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전봉석 2020. 8. 21. 05:56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아애가 1:22

 

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여호와여 이 비방은 주의 원수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비방한 것이로소이다

시편 89:50-51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가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땅에서 흘러넘치는 듯하다. 오늘 시편의 기도와 찬양 또한 당면한 현실을 반영하듯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하지만 어떠해도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52).” 하는 오늘 시편 89편의 결말이 가슴을 울리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사랑하시고 이 교회를 아끼시는 까닭에 이처럼 연일 교회가 욕을 먹고 사람들의 조롱과 조소거리가 되게 하셨다. 작금의 현실은 심각하다. 위기의식이 없는 교회와 목사들은 그럼에도 스스로들 변호하며 자중할 줄 모른다. 늘 하던대로 수련회를 갖고 여러 모임을 강행하며 그러는 중에 전염병을 돌게 한다. 이러한 때에 애가의 탄식과 기도가 눈물겹다.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1:22).” 회개와 통회하는 마음이 우선이지 정부나 이 사회를 향해 옳고 그름을 따진들? 맞고소로 이어지고 줄소송을 예고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지탄과 원망은 도를 넘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안이한 생각과 설마, 하는 습관으로 전염병은 들불처럼 더해가고 있다. ,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10:14-15).” 그러니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그 좋은 바를 행하니, 언제부터 교회가 또는 우리의 신앙이 이처럼 막무가내였던가. 그런 가운데 한 구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당시 고린도교회는 성적으로 타락하였고 교회의 분열 또한 심각하였다. 이를 두고 바울의 관점은 뚜렷하였다. 정치화하여 그러한 것을 논하고 또 하나의 힘을 내세워 자기주장에 골몰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저가 고린도교회의 상태를 몰라서 하는 소리였을까? 알고 있었다. 이를 꾸짖고 통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전면에 두고 정치화하지 않았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7).” 이를 또 곧이곧대로 듣고 반박하거나 재반론을 하는 경우에 대하여 설왕설래할 거 없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 말을 즐길 따름이다.

 

우리는 세상 안에 있되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예수님도 그리 아뢰고 주께 기도하셨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아직은 세상에 있어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하여, 예수님의 기도는 간곡하시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4).”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6).” 이를 두고 현실도피니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니 하는 소리로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 대하여는, “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여호와여 이 비방은 주의 원수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비방한 것이로소이다(89:50-51).” 오늘 날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여론과 가학적인 자기애와 일련의 학습된 안이함에 대하여, 나는 나에게 두시는 범불안증을 사랑한다. 그것으로 사회를 돌아보고 누구의 말과 주장과 그 나름의 자구책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의 연약함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난다는 말씀을 되새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이것으로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를 바라게 된다.

 

사람들이 어떠하든, 각 교회 교계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저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여론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가며 그러는 중에 돈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고, 이는 세력이 되어 마치 그 힘으로 세상을 굴리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러한 세상에 있으나 그러한 세상에서 물러나있음을 느낀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누군들 아니 그러한가? 그러나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3-5).” 나는 이제 이와 같은 말씀을 음미하며 한두 번 권하고 말하다 안 되는 일에 대하여는 주님께 미룬다. 맡김이란 내가 하려는 의지를 주께 돌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직 예수그의 십자가밖에는 결코 붙들고 자랑할 것이 없다. 어떠하든, 세상이 어떠하여 어떠하든지 나는 오직 주를 바라며 주의 말씀에 머묾으로 내 곁에 두시고 함께 하시는 이들과 함께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뭐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마치 자신이 아니면 교회가 굴러가지 않고, 사수하지 못하면 이 복음이 더는 영영히 훼손되기나 할 것처럼 소란을 떨고 공분을 자처하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 속은 정직한가? 순수하게 주를 바람인가?

 

온통 SNS가 문제라. 5G 시대다 보니, 손에 들린 세상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저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며 그것으로 마치 전부인 듯 신앙을 운운하고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었으니저가 그처럼 이상한 소릴 해대는데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나? 헛소리를 무슨 성경의 메시지요, 하나님의 계시인 줄 알고 그 앞에서 손을 들고 성령을 운운하고 기도를 읊조리는 것인지그야말로 개탄할 일이다. 벌써 딱 봐도 미친 소리인 것을 왜들 그처럼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일까? 학습된 두려움 때문이고 죄악 때문이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전쟁에 대한 공포가 마구잡이로 총구를 겨누고 아무 데나 총질을 해대게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완고함과 아직 젊어서 무모함과 충동적으로 불일 듯 하는 열성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다. 다들 너무 건강하고, 너무 열심이며,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살만하니 아우성이다. 정말 죽겠는 사람은 오히려 온유함을 배운다. 살려주세요, 하고 납작 엎드린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우리 아이들의 남은 세계가 비통할 따름이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1:16).” 우리는 통회하고 자복함으로 주 앞에서 유구무언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43:1).” 이제 남은 것은 나 하나다. 누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별 수 없다. 노아는 이내 묵묵히 방주를 지었을 따름이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남에 저는 방주에 들어갔을 뿐이다. 주께서 그 문을 닫으시며 기어이 비가 내렸다.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2:10-11).” 이제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12).” 때는 점점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광기는 극에 달할 것이다. 가치와 기준은 모호하고 저마다의 불빛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여긴가, 저긴가 기웃거리다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89:1).” 오늘 시편의 말씀이 해답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2).”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5).”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5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