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전봉석 2020. 4. 2. 06:5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 29:1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시편 99:8

 

 

숨은 뜻이 귀하다. 이를 더듬어 기다리는 것이 경건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8).” 때론 자기 자신을 무엇보다 알 길이 없다. 하물며 누굴 뭐라 하고 심지어 길들이려 하는 일은 무모하고 어리석다. 모두 주의 것이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29:18).” 나의 방자함을 다스리는 일은 말씀을 따르는 길밖에 없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2:4).” 가령 누구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 열두시를 넘겨 오후가 지나는데도 연락이 안 돼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늘어져 있던 것이라, 순간 고2 아이와 다를 게 없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놓고는 어떠니, 힘들어 한다.

 

가만 보면 게으름은 최악이다. 잠언은 숱하게 이를 질타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배워라(6:6).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9).” 그러니까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10:26).” 저는 그래서 항상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부림을 받는다(12:24). 오죽하니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한다(27). 참으로 답답한 노릇은 다 잡은 것도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많은데 이를 행할 능력이 없다(13:4). 그러니 저의 주변은 가시울타리를 쳐둔 것 같다(15:19). 그리고는 혼자 괴로워하는 꼴이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19:24).”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지, 제 때에 할 일을 하지 않고(20:4), 욕망은 있어 그것이 오히려 자기를 죽인다(21:15). 그리고는 항상 투덜거리며 변명과 핑계를 달고 산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22:13).” 뭐라 하면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26:13).”

 

같은 말 같은 날의 연속이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26:14).” 누구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게 피곤한 까닭은 한 달 전의 고민이고 닷새 전의 일이었다. 도무지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26:15).” 그러니 저를 붙들고 내 이야기는 물론 누구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이--더 고통 가운데 있는 있는 누구에 대해 들려줘도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16).” 저는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10:18).” 그러니 그때마다 저를 어찌 격려하고 돌이켜 다른 길을 모색하려다가도 또 같은 말과 같은 처지의 푸념이라 할 말을 잃는다. 기껏 며칠째 위로하고 억지로라도이걸 해 봐, 저걸 해 봐, 하면서 다독였는데도 또 똑같은 소리로 오후께나 전화를 받는 바람에 나도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 내가 누굴 바꿀까? 저를 보며 나의 굳어진 영혼과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을 내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는 누구 이야기가 아니라 내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어려움을 두신다. 질곡이 없는 삶은 안일하고 게으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99:8).” 오히려 어려운 중에 주의 인자하심을 선명히 바란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9).”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로 거룩하기를 바라신다. 이를 위해 자신을 버린 바 되셨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23-24).” 고로 나는 죽어라 하고 말씀만을 붙든다. 사람으로 위로를 삼고 보람을 얻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자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저의 삶의 행적이 단순히 저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인가? 나는 도리어 찔리고 부끄러워 주께 내가 자복하게 된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날 위해 두신 이들이다.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가끔은 아이와의 통화가 짜증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내 코가 석 자라, 나 또한 안정제를 먹어가며 진정시키고 있는 판국에 뭔 소린지, 앞뒤 맥락도 없는 아이와의 통화는 마치 어린아이 어르고 달래듯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과장되게 웃고 듣고 호응해야 하는데, 전날에는 내가 힘에 겨워 몇 번을 거절하고 응대하지 않았더니 아이가 시무룩하였다. 그러니 어쩐다? 마흔다섯 누구는 아이랄 수도 없는데 늘 똑같은 푸념에 전날과 다를 바 없는 소리로, 저와 통화를 하고 나면 진이 쭉 빠진다. 그러니 어제는 전날에 우울하던 게 마음에 걸려 사람 애간장을 태우더니 오후까지 늘어져서 자고 게으르게 있느라 전화도 몇 차례씩 받지 않았으니! 화딱지가 나서2 여자아이는 매일 말만 그렇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저기 멋대로나 굴고는 하니.

 

혼자 씩씩거리고 있으려니까 말씀은 그게 곧 나다.’ 하고 일깨우신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45:22).”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끝 간 데 없는 곳까지 몰고 가시다가 나를 엎으시고 이르시기를,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29:20).” 오늘 말씀은 일갈하신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23).” 내가 뭐라고 누굴 대하고 다스리고 나무라고 가르쳐 길들이려 하였나! 하물며 나 하나도 바로 건사할 수 없는 것을,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1).”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앉는다. 그럴 때마다 그 값을 나대신 짊어지시는 주 앞에 용서를 빌고 도우심을 바란다.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하신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50:21).” 주 앞에 고함이라. 저들을 내 곁에 두신 까닭은 저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하시는 것이라. 입술로만 주를 공경하지 말고(7:6), 마치 오늘의 신앙을 여느 종교인들의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이 굴지 말고(왕하 17:41), 다만 상한 심령으로 주께 고하자.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9:25).” 오늘의 내가 언제 자격이 있는 자였던가?

 

나의 날 동안 주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99:3).”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