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전봉석 2020. 3. 16. 07:0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 12:15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시편 82:6-7

 

 

부모의 눈에는 자식의 좋은 점만 보인다. 못난 부분에 대하여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부모님이 오셔서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와 딸애가 나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며 답답해하니까, 굳이 그렇듯 내 편을 들고 나를 두둔하시는 거였다. 딸애가 풋, 웃으면서 눈을 흘겼다. 하물며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3).” 그와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안에 두신 것이다. 아이가 오늘부터 어디 출근을 하게 되어서 이런저런 우려와 염려를 감추지 못하고, 나는 아버지께 아이를 향해 특별히 기도를 부탁드렸다. 오후께는 오래전 아이의 안부 문자가 들어오고 일련의 사태를 어찌 지내는지를 묻다가 다음 주일에 오겠다는 말에 기쁨이 더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좀 어떤지? 그래, 하는 일은 잘 되는지그동안 가지고 있던 서운함은 온데간데없고 그럴 수 있지, 괜찮다 하면서도 저를 두둔하고 있는 내 자신도 이상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때, 저의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짐작이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이와 같은 죄의 원리가 여전히 오늘에도 작동하는 가운데,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13).” 이로써 죄의 값은 죽음이 되었다. 죽음이 지배하는 땅에 살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2:21).”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보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모처럼 안부를 묻고 곧 찾아오겠다고 하면서도 어디 교회는 다니는지, 믿음 생활을 안 해서 어쩌냐는 나의 말에는 별로그러니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12:15).” 오늘 우리의 화근은 우리의 미련함으로 인한 게 된다.

 

곧 처음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 자기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라, 뭐라 한들 자기 행위가 바른 줄로 안다.’ , 그러니 선택을 우리에게 두셨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30:15-16).” 이와 같은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이것은 짐승이고 기계이다.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 지으신 게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17-18).” 나는 아이에게 이와 같은 복음의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다. 집 근처에는 어디로 갈만한 교회가 없다는 말에, 어느 교회는 너무 유명하고 크고 어느 교회는 어떤지 알 수 없어서 꺼려지고길어지는 저의 말은 결국 싫다는 소리였으니.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그 몫은 고스란히 자기 것이다. 자신이 하려 하면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책임이란 지는 사람 것이라 선택에 따른 일이었으니, 우리는 주를 선택하면 책임까지도 주께 있다! 이를 말로다 설명하고 설득하여 돌이키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뜬금없기는 거의 2년 만에 연락이 오고 찾아오겠다고 하니 것도 내가 선택하는 일이 아니었다. 주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나는 이제 뻔뻔하게도 나의 모든 책임을 주께 돌린다. 그러자면 나의 선택은 하나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19-20).” 가만히 되새겨 여러 번 읽고 되뇌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하나도 어려울 게 없다. 실질적인 문제다.

 

아내는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 수업을 미룰지 이번 주부터는 할 것인지를 놓고 씨름하다 그 선택을 하나님께 돌렸다. 어려운 처지의 이런저런 사정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해봐야 구슬프기만 하고, 그것까지도 주께서 감당하시고 책임져 주실 것을! 그리 마음을 먹자니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어찌 하셨던가?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1:29).” 성경은 늘 한결같은 소리다. 무서워도 두려워도 말라는 것이다. 먼저는 애굽 땅에 있을 때에 어떠했던가? 곧 내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며 죄의 종노릇하고 살 때에도,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30).” 하나님은 나의 목전에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나를 위해 싸우셨다. 또한 돌이켜 신학을 하네, 목회를 하네, 하는 동안에도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31).” 마치 아버지가 그 알을 품에 안은 것처럼 나를 안고 이곳까지 인도하셨던 게 아닌가?

 

그럼에도 또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32).” 우리는 스스로 선과 악의 기분이 되려 한다. 내가 옳다고 여기고 바른 줄 아는 마음이 늘 화근이라. 어쨌든 당국의 결정에 따라 학원들도 이번 주까지 쉴 것을 권고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자, 꼭 그러면 한 달을 꽉 채워 쉬는 셈이 된다. 아내도 마음을 그리 정하고, 우리의 뻔뻔한(담대한) 자세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라, 하는 것뿐이었다. 다시 또 카드대출로 당장 급한 것들을 해결해야 하면서도, 그럴 수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마음을 평안하게 하였다. 남들이 들으면 도리어 우리의 마음을 비웃겠으나 하나님이 없다.’ 하는 저들의 한계에 대하여는 뭐라 할 거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시라. 아버지시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33).” 주가 인도하신다. 그리하셨던 이가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을 우리는 택하였다. 그러니 요지경인 세상에서 아이의 이런저런 말처럼 교회를 가는 것보다 안 가는 게 설득력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고 믿으며 사는 일보다 없거나 보편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사는 게 편하고, 아예 없다고 말하면서 왠지 더 앞뒤가 맞는 세상의 이치라.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82:6-7).” 우리 안에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우리는 신들처럼 살아야 하는 존재이면서 여전히 사람으로 아니 사람보다 못한 짐승이나 기계처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짧은 시간에 아이에게 다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어려웠다. 다만 저에 대한 마음과 기도가 회복되어, 주님! 하고 부르면서 저를 두고 아뢰었다. 오직 한 가지 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12:19).” 그 입술은 기도라. 내가 저 아이를 위해 기도를 놓고 있으려니까 하나님이 이를 복원하시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14).” 저를 위한 것이 어느새 나를 위하여는 기도가 되었으니 다만 우리의 선택은 오롯이 주님밖에 없다. 아이들 공부방을 열고 안 열고도, 어디 취업을 하는 아이를 두고 마음을 졸이는 일도, 공황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두고 부디 그 어려움이 주를 더욱 바라는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26).”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이 함축된 말씀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28).” 여호수아의 단호한 결의도 그것이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24:15).”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8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