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19:1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금세 한 주가 또 지났다. 누구 말처럼 ‘코로나 전후’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 하더니 많은 부분에서 달라지기는 하였다. 서로를 조심하고 안부를 묻는 것부터 어지간하면 만남을 멀리한다. 마스크로 입을 막고부터 단절은 가시화되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다시 일상이 오기는 묘연한 것 같다. 지나간 한 주는 되돌릴 수 없고 나이든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이 늘어간다. 어떤 두려움, 요즘 나는 심화된 현실을 통해 절감한다. 먼저 오늘 말씀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본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렘 19:15).” 이러한 현실을 자초한 것이다. 저마다 그 완고함으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를 여전히 안이하게 여기는 것들에 치를 떤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23).” 은혜만이 살 길임을. 주의 은총만이 우리로 남은 생을 온전히 하실 것을. 과연 내 안에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는 한가? 그저 두려운 것과 경건한 두려움은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바라며 경외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8).” 온통 돌아가는 세상 꼴이 그러하다. 믿음의 국가로 자유를 자부하던 나라부터 윤리와 도덕은 개인의 자유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이 무시당한 것은 오래다. 존 번연의 표현처럼 ‘경외심은 은혜의 꽃이다.’ 아무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 주시는 자만이 받는다. 내친김에 저가 정리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을 메모하였다.
첫째, 교만하고 오만하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이를 하나님은 반드시 낮추신다.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욥 40:11).” 그런 자를 멀리서도 다 아신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시 138:6).” 그리고 하나님이 물리치신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둘째, 저들은 탐욕스럽다. 탐욕은 불의한 이익을 꾀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제하여 일꾼으로 세우신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 18:21-22).” 결국 탐욕은 이 땅의 지체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곧 악인의 마음이다.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시 10:3).”
셋째, 저들은 식탐이 많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2-13).” 온통 다들 ‘먹방’, ‘맛집’에 열광한다. 탐식은 오랜 역사 동안 즐겨왔다. 성경은 엄히 경계하셨다.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 23:20).” 그런 사람들은 여전하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 2:13-14).” 하룻밤 식사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평온한 숙박을 위해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심판은 덫과 같이 임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넷째, 거짓말하는 자이다.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사 57:11).” 어마어마한 비용으로 사람과 힘을 끌어 모아 자신을 변호한다. 법의 한계를 넘은 변론 앞에서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스스럼없다. 이를 성경은 가증하다 하신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8).” 거짓말하는 것과 점술, 우상숭배는 동일한 죄다.
다섯째, 받은 복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출 9:30).” 곧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 건강을 회복시켜주셨고 사업체를 회생시켜주셨다. 남들보다 명석한 두뇌와 건강과 좋은 여건을 허락하여 주셨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하나님을 반역한다. 오히려 그것으로 우상을 삼는다. “네가 또 내가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을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을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음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6:17-19).”
여섯째, 저들은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 25:17-18).” 오늘도 아말렉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신만 불순종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처나 자식도, 곁의 사람들도 모두 못 가게 가로막는다. 가령 믿음 좋은 누가 시집을 갔다. 당시 가정의 불화로 결혼을 도피처처럼 삼은 것이 화근이라. 나이 차가 많이 나면서 온화한 사람이라 안 믿는 자인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선택하였다. 결혼하여 첫 아이를 낳고부터 교회 가는 것을 막더니 둘째, 셋째를 낳으면서는 아예 집안의 군주로 돌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일곱째, 교회를 떠나 신앙을 버린 자들의 결국을 보면서도 돌이키지 않는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렘 3:8).” 오히려 더욱 완고하여져 싸잡아 교회를 매도한다.
여덟 번째, 사악을 기뻐하고 오히려 조장한다. “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렘 44:9-10).” 요즘 유명 유튜버들의 개인방송이 조회수와 지지에 따라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데, 이를 위해 근거 없는 막말이나 자극적인 언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막돼먹은 주장에 돈을 걸고 응원을 하는 다수의 군중을 생각하였다.
아홉째, 말씀보다 꿈이나 누구의 진술-신비 체험 따위에 열광한다. 본래 그런 것이다.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 5:7).” 누구는 심지어 누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였고 환상을 보아 대언해주었다며… 차마 입에 담기 그런 수고와 애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유 1:8).” 귀가 얇은 세대다. 우리 교회 같은 층 복도 끝에도 ‘타로점술학원’이 생겼다! 성경은 이를 가열차게 언급하신다. 이들은 모두 저주 받은 자식들이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 2:14).”
열 번째, 삯을 착취하는 사람이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요즘 말로 갑질의 대명사로 줘야 할 것을 가지고 인색하게 굴거나 이를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린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 3:5).”
열한 번째, 고난당하는 성도를 조롱한다. 이 경우는 안 믿는 자들보다 같이 믿었던 사람들의 더 심하다. 시쳇말로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식의 언사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눅 23:40).” 강도의 입에서도 조롱은 새어나온다. 예수님은 위로하신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 속단하듯 조언하고 꾸짖고 다른 길을 제시하는, 잘난 사람들도 많다! 다윗은 이것까지도 주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삼하 16:10).”
열두 번째, 그렇듯 경외심을 무시하고 그 효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다시 밝히지만 나는 요즘 존 번연의 책들을 찾아서 읽는데, <경외함의 진수>에서 풍성하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7).” 나의 두려움을 새삼 정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8).” 온전한 경외심을 바라고 구하게 된다.
어느 때보다 겁이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의적절하게 이와 같은 독서를 하게 하신다. 나의 하루는 격리된 듯 온화하였다. 아이는 여전하였으나 나름 성경을 한 구절씩 암송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나의 오전 사역이 끝나면 단절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만을 마주하게 하신다. 좋으면서 싫고, 쉬우면서 어려운 날들이다. 그러할 때 말씀밖에 위로도 답도 갈 길도 없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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