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전봉석 2020. 6. 21. 05:59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8:7

 

 

어떤 일에 대하여 그저 그러려니 하면 답이 없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과 음성이 담긴다. 그렇다고 너무 예민하여 마치 모든 일을 임의로 해석하여 둔갑시키면, 과도하여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가장 기쁘신 뜻은 우리가 온전히 주를 바람으로 어떤 일에서도 주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7:13).” 누가 어떤 일 앞에서 당혹스러워할 때, 성경은 그 중심추를 바로 건네신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이는 만고에 진리이다. 허술한 자기 생각으로 그 이치를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그 원리를 바로 알았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15).” 인생이 어찌 내 맘대로 되던가? 내 고집이 나를 옭아맨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6-17).”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지나치게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판단도 있고 계획도 있고 생각도 있고, 이를 꾸려가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있고 노력도 있고 나름의 희생과 헌신도 있다. 그러나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우리는 주를 경외하는 사람이라. 이것이 중요하지 않고 저것이 옳은 것도 아닌 까닭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의 근본적인 자세를 바로 잡게 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58:6).”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또한 하라는 것도 아니라, 하든지 안 하든지 그 모든 것이 주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일로근본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서로 사랑하는 일이란 실제의 일로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5-47).” 막연하게 주의 일은 없다. ‘다음에도 없다. ‘무엇을 하게 되면도 아니다. 지금 있는 내 소유를 나누는 일이다. 더 모아, 무엇을 이루면, 이만큼 되었을 때 하는 따위의 자기 계획은 한 마디로 사랑할 마음이 없다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27).” 주신 바 오늘을 사는 일이다. ‘주 안에서 거하라.’ 이는 결코 제한적이지 않다. 어떤 조건의 날이 아니다. 무엇이 되면, 어떤 일이 주어지면 하는 따위의 당위가 아니다. 당장, 지금 오늘, 여기에서, 이 일에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 4:12).”

 

가령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 가족에 대하여는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내 아내, 또는 내 자식이라는 기준은 앞뒤가 다르다. 그전에 주께서 두신 한 영혼이라. 같이 섬기고 이루어가야 하는 주의 어린 양이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 데 따른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명령이다. 요즘 나에게 새로이 주시는 마음이 그것이다. 아들을 대하는 데 있어, 아내를 마주하는 일에 있어 식구니까 그저 소홀히 편히 대하면 함부로 굴기 십상이다. 어떤 아이, 한 영혼을 주께서 내게 두시는 것처럼 오늘 내게 두시는, 일이라. 사명인 것이다. 저와 함께 하는 시간, 생각, , 그리고 예배 이 모든 일은 주의 일이라. 때로는 참고 견디고 때로는 주의 뜻을 구하며 무던히 더 무던히 사랑하고 복종해야 하는, 섬김의 실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게나 여겨서는 안 되는 가장 실제의 사람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주의 교훈이 빠지고 훈계가 없으면 모두 허사라.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식 농사이고, 가장 구질구질한 것이 부부의 세계이며, 가장 지루하고 지겹고 지랄같은 것이 자신이라. 이는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이란 내가 저를 대신하는 것인데,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6:5).” !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 이 말씀이 기준이 된다. 그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6-7).”

 

아들의 이런저런 태도에 시무룩해있자, 아내는 느닷없이 당신 변한 거 봐! 전에 같으면 성질을 부리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그러니 걱정 마. 얘도 달라져.’ 하고 말했다. 그 말은 아내가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가 연골이 터져 조만간 시술을 해야 하고, 그러면 일주일은 입원을 해야 하고, 한 주간은 외래 치료를 해야 한다는 우환이 닥친 뒤였다. 같이 병원 근처에서 점심으로 열무국수를 먹다 아들애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내가 시무룩해하자 아내가 슬쩍 하는 소리였다. 이처럼 어떤 일앞에서 비로소 주의 뜻을 바로 안다. 그리고 참 의지가 생긴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28:7).” 결국 모두는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실은 <자신>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테레사를 운운하고 어느 성자의 희생을 기리지만 저들 또한 나름의 판단과 기준으로 <자기만족>에 겨워 살았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자기자신이다. 사랑이 어긋난 까닭이다. 늘 먼저가 되는 게 자신이다. 번번이 하나님 사랑하기’도 밀린다. 말은 헌신이고 희생이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까지 내어준다 해도, 어떤 일 또는 무엇에 대한 자기 판단이 우선인 것이다.

 

모든 죄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순서가 어긋난 데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3:37-40).” 먼저와 나중이 염연하여야 하는데, 혼재되거나 자기를 우선하다보니 지금, 내 곁에 두시는 가족 또는 편한 사람 순서인듯 한데 이를 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길을 잃는다. 하나님께는 가장 귀한 것이 가장 먼저다. 지금 내게 가장 가까이 두신, 이 지긋지긋한 육신과 넌더리나는 가족과 책임과 의무와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은 소소한 것들이 우선인데, 이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오늘, 내게 두신 가까이의 일은 가장 세미한 하나님의 손길이다. 가령 일을 지키는 것이 가족보다 우선하거나, 공부나 어떤 목적이 지금 내 곁에 두신 일보다 우선하거나, 지금을 사랑하는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앞선다거나 하면 이 모두는 그릇되다. 문제는 우리가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일에 너무 열심을 다하는 게 아니다 먼저, 많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게 문제다. 하나님께 먼저 애착을 두면, 버릴 게 없다.

 

내 이 비루한 몸을 건사하는 일에서부터 저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와 성경공부를 하고 함께 대하는 일이 가장 귀하다. 또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는 하루를 평범하게, 어제 같이, , , 감당하는 이일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이와 같이 우리에게 살게 하신, 아무리 개떡 같은 현실이라 해도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적게 사랑하고, 덜 열심히 행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러므로 더더욱 많이 하나님을 먼저하고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 가장 실제 중의 실존이 현실이었다. 막상 아내의 무릎에 대해서는 염려가 앞섰지만 마침 곧 7월이면 딸애가 또 한 달을 유급휴직을 당해야 하는 처지였는데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피할 길도 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너무 걱정마라. 지나친 생각은 행동을 미룬다. 구구한 말은 해야 할 일을 더디게 할 따름이다.

 

다만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28:8).” 다른 무슨 방도가 또 필요한가?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