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이사야 65:1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28
내 안의 나와 나 밖의 내가 서로 다르다. 가장 가까워야 하는데 멀고 먼 것 같으나 가까워서, 어느 게 진짜 나인지 내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성경은 위선을 경계하신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를 엄히 꾸짖으신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눅 6:42).” 구제할 때도, 기도할 때도, 저는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 떠벌여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신다(6:2, 5). 뭘 해도 티를 내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16). 그 마음에는 주를 시험하려 하고, 이러한 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22:18, 24:51). 입술로만 주를 공경한다(막 7:6). 천지분간은 잘하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 나름의 명분과 당위에 얽매이는 자들이다(눅 12:56, 13:15). 이와 같이 말씀을 찾아보다 보면 그게 다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두렵다. 실제의 나와 실재의 내가 다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할 때 나의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온다는 다윗의 기도가 새롭게 들린다.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35:13).” 그들에는 나를 포함하고 나는 주 앞에서 자주 입을 다문다. 구구한 말이 쓸모없어 주께 아뢰는 것이었으니 주가 나 대신 다투신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1).” 성경은 나로 하여금 진실하게 하신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그러하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는 주의 법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04).” 가령 말씀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신다. 가족 누구에게조차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대목이다. 그러려니 하고 나를 놓아두는 데 따른 서운함이 오히려 주만 바라게 한다. ‘뭐 좀 돈 되는 일을 해. 건설적인 일을 해.’ 하는 말에 나는 이제 상처 받지 않는다. 뭐라 할 건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이해를 도울 수도 없고 설득을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오직 주를 경외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
가장 가까운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싱겁고 어려운 오해는 발생한다. 본래 저들에게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저가 죽으실 때까지 저를 구주로 믿지 못했다. 하긴 주의 제자들 모두가 그러하지 않았나? 십자가를 지시고 패배자로 끝장이 날 때 베드로는 저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옛 생활로 돌아갔고, 갸롯인 유다는 그의 실망으로 이내 목을 맸고, 도마는 끝끝내 부활하신 예수의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봄으로 믿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암 5:15).” 그러니 나의 오늘의 나는 새삼스러울 게 아니다. 사람이 본래 그러하다.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같지 않다. 위선적이며 외식하는 자이다. 나의 면면을 일일이 열거하자니 늘 또 같은 소리라 헐거워 쓸모없다.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어서 나는 누구도 그리 대단히 신뢰하지 못한다. 이에 성경은 그렇다면 온전한 자세를 하나로 이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과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은 그렇듯 자기 기준에서 비롯될 수 있어서, 그렇다면 마땅히 행해야 할 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내가 주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바울 사도의 열거는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0-11).” 먼저는 게으르지 말고 그 열심은 주를 섬기는 데서 나오는데,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는 일로 존경이 있다. 아니꼽고 시기가 일어날 때,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 참고, 기도하고, 힘쓴다. 진짜 그럴 수 있는 힘은 내가 결단하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소망을 가질 때이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주께서는 아신다는 소망, 내가 가족한테서조차 이해받을 수 없는 심정에 대해 우리 안에 두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넘치게 하심으로 주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일이다. 이로써 위에 것을 바란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
인내하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곧 믿음의 시련이 이를 성장하게 한다. 어려움으로 주를 바라게 되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6-17).”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의연하심을 느낀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사 65:1).” 저는 주시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꾸짖어 엄히 경계하고 벌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주의 사랑은 외로운 구애 같다. 굳이 나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 물음을 받고, 나를 찾지도 않는데 찾아냄이 되시고, 자기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데 대답하신다. 외면당하면서도 한사코 주의 사랑을 스스로 주체하실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묵상하다 송구하고 송구하여 민망한 마음으로 오늘 시인의 기도를 읊조린다.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8).” 알면 알수록 주를 바라고 의뢰하면 할수록 주의 사랑의 깊이를 측량하고 예측할 수가 없다. 도대체 나 같은 게 뭐라고! 나는 나의 연약함으로 간절해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나는 주께만 아뢴다. 할 말을 삼키고 하고 싶은 말을 접어서 주님 앞에 칭얼거리듯 고한다. 어쩜 나는 이렇게 더디고 몹쓸 것처럼 나아지는 게 없는지...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2).” 오늘 이사야서를 읽다가 주님의 마음이 나에게서 그러하셨겠구나?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이다. 지금도 내가 이 모양이나,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17).” 주가 이루시고 바꾸시고 나를 주 앞에 온전하게 하실 것임을. 그래서 훗날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4-25).”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세계라. 아, 그리하여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8).” 주밖에 어찌 알까? 반드시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13).” 하는 고백이 내 것일 것을.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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