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전봉석 2020. 6. 11. 06:00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8:11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29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실 때 오늘 시편의 고백이 저절로 나온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8:1).” 그리하여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29).” 사는 데 따른 막힌 담이 얼마나 곳곳에 많은지. 이는 외부적인 요인뿐 아니라 내부적인 요인이기도 하여서 저 둘은 별개이나 떨어지지 않는다. 가령 누구의 불안감과 우울감이 단지 저의 기질의 문제이겠나? 그 주변 요인으로부터 오는 불안정이 원인이지 않겠나? 그럼 또 그 불안정은 외부적인 것으로 나와 상관없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의연한 듯 괜찮은 척 해도 나는 붙들려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누구를 의지할까? 또는 나를 신뢰할 수 있을까? 다만 주를 의뢰하고 그와 같은 적군을 향해 달려갈 따름이다. 그 힘은 내 하나님의 힘으로 그와 같이 막힌 담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니.

 

말씀 앞에 앉아 여러 생각을 하게 하신다. 누가 떠오르고 어떤 일을 마음에 두게 하신다. 이내 나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세상에 의인은 없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3).” 어느 특정한 세대, 누구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라. 누가 유튜브를 보며 저의 믿음이 온통 그리로 쏠릴 때, 더는 누구 말도 어떤 권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근거도 없고 자극적인 말과 그럴싸한 흥분으로 투자를 한다. 시간을 들이고 돈을 보낸다. 다들 유튜브에 뛰어드는 이유다. 결국 교회를 떠나고 자신만의 논리와 주장으로 무장하는데, 실은 다 저들 말에 꾐을 받은 것인데 자신만 모른다. 노인층이 많은가 했더니 30대 중반, 꽤나 공부도 많이 하고 나름 신앙의 뿌리가 건전하다는 이가 그리 되었다. 저의 적은 온통 기성교회가 되었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고 핏대를 세운다. 아무리 뭐라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48:4).”

 

나는 누구 이야기를 듣다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도 오늘의 말씀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실 것이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씀에서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11). 아니면 진리는 죽 끓듯 하고 시대마다 변하고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테니, 차라리 우리 입을 막으심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3:19).” 곧 저의 입의 말이 저를 판단할 것이다. 저의 주장이 저를 심판대 앞에 세울 것이다. 그 입의 말 값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지혜를 세상이 어찌 알 수 있겠나?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아주 매우 특별한 것이어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9).”

 

, 나는 이제 이런 말씀으로 위로함을 얻는다. 내가 아니라 말씀이시다. 내가 믿는 것이면 내 믿음을 내가 어찌 믿을 수 있겠나? 내가 아는 나는 신뢰할 것이 없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10).” 주의 영이 나를 주도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그리하여 나는,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18:29).” 하는 오늘 시인의 고백이 내 것이 되어지기를. 이는 큰일이다. 아주 기묘하고 기이한 현상이다. 내가 나를 믿지 않음으로 나의 믿음이 내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나타내시는 것이어서 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30).” 이 얼마나 크고 귀한 복음인가? 더는 누구, 어떤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되고 그를 따라 선회하지 않아도 되며, 그러는 동안 나를 몰아세워 나의 뜻을 관철하며 의지를 굽히지 않으려 기를 쓰고 떠벌이고 나대며 총질을 해대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나의 한 가지 일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

 

누가 어디 대기업 수뇌부 무슨실에 다니는데 그만큼 배웠고 가진 것도 많고 또한 모태신앙으로 신앙의 근본도 분명하였다. 그런 이가 언제부터 성경공부를 하네, 무슨 모임을 가네, 어디서 어울리네, 하는 말들이 들리더니 그 원조가 또 유튜브였다. 저들의 개별적인 방송이 저의 손에서 떠나지를 않았고 이를 신봉하면서 기껏 열심을 다하던 교회를 등지고 담임목사의 권면도 뿌리치고 오히려 교회’를 적그리스도로 낙인을 찍었다! 어디 예외적인 노인 몇이나 무리지어 그런 소리에 현혹되고 동원되어 자신들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울분의 보상으로 삼는 것이려니 여겼던 그런 방송의 힘이 이제 가히 상대할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로, 교주가 되고 신주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저이는 여태 같이 하던 성도들과 등을 지고 교회를 떠나고 나홀로 외로운 전투에 뛰어든 사람처럼 굴었다. 저의 주장은 차분하였고 논리적이었으며 나름의 확신으로 무장하였고 그것을 진리로 삼았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가지고 그 진리를 비틀어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열정적이고 뜨거운? 그 무엇으로 만들어서 지적 허영의 장식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오지 않아서 오전에 그렇게 누구와 꽤 긴 시간을 통화할 수 있었다. 저의 말에 나는 긴 한숨만 나왔다. 아무 말도 통하지가 않았다. 이른 무더위로 글방 안은 후끈하였고 아들은 공부만 하였고 나는 설교 원고 초안을 출력하여 교정을 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다들 사는 게 참 팍팍하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회가 대면 예배를 온라인으로 돌리면서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성스러운? 채널을 찾다보니 그리 만나게 된 것 같은데. 현혹하는 영의 시대다. 성경은 그런 시대에 우리를 다그치듯 몰아세우신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그러니 오늘 아침, 말씀이 나를 불러 앉히신다.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48:12).” 부디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기를. 어디 기웃거려 더 나은, 내 취향의 복음을 찾아 배회하지 않기를.

 

언제든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4).” 나는 이 아침 이 말씀이 두려울 따름이다.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10).” 고난이 나를 옳은 길로 가게 한다. 누구의 우울증이 그래서 결국 병원 치료를 받게 되면서 의기소침하고 있는데,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11).” 이 말씀 같이 붙들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하지 않으시려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도 우리를 보호하신다. 이로써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18:29).”

 

곧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30).” 말씀밖에 답이 없다. 고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