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잠언 26:12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시편 96:9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죄를 깨닫는 것은 죄책을 느끼는 가운데에서 일어난다. 바울은 이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종종 나는 내가 참 뻔뻔하다고 느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이를 오늘 잠언에서는 ‘미련한 자’로 비유하며 연거푸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나는 누구의 불안을 오히려 기쁨으로 지지하였다. 주일 예배 후에 혹시나 하고 오후께 저에게 전화를 하였다. 곧 정신과를 가 볼 정도로 마음이 불안하고 어렵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말이다. 좀 어떤지, 누구나 요즘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음에 대해 설명하며 다독이는데 저는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n번방’ 사건을 보면서 자신의 기행도 그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을 죄로 느끼고 ‘마음에 찔려 이를 어찌할꼬?’ 하는 데는 우리 안에 양심이 있기 때문이고, 그 양심이 작동을 하는 까닭은 우리가 모름지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대체로 일반적이다. 한데 둘로 나뉘면서 하나는 회개하고,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7-38).” 또 하나는 분을 내고 이를 깨닫게 하는 것에 대하여 앙갚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7:54, 57-58).” 그러니 나는 저의 말을 들으며 안타까웠다가 다행스러웠다가 감사하였다.
오늘 시편의 찬송이 귀하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시 96:9).” 나는 일련의 사태에서 두려워 떨 줄 아는 것이 그래서 주를 찾고 의지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죄책의 유용한 것임을 감사한다. 그리하여 더는 그것으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는다. 더는 붙들려 다니지 않고 시달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는 죄책으로부터의 자유다. 죄의식이 없어진다거나 정말로 뻔뻔스러워져 아무렇지 않게 굴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하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우리가 누구의 죄를 사할 수 있음은 스스로의 죄에서부터 벗어나서야 가능하다.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을 때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2).” 그래서 자책하지 말라는 것은 없던 일로 하라며 ‘다 그래, 누구나 그럴 수 있어! 네 책임이 아니야’ 하는 따위의 값싼 위로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들임을 고백하게 된다.
다음은 삶에서의 고달픔으로부터의 자유다. 믿는 자의 삶은 윤택해지고 행복해져 먹고 살만하고, 모든 일에 형통해진다는 사이비종교 같은 약속이 아니다. 똑같다. 몸의 고통도 또는 생활의 빈곤함도 나아가 더 나쁜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면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8).” 삶의 여러 우여곡절은 변한 게 없다 해도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9-40).” 다른 그 어떤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을! 그리하여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더는 세상을 따르지 않는다. 돈돈거리며 살던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놓여난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내가 짊어지고 가던 것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주께 맡기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증거는 죽음 너머의 일, 곧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다. 죽음이 무섭지 않다거나 그에 앞서 고통이 아무래도 괜찮다는 소리가 아니다. 두려움과 고통은 믿음의 정도와 상관없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아픈 건 아픈 거다.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다. 다만 그래서 주를 더욱 바랄 따름이고,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더는 육신의 일에 대해 끌려다가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믿는다는 사람이 사치스러운 것은 그 믿음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성공했으니 누린다는 것인지, 그만큼 벌어서 마땅히 정승처럼 쓰고 사는 일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고가의 신발이 수십 켤레고, 자동차가 분에 넘치고, 입는 옷과 외모에 치장하는 수고가 세상 못지않고, 사는 집이나 그 밖의 모든 관심의 정도가 명품이나 유행하는 것에 연연해하면서 신앙이 있고 믿음을 운운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나는 다음 말을 못하겠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럴 수 있지’ 하는 정도이면서 저가 들어갈 천국을 과연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인가 의심해볼 수밖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그 첫 번째 반응이 나는 죄책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것과 주의 긍휼하심으로 용서함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5-16).” 자연스러운 저의 죄책이 단순히 찔려 불안을 느끼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신과를 찾고 약물을 의존하여 벗어나고자 하는 정도라도 나는 지지할 수 있다. 과감히 저에게 말하기를 마침 혼자 있겠다, 주께 회개해라. 가슴을 쥐어뜯으며 기억나는 모든 죄들을 아뢰어라. 그리하면 주께서 주시는 자유함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나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를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감히 그런 이가 누구에게 말씀을 권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한다는 일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시 96:10).” 오늘 시편의 말씀이 참 좋다.
나는 심판대 앞에 서면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런 나를 위하여 주께서 그 값을 모두 지불하셨다는 데서 송구하며 감사하고 자유로우면서 면구스럽다. 오직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6).” 하는 고백이 이제 나의 입에서도 서슴지 않고 드려지는 것이 은혜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7).” 더는 내가 어찌 해야 구원을 이루고 이 땅을 정화하며 나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따위의 광신적인 태도들 앞에서 나는 송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만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10).” 이는 두려운 일이면서 동시에 기다려지는 은혜이다. 그리하여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1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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