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욥기 36:2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시편 64:9
전염병이 창궐하고 온갖 말은 난무하다. 엘리후의 말이 이어지면서 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넘침으로 고역이다. 일련의 사태가 연일 가중되면서 사람들은 말에 뒤섞여 떠밀려 갈 형국이다. 누구는 진영논리로 접근하고 누구는 그 와중에도 자기 잇속을 차리려 한다. 그러할 때 성경의 명제, ‘우리는 주의 백성이다.’ 이 간단하고 엄연한 사실이 우리를 붙든다.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가정예배로 드리면서 말씀으로 마음을 붙든다. ‘선한 일’, ‘자기 백성’ 앞에서, 그리고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사실 앞에서 안도하며 묵상하고 감사하였다. 우린들 왜 두렵지 않고 불안이 없겠나? 그럼에도 주신 날을 묵묵히 소화하며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 곁에 두신 이를 위로하고 말씀으로 격려하는 일!
누가 답답하다며 바다를 다녀왔다. 낚시를 갔다가 문이 닫힌 낚시터에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자 자기 동네에 전염병자가 여러 명 발생하였다며 불안해하였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버러지 같은 인생’인데 그처럼 다들 자신을 신뢰한다. 일이 닥치기 전에는 호언장담하듯 멋진 대처를 운운하다 정작 코앞에 닥쳤을 때는 안절부절못한다. 딱 그 정도가 우리 인생이다. 그에게 말씀을 보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이를 붙들지 못하면 무얼 붙들겠나? 다들 나름 자구책을 찾는 이때에 우리는 그 두려움으로 주를 더욱 의뢰하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용서가 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어찌 오늘의 이러한 사태가 은혜일 수 있을까? 이로써 주께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니! 이런 와중에 우리의 사명은 염연하였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같이 두렵고 오히려 더 병적으로 근심과 염려로 사로잡히지만 그럼에도 누구를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란,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나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나의 말이 주의 마음을 전하는 일에 소용되기를.
곧 ‘착한 행실’이란,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곧 내가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나를 드러내어 누구보다 나은 나의 모습을 과시하고 외식하는 자로 서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라,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1-12).” 오직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일이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모두가 안일하고 무관심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반응하고 앞서 공격적일 때도 문제다. 다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 생각이 옳다. 이단이 어떻고 사이비가 어떻고, 이참에 저들을 박멸할 것이라 여기는 일보다 우리가 더욱 ‘바른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예수님 때에도 그 이전에도, 인류의 시초부터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리들은 있었다. 누구의 자랑을 들어보면 저의 오만함은 과장이 아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3-24).” 아마 오늘에도 저들은 이를 박해로 여기고 더욱 강인하여져 스스로를 순교자로 여길 판이다. 그럼 이 일의 진의는 무얼까?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경고다. 들을 귀 있는 자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에게 대한 교훈이다. 우리를 결국 합당한 자로 세우시려고,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1).” 이를 묵상함은 유익하다. 그러할 때 우리의 역할은 뚜렷해진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 먼저는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한다. 주께서는 견딜만한 것으로 더하신다. 다음은 근신하는 일이다. 함부로 나대고 누구더러 뭐라 말하기를 조심해야 한다. 저들은 본래부터 그러하다. 다만 우리는 은혜를 기다리고 받는 자들이다. 곧 오늘 이 일련의 사태가 우리로 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더욱 바라는 자리로 이끄신다. 나는 신경쇠약과 불안증세로 인해 병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의지와 상관없이 호흡이 불규칙할 때도 있고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할 때 오늘의 말씀에 주목하자.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욥 36:26).” 엘리후의 말이 맞다. 내가 어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있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신 7:21).” 나의 하나님이 더 크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크고 위대하시다. 이에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31:6).” 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가?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8).” 말씀으로 더하시는 확실한 보장이다. 어떠하든지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며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오늘 나에게도 이르신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 35:4).”
오직 하나님의 관심은 나다. 우리다. 하나님의 자녀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그러니 제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정말 하찮고도 별 볼일 없는 존재이나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돕고 붙드시고 함께 하신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10).” 나는 누구에게 이 말을 전해주며 그 말씀이 곧 내게 향하시는 말씀인 것에 감사한다. 두려움으로 불안을 호소하지만 그래서 더욱 주를 바란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54:4).” 나의 날이 주의 것이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렘 1:8).” 곧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17).” 우리의 사명은 주를 바라고 이를 전하는 일이었으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10:2).” 설왕설래 말이 많은 세상에서 저들의 방식을 배울 게 아니다. 저들은 자구책을 찾고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하늘의 주인 되시는 이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시 64:9).” 오늘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끔찍한 사태는 주의 일을 선포하고 주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은 때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10).”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0) | 2020.02.29 |
---|---|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0) | 2020.02.28 |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0) | 2020.02.26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0) | 2020.02.25 |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0) | 2020.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