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에스겔 2:7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시편 95:1
사람은 참 악의적이다. 정말 잘 변하지 않는다. 어쩜 저런 상황에서도 저런 말을 할까싶고, 아무리 그래도 어찌 이런 행동을 할까싶을 때가 있다. 놀랍고 두려운 것은 그리 생각하는 내 안에도 그런 마음과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나 여전히 죄악 된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를 얼마나 통회하고 자복하는가, 하는 문제이겠다. 그저 어찌 좀 할 만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우리의 죄악 됨이란 만일 할 만하시던 게 아니었다!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사함이 없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 24:26).” 오늘 내가 보고 느끼는 우리의 악함은 그 정도였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3).” 결국 우리의 의로움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일련의 사태도 그렇고, 평소 연락을 잘 안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좀 어떤가? 하고 물었다. 역시나, 고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전에는 제일 친하고 죽이 잘 맞던 친구였다. 이제는 서로가 보는 눈이 다르고 생각의 관점이 다르며 그 가치의 기준도 다른 것이다. 통화를 하면서도 얼른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은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신 9:4).” 우리의 악함에 대하여는 누구를 말할 게 아니다. 내 속에 여전한 나를 발견하면 된다. 이를 알면 오늘의 이 모든 사태가 어째서 유용한가를 말할 수 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5).” 참으로 자기 아집과 고집이 곧은 자이었다. 누구 말이 아니라 내가 말이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6).”
이를 알 때 나는 주 앞에 엎드린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 주의 긍휼하심만을 바랄 따름이다.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22).” 부디 주의 큰 은혜로 나를 아끼소서. 아니면 내가 무엇으로 주 앞에 설까? 무슨 말 끝에 친구는 지나가는 말처럼 ‘네가 하는 게 무슨 목회야?’ 하고 말했다. 저가 생각하는 목회나 우리가 늘 가지고 있는 목회란 게 무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저에게 뭐라 묻지는 않았다. 가까웠고 친구니까 그렇듯 말할 수도 있겠거니, 나는 다만 왜 더는 자주 대화를 하기 어려운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성경은 나를 꾸짖으시는 것 같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 2:7).”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하는 생각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것이 죄였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일상적인 말 몇 마디 더 나누다 끊는 게 아니었다. 주가 이 아침 나를 불러 세우신다.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8-9).” 실은 마음이 상했고 불쾌해서 얼른 통화를 끊고 마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던 것이다. 그런 내게 이와 같은 말씀은 날카롭게 찌르신다. 아,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10).”
내게 보여주시는 말씀을 저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나에게 들려주시는 것을 저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다만 다 부정한 자라.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이 주체할 수 없는 죄악됨으로 주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일이었으니, 나는 송구하여 무엇을 보답해야할까? 나는 이번 주간 ‘감사’에 붙들려 있었다. 아무 것도 내어드릴 게 없고, 친구의 말처럼 ‘그게 무슨 목회야?’ 하는 비난을 들어도 마땅하게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사람인데,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그래, 어쩌면 내가 하는 무엇을 목회로 여긴다면 나는 그것으로 오늘 받는 은혜를 삯으로나 여길 테지만, 예리한 친구의 말마따나 ‘이게 무슨’ 목회도 아닌 목회자로 목사로 살아가고 있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다만 은혜라. 송구하고 면구스러울 따름이라.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감사다. 아무 것도 보답할 게 없으니, 감사뿐이다. 저들은 나름 스스로를 ‘독실한 신자’로 여겨 목숨을 다해 그 의지와 신념을 불태우며 투쟁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일 테지만…. 아, 그런데 성경의 말씀은 잔인할 따름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데,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런데 저들은 대체 자신의 무엇을 그처럼 당당히 여기며 가는 길일까?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누구도 주 앞에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게 하셨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왕상 8:46).” 나는 아니라고 부르짖어 항변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이를 통회함을 주가 기뻐하신다. 친구의 말이 가슴에 찔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뭐라 항변하고 싶었다가, 그러니까 대화가 안 되는 거야 하고 저를 속으로 비난하였다가, 가만히 시간이 지날수록 주 앞에 송구함이 들어 ‘그래 맞다. 이게 무슨 목회일 수 있겠나. 하는 게 없으니 내어드릴 것도 없구나.’ 속상해하는 마음으로 있었다.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사 46:12-13).” 오직 이처럼 말씀 앞에 불려와 앉는 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겔 2:6).” 내 안에 두시는 어떤 수치심과 열등감이 더 큰 문제다. 이 짐을 그대로 지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러자 또 주님께서 말씀으로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가 어찌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감당이 안 된다. 다만 주가 두신 날이 오늘 이처럼 말씀 앞이라면, 나는 주의 멍에를 메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9-30).” 정말이지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을까?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누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저들만 그러하다는 게 아니었다. 내 안의 내가 더하다. 선을 행하지 않는다. 무리하여 이를 자신의 공로로 돌리려 한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의당 바른 길에서 벗어난다. 무익한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 속은 열린 무덤 같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13).”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서 더욱 두렵다. 아,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14-18).”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에 창가에 앉아 나는 바람의 길을 가늠해본다. 창을 빠끔히 열자 매서운 소리와 함께 얼굴을 때린다. 문득 성령의 임함도 이와 같으시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그렇듯 나는 가장 불가사의한 일이 내가 의롭다고 하시는 일이다. 그래, 나 같은 자를 불러 목회의 길을 가게 하심이 기이할 뿐이다. 어쩌자고 나 같은 자를 위해 그처럼 사랑하셨는가, 이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없다. 하물며 친구의 어떤 말이 나를 속상하게 하고 불쾌하게 했다 한들, 내 뜻과 상관없이 아무 일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은 나 같은 자를 들어 이 귀한 자리를 지키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야말로 참으로 어지간하시다. 그러니 감사밖에는 허무뿐이다. 아무 것도 드릴 게 없다.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 44:11).” 우리가 애써 무엇을 한들?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12).” 그저 똑같은 사람일 뿐이고,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13-14).”
그래서?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15).” 내가 잘난 줄 알고 무엇을 만들어 의미를 더하고 이를 목회라, 주의 권능이라, 목사라 자부하고 당당하게 군들? 그저 나무고 철이라. 이를 부어 우상으로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공을 들인들? 배고프면 팔아서 빵을 구해야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별것도 아닌 것이 별난 것인 듯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댄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5-18).” 다만 두려워서 나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나?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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