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전봉석 2020. 3. 29. 07:09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잠언 2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처음에는 분노하여 표적을 찾아 저들에게 원망을 퍼붓는다. 그러다 차츰 시들해지는 분노감정은 우울감과 불안으로 바뀌면서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누구와 통화하다, 저는 다음 주 화요일에 정신과를 예약하였다며 그런저런 사정을 말하는 데 짐작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것을 불안해하지 말라고 이른들 불안이 해소되겠나. 이를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일련의 증상은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취약계층 특히 혼자인데다 장애가 있고, 미래가 불투명하여 염려는 단순히 불안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오늘의 이런저런 상황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그 일을 숨기시는 데 따른 의아함은 걷잡을 수 없다. 이에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25:2).” 우리는 살펴 주를 더욱 바라는 것. 나 또한 이를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드는 감정의 변화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처방은 하나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95:2).” 마치 욥의 고백처럼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23:8-9).”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6).” 우리는 누구보다 주를 잘 안다.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7).” 이 일련의 사태를 주도하시는 일의 목적을 헤아린다. 그러할 때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좌절하였다가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 괜히 나는 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기도를 약속하였다. 내가 좀 온전해서 찾아가보기도 하고 이럴 땐 같이 좀 있어주면 좋을 텐데.

 

불안이 엄습하여 나의 약한 믿음을 흔들어대기 일쑤이니, 그저 안타까움으로 기도밖에는 달리.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95:3).” 궁극적으로 우리의 고백은 하나이다. 또 누구와 통화를 했는데 저도 혼자라. 박봉의 사역자로 근근이 생활하면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말이 사역이지 행정 간사로 교회 일을 하면서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교회의 전반적인 일을 살펴야 하는 것이라, 그런 저에게 그럼에도 감사하라고 말하기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우리의 이런저런 처지를 주께서 과연 모르시는 것일까? 왜 주님은 뒷짐 지고 나 몰라라 하시는 것만 같을까? 나름 주를 의지한다고 의지하는데 얼마나 더 의지하고 견뎌야 하는 일일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11:1).” 나는 오늘 함께 나눌 설교원고의 본문을 되새기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저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뭐라 하기에는 너나 잘 하세요!’ 하는 소리를 들어 마땅한 처지에서 나는 누구에게 말로써 권면하기가 가장 어렵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25:11).” 그러다 저들의 염려를 받기에 이르고는 하는 처지라, 소위 말해 내 코가 석 자라. 나 역시 불안에 시달리며 가족들도 모르게 평소보다 약물을 더 의존하고 있고 심지어는 내주에 아예 어디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인데, 주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54:4-5).” 말씀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이는 나를 지으신 이가 내 편이시라!’ 오늘의 이 처지와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주심이시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누구의 사연을 더하시고 저로 인해서 또 그 무게에 눌려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나에게,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6).”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함께 하시는 주의 은총은 가만히 통화를 끊고 갑자기 밀려드는 서러움에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울먹거리다 주를 바라게 된다. 주를 바라면 바랄수록 거의 잊고 지냈던 아이들까지 떠올리게 하시고 저들은 어떠한지 주께 아뢰게 하시는 일이었으니,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7-8).” 이런저런 오늘의 어려움이 우리로 더욱 주의 자비하심을 마주하게 한다. 그러할 때 나는 나의 자세를 생각한다. 비록 이 사소한 안타까움과 변변찮은 답변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말로 위로 하고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주의 말씀을 권하는 일에 있어, 내 코가 석 잔데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인데그런데도 저들의 말을 듣고 저들의 토로하는 말로 주님을 부른다.

 

아,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25:13).” 과연 나는 주께 충성된 종일 수 있을까? 추수 날의 시원한 냉수는커녕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목이 메는 종은 아닐까? 그래놓고는 오후께 돌아와 겁에 질린 사람처럼 뉴스를 보다 돌리고, 조심 또 조심 마음을 어르고 두려움을 달래면서 잠을 청하고는 하였으니. ,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3).” 어째서 오늘과 같은 일련의 사태는 이어지는가?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4-5).” 단련하신 후에는 자신이 정금 같이 나올 것이라 고백한 욥처럼 나를 장색의 쓸 만한 그릇으로 삼으시려고 나에게서 찌꺼기를 제하시고, 오늘 맡기신 이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사역이나마 충성하게 하시는 것이었으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11).”

 

주께서 나의 입에 은혜를 더하시기를. 곧 오늘 내가 겪는 일련의 코로나 블루증상이 그저 헛되이 병명으로나 쓰이다 마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게 이것뿐이라! 이것으로도 주의 쓰심에 합당하여 부디 주인에게 시원한 얼음냉수 같았으면. 염치도 없다, 나는. 그냥 괜히 누구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들으면 미안하고 속상할 따름이다.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고 그 와중에 도리어 내가 저들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는 신세일 따름이다 보니, 나를 볶아대는 마음이 문제이다. 공연한 미안함과 면구스러움은 그래서 덕이 되지 않는다. 못 하는 것은 못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만큼 해야 하는 일에 충성하는 것이 귀하였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28).” 내가 비록 의료진처럼 뛰어들거나 아무렇지 않게 저들을 심방하고 뭔가 다른(?) 건재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한다 해도, 그래서 주를 바라는 일. 그래서 더욱 주의 말씀으로밖에 달리 의지할 것이 없어, 기도밖에는. 것도 안타까워서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러워하듯 울먹거리는 정도이지만.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95:1).” 오늘 아침 시편의 노래는 나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2).”

 

누구에게 말해주기도 아무리 어떠네, 해도 네게 또한 감사할 게 많지 않냐? 빚이 없으니 당장에 갚아야 할 부채로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그동안 모아둔 것도 좀 있으니 얼마 동안은 먹고 사는 데 어려움도 없고, 기술이 좋으니 곧 사태가 수습되면 어디 일자리가 곧 생겨날 수밖에 없이 금값은 치솟고 있으니이런저런 염려 가운데서도 감사를 찾자. 감사함으로 나머지 것들을 덮자. 우리에게 가장 감사한 것은 어쩌니어쩌니 해도 주께 아뢰고 주를 바랄 수 있는 믿음을 주시지 아니하셨나?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3).” 오늘 이 시편의 말씀도 그것을 상기시키며 무엇을 붙들 것인가? 되묻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저에게 할 수 있는 말로 위로를 하였지만 주의 영이 저들을 마음을 위로하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