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전봉석 2020. 6. 22. 07:42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이사야 59:1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29:1, 11

 

 

죄는 특별하다. 사람의 기준인 윤리와 도덕도 죄다. 절대적인 특질을 가진 게 죄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10:32-33).” 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함께 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11:23).” 단순히 내 안에 이는 악함이 아니라 그 이상의, 하나님의 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1:32).” 그 안에 죄책이 따른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19-20).”

 

오늘 이사야서는 이를 절규하고 있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59:11).” 내가 어찌 떨어낼 수 없는 게 죄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12).” 이와 같이 주를 의뢰하는 일. 저의 도우심을 아는 것. 구하여 주를 바라는,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29:1, 11).” 시편의 말씀이 그 방법을 제시하는 듯하다.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란 내 마음에 자리잡은 죄를 인정하고 그 마음을 의탁하는 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그리하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5:19-20).” 이를 알고 앎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일. 오늘 이사야는 이를 강조하였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59:1).” 그러니까 그럼에도 자꾸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2).”

 

내 안에 내 뜻대로 이루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문제였다. 내 생각이 우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려 드는 것이었다. 단지 죄는 외적인 행위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5:22).” 이를 어찌 내 의지로 물리칠 수 있을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다른 수 없다. 이 마음을 품을밖에. 그 마음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6-8).” 결국 죄의 결과로는 사망뿐이다. 육신의 고통과 죽음으로 그치는 게 아닌 영원한 죽음이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사는 데 따른 고역이 다 그래서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7-19).”

 

본래 이 먹을거리는 거저주시는 거였다. 땅이 거저 내던 것인데, 이제는 죽기 살기로 벌어야 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거저 사는 삶이 있고 죽어라 하고 돌고 또 벌어야 하는 생은 이어진다. 나는 가만히 말씀을 음미하다 이래도 되나? 싶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느낀다. 누구는 죽기 살기로 벌고 또 버는데도 나아지는 게 없이 그 생활은 피폐할 따름이다. 근본은 죄였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주 앞에 나의 오늘의 복됨을 감사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그 상대적인 자리에 놓인 것을 감사한다. 죄인이로되 죄값에 억눌리지 않는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 1-5).” 이 구원은 주의 것이라.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이처럼 아침에 올라와 주의 성전에서 찬양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말씀을 묵상하며 되새김할 수 있는 것이 복되다. 본래 하나님의 사람은 풍족히 더하시는 은혜로 산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가장 우리를 난처하게 하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 이는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상대적으로 나의 아침은 평온하여 처음 사람 아담, 죄가 있기 전의 사람이 누렸을 법한 평안을 느낀다.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오늘의 내가 감사하다. 물론 이러한 평안은 한나절이 되기 전에 산산조각이 나고 또 다를 바 없이 돈벌이 밥벌이 먹고 사는 일에 조바심을 내게 된다. 맡아야 하는 일과 그 일이 주는 부담감으로 불안에 옥죈다. 그러나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나는 이 말씀이 참 좋다. 내가 어떠했었는지를 안다. 내 안의 죄악을 잘 안다.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59:3).” 이사야서에 기록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4-5).” 우리의 삶이 얼마나 거칠고 척박하며 전전긍긍 먹고 사는 일에 아등바등 살 길을 모색하며 사는가. 염려와 난리가 끝이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9:2).” 오늘도 시편은 그 길을 바른 데로 인도한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3).” 쉬 광풍이 일어 금방이라도 죽을지경이나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4).” 이를 앎으로 아는 데서 오는 감사는 평안이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10).” 요동치는 세상에서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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