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전봉석 2020. 5. 18. 06:15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

이사야 24:16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144:15

 

 

정말 오랜만에 먼 길을 나온 것 같다. 서해의 펄 뒤로 드넓게 누운 바다는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방조제를 건너올 때, 아들은 운전을 하며 사귀던 아이와 헤어졌다는 말을 하였다. 그 사연은 일일이 알 수 없으나 여자아이가 결혼을 서둘러 했으면 한다는 것과 이런저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며 헤어지자고 할 때 그러자고 했다는 말인데나는 아들의 차가움에 몸서리쳤다. 물론 그 정도였으니그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사이겠으나 좋게 여겨 잘되기를 바라던 마음이어서 그런가, 내가 괜히 서운하고 아쉬웠다. 서로들 그 속이 오죽할까싶어 더는 논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일은 그의 전부를 받아들이는 일이고,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자신의 전부를 그에게 내어준다는 일이다. 칼로 무 썰 듯 싹둑, 잘라낼 수 있는 정도라면 뭐라 한들 이도저도 아닐 것이어서. 나는 아들의 차가움에 몸서리치며 멀찍이 물러난 바다만 응시하였다.

 

대부도의 새벽 낯선 펜션에서, 창밖의 어둠이 걷히고 어슴푸레한 빛 사이로 들려오는 갈매기들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말씀을 폈다.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24:16).” 그리고 마음이 허전하다. 아들애의 이별이 내게로 전이되는가, 나는 말씀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144:15).” 주께서 이루시는 짝이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거였다. 우리는 쇠잔하여 배신하고 배신한다. 서로 엉겨 오히려 더 의지할 것 같은데, 이 땅에서의 사랑은 고되다. 말로 듣는 것과 실제 그 말의 세계는 다르다. 이러이러해서 헤어지기로 했어, 하는 말과 말 사이에는 수많은 사연과 감정들이 서로 뒤엉긴다. 그래서 말을 듣는 일은 말을 읽는 일과 다르다. 듣는 것은 수동적이면 읽는 일은 능동적이다.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어떻게 그리 간단할 수 있냐? 하고 물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시 그 말을 읽은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의 마음을 가늠하다 우울하였다.

 

대신 아내와 사귈 때 우리도 헤어져 반년을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하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그저 단순한 논리와 손익계산에 의한 게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신앙이 엉터리였어도 안 믿는 가정은 물론 신접한 조모와 집안 전체가 오만 잡신을 섬기는 온상이어서 더는 자신이 없었고 서로의 집에서 반대도 심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가만히 주의 뜻을 헤아리면 참으로 기묘하다. 죽고 못 살 것 같아 이내 서로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저쪽의 엉뚱한 길을 선호하는가 싶더니, 하나님은 기어이 돌이키셨다. 그뿐 아니라 온갖 미신과 우상단지 가운데서 저들도 돌이켜 하나님 앞에 찬송과 경배를 올리는 처가(妻家)로 삼으셨으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3).” 나는 오늘 시편의 감격을 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4).” 그러하고 그저 그럴 뿐인데,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24:17-18).” 땅의 일은 그러한데 그 가운데서 주께서 돌보심이란!

 

나는 가만히 산 증인으로 사는 일이 벅차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36:24).”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심이란,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5-27).” 이와 같은 일을 주가 이루시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부끄러움뿐이라. 순 엉터리 고집불통이었는데, 주가 살리시었다. 새 영을 부으셨다. 나를 돌이키시는 동안 손위처남의 상황을 만지셨고, 장모를 잡신의 손에서 건지셨다. 비록 아직 남은 가족들이 주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으나이 모두가 오묘한 세계이다. 비록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기 이를 데 없으나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13:19).” 돌쩌귀이나 가시엉겅퀴 가득한 밭이나, 주께서 개간하시고 뒤집어엎으실 것을 잘 안다.

 

서로 만날 사람이면 만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구는 아들의 차가움이 의아하다가도 그게 어찌 전부이겠나 싶어서. 이 땅의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분간할 길 없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이제 자식들은 장성하여 주께서 인도하실 땅으로 들어가겠으니, 다만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3:12-13).” 이 모든 변화는 주가 보이시는 세계라. 우리는 모두 고약하여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4:7-8).” 완고한 마음을 제하시기까지, 부디 너무 먼 길을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인생 그 어느 길도 가늠할 수 없는 땅에서 산다. 그러할 때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119:130-131).”

 

다만 우리는 말씀 가운데 살고 말씀 앞에 서는 삶이어서, 함께 집을 나서는데 성경책을 찾는 아들에게 기특하였다. 결국은 주께서 씻으셔야 씻길 죄의 본질이어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전혀 다른 나이다. 이 땅에서의 살아가는 형태는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하나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24:19-20).” 땅에서는 소망이 없다하나, 주께서 다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3:12).” 나는 아들애의 마음을 염려하다 사귀던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의 젊은 날 주께서 함께 하셨던 그 진하고 강한 손길을 떠올리며, , 우리 안의 주의 영이라.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57:15).” 부디 우리의 완고한 마음밭을 주께서 부드러운 옥토밭으로 가꾸어주시기를. 그리하여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144:1).”

 

새들의 지저귐이 훤히 밝은 창밖으로 소란스러운데, 나는 가만히 주의 말씀을 상고한다. 이른 아침 눈을 뜨게 하시고,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2).” 하는 고백으로 내 것이 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과 영광을모든 생은 서로에게 맡기신 밭이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오직 우리의 남은 생이 주의 정의로 행하며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를.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144:15).” 그러므로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모처럼 가족들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이 복된 시간과 여력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고 함께 하시는가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144:9).” 이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2-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