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사야 8:18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항상 기도하기를 우리는 주변의 예표라. 안 믿는 자들에게 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며 증거가 되는 가정이 되고 가족들이 되기를. 믿음의 자녀들답게 주의 돌보심과 다스리심이 모든 이들에게 징조가 될 수 있다. 오늘 말씀을 그리 읽는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사 8:18).” 이는 우리가 임의로 그리 여겨 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그러므로 우리의 역할은 주만 바람이다. 주를 의지하는 데서 증거가 된다. 곧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먼저는 우리의 의존성의 문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가령 누가 아이에 대해 염려하였다. 아이엄마는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기보다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다루기를 원했다. 그 심정은 알지만 거기서부터 자기의 극성이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보다 앞섰다. 내 안에는 그런 심정이 없겠나? 아내가 불쑥 묻기를 아들만 생각하면 빚진 것 같아? 하는 말이 지나가듯 스치기에는 마음에 남았다. 이는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수고와 인내로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려고 하기 때문일 거였다.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성경의 지적을 되새긴다. 범사에 주를 인정하면 그 길을 지도하신다는 것! 곧 우리는 주께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리하시는 이의 진실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어떠하든 저는 선하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고로 오직 믿음도 실력이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사 50:2).”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시 31:23).”
이 모든 환경과 사건을 조성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러할 때 우리 안에 우리의 판단과 기준은 우리 안에 여전히 맺힌 화 때문이다. 성경은 이를 분명히 하여,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 22:24-25).” 서운함과 서러움이 어떤 왜곡된 삶의 자세를 갖추게 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그로 인해 그릇 행하였음을 고백한다. 내 곁에 포진하여 있던 친구들도 그러했다. 다들 열심히라. 그것으로 성공하였다. 누군 의사가 되었고, 누구는 사업가가 되었으며, 누구는 언론사 기자가 되었고, 누구는 CEO가 되었다. 다들 억척스럽게 살아 자신을 자부하였다. 한 예로 누구는 일찍이 그 부친이 작은 모친을 두고 산 사람이라, 친모와 두 형제는 찬밥 신세였고 다만 쫓겨나지 않으려고 자기합리를 터득하였다. 이내 그것이 자기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고 이제는 자부한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우리 삶에서 서로에 대한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1).” 어떠하든 누군가는 그 뒤를 따른다. 두려운 일이다. 안중근은 말했다. 오락가락 하지 마라, 뒷사람이 그 걸음을 좇는다. 삶의 표본이 되는 것은 삶뿐이라, 부친의 폭언과 폭행이 모친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식의 삶도 변형시켜 기형적으로 비틀어버린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가 지금 바라는 가장 선명한 지혜는 분별이다. 바른 진리가 가려진 세대다. 목사도 많고 교회도 많다. 사람들은 몰리고 서로들 휩쓸려 다닌다. 그러할 때 말씀으로 신앙으로 서로가 소통하고 의사를 나누고 함께 주를 바랄 수 있는 가정, 교우,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 40:16).”
우리에게는 숨길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 97:10).”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왜곡된 마음을 또는 그릇된 세상 풍토를 미워할 줄 아는 일이다. 세상과 함께 논하는 일에 대하여는 오늘 본문이 분명히 하고 있다.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사 8:10).” 한데도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19).” 온통 장난삼아 재미로, 또는 운동이라 건강을 생각하여, 요가면 어떻고 명상이면 어떻고, 기 치료면 어떻고 재미삼아 점괘를 보는 일이면 어떤가? 다들 해이하고 안이하여 사는 게 경솔할 따름이다.
이는 모든 게 다 돈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물질은 그 가치가 일시적일 뿐인데도 돈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며, 돈으로 교만하여지고 돈 따라 서로를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거룩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끔찍하고 두려운 데서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경은 간곡하시다(딤후 3:2-5).
이를 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감사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그 무게는 한층 더해 ‘범사에’다. 어떠하든지 감사하라는 소린데 삶의 최전방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래서 엄호사격이 주어진다. 먼저는 “항상 기뻐하라(16).” 기뻐하는 일에서도 ‘항상’이 있어 우리로 어떨 때만 그리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기본전제로 알게 하신다. 그럴 때 엄호가 기도하는 것인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17).” 여기서도 ‘쉬지 말고’가 붙었다. 한두 번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다. 어떨 때 기뻐하는 일이 아니다. 간헐적으로 감사가 나오는 대목이 아니다. ‘항상, 범사에, 쉬지 말고’ 이 세 가지는 훈련에 따른 몸에 밴 삶의 방식이다. 게으른 영혼은 감당이 안 되는 말이다. 마치 군대나 선수촌에서의 규칙과 같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 이는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명령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시 75:1).” 곧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 16:36).” 오늘 시편의 말씀도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길을 제시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주가 이루신다. 우리는 그 안에서 평안할 따름이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2).”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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