무언이라. 내가 한다고 한 일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여기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로 나는 묵묵해야 할 뿐이다. 상황이 어떠하든 주가 주시는 일이라. 나는 다만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아야 맞다. 내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가려지고, 내가 보이면 하나님이 숨겨진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나는 이 일이 마음에 안 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아 신음할 때도 있지만… 이를 주가 더하신 일이라. 부득불 내가 할 일임이다. 아무도 오지 않았고 어디를 가지도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때론 무료하고 답답하여도 그래서 유익일 때도 있다. 아이가 못 온다고 해서 아내에게 연락을 할까하다 그냥 두었다. 가끔씩 모든 게 정지된 듯 여겨질 때도 있지만 자라가는 뿌리의 일을 어찌 볼 수 있겠나? 다만 내 안의 소망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아이 일로 마음이 시원하다 섭섭하다 걱정되다 축하하다… 여러 갈래의 마음에서도 주께 감사할 것뿐이다. 이 모든 일이 주께 있음은 나로 하여금 다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하는 일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결국 주께서 값지게 여기시는 일은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이지, 나의 결단과 나의 의지로의 마음이 아니다. 주가 맡기시고 행하게 하시는 일이지 내가 하는 어떤 노력이 아니다.
철저히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게 오늘의 내 일이다. 나는 어제 혼자 있으면서 생각하였다. 가만히 십자가를 바라보고 일련의 사태와 그로 인한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이래저래 나타나는 현상들을 가만히 내려놓고,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나는 다만 주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라. 그리하여 나의 생명도 나눔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누가 내게 글을 쓰냐고 물을 때 나는 내 글을 쓸 마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주가 두신 자리에서 주께서 감당하게 하시는 일로 다였다.
그러할 때,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시 66:1).”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개인적인 체험을 묶어 책으로 낸들? 그래서 누구에게 읽혀 주목 받는 생이 된다 한들? 나는 어제 누구에게도 말하길, 숨겨져야 하고 나는 감추어져야 한다.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나타나시기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2).” 그러므로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5).” 나는 다만 여기 있을 뿐이다. 외부로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내부에서 드러나는 마음은 내가 다스려야 한다. 내 안의 내 것은 죽고 주의 것만이 살아나기를. 나는 숨겨지고 하나님만 나타나기를.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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