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전봉석 2020. 11. 8. 05:47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1:15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시편 18:6

 

 

 

인생의 기근이 닥치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그럼에도 술에 취하는 세상이니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5).” 이 경고를 들을 귀 있는 자가 복되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11).” 그들뿐인가?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13).”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좋은가?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14).” 주께 아뢰며 기도밖에는 답이 없다.

 

그런데 그래서 더 ‘술 권하는 사회’를 사는 것이니 점점 그 영혼까지 가난하고 나른하여 무기력해진다.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1).” 당연히 육체의 질병이 든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전 7:17).” 뿐만 아니라 다른 죄를 끌어온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 23:29-30).” 하나 더, 스스로 그 수명을 단축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10:27).” 그러니 이 모든 것보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10).” 술에 취함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어서 모든 죄를 복합하여 혼합한다. 그리고는 기어이 그 영혼은 외로움에 젖어든다.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34-35).”

 

코로나로 온 세계가 두려워하며 방역에 열중하는데 술 취하는 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과는 별개로 여긴다. 모든 기근은 그렇게 닥치기 전까지는 다 남의 이야기 같다. 굳이 누구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한 때 저는 신실한 신자였다. 어찌하다 이혼을 하고 자꾸 엇나가는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소년원에 들락거리더니 급기야 성인이 되어서는 마약류 단속에 걸려 형을 살기도 하였으니, 저는 주께 돌아오기보다 아들과 같이 정착하여 마음 붙이고 살며 할 수 있게 무얼까, 하다 하필이면 술장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니 악에 악을 더하는 셈이라,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자들의 가장 보편적인 유희다. 술 취해서 하는 행동을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나? 결국 교도소에서 나온 아들은 한동안 마음잡고(?) 가게 일에 열중하는가했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술 취하다 이내 다시 ‘물뽕’을 운반하다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 어미가 제 정신인가? 이 사회가 비정상인가? 주말이면 아파트 곳곳 쉼터에서 애고 어른이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을 마신다. 어제는 새벽까지 꺼이꺼이 울어대고 고성방가를 하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저들을 데려갔다.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합 2:5).” 술장사가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니 특히 믿는 자라는 사람이 술장사를 하며 버젓이 성도인 것을 자청한들,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9-10).” 저들은 과연 그 원인을 알까? 그러더니 이제는 아들이 차라리 골치 썩이느니 교도소에 가 있으면 더 안심이 된다는 소릴 하고 있다.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15).” 나는 그 어미를 두둔하고 같이 교인이네 어쩌네 하는 친구에게 네가 더 문제라고 일렀다. 도무지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성도는 모름지기 거룩이 우선이다. 스스로 그럴 수 없으나 그러려고 하는 마음을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을 집중해야 한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그런데 빨리 돈이 되니까, 당장은 그게 나을 것 같아 술장사를 택하고. 좋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어떤 상대인지, 그 가정은 어떠한지 생각지도 않고 ‘아무나’ 사귀고 아무렇지 않게 결혼을 하기도 한다. 또한 어느 아이의 결혼 소식에 축하보다는 우려가, 기특하고 대견하기보다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먼저 일어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앞서 저이도 그러했다. 사느라 그냥 살다 세월이 어느새 저를 삼켰다.

 

오늘 요엘서는 인생의 기근이 닥쳐 농부고 제사장이고 가릴 거 없이 고통 중에 처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에 대한 경고라. 그러니 어쩔 것인가? 자신들이 선택한 일이다.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욜 1:8).” 누구 말도 듣지 않다가는,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15).” 전능자 구원의 하나님이 임하시는데 어째서 슬픔인가? 환난을 동반하여 기근이 닥치면 내남없이 살 궁리에 바동거리는 것이지만,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16).” 우리는 주께 부르짖고 저들은 살자고 살 궁리로 ‘술장사’를 택한다. 돈이 되는 곳에 마음이 기울면 ‘그게 뭐 어때?’ 하는 생각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한다. 그래놓고는 주를 원망하는 것이다. 한 때는 교회 집사로 성가대로 나름 신앙으로 살던 이가 어쩌다, 이혼을 하고 산다고 살 궁리로 술장사까지 내몰리게 된 것인지! 아들 하나 그리 되었으면 정신 차리고 주께 돌아올 만도 한데, 이건 또 딸애가 하는 일이 제법 잘 풀린다?! 대기업 어디에서 일을 따고 연봉이 수천만원에 해외 어디로 출장도 자주가고, 그럴듯하게 살고 있으니 그 어미의 낙이 되었다. 곁에서 보는 친구의 말도 가관이라, 살만하니 됐다 여긴다. 사탄은 참으로 교묘하여 적당하게도 하나님만 아니면 모든 걸 허용하는 듯하다.

 

아, 곧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요엘은 절규하듯 묻는다(16). 늘 시편의 말씀은 그러한 우리의 그릇된 신앙을 바로 교정한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그러나 사악함에는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렘 23:15).” 사는 게 고역이라. 손만 데면 망치는 꼴이라. 가까이 말아야 할 것을 가까이 하고 살면 의당 그러하다.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 5:8).” 아예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7:7).” 저는 그렇게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8-9).” 이 땅의 유혹은 마치 음녀 같다. 저의 제안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다.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18-20).” 늘 가장 두려운 유혹은 아무렇지도 않데 우리 가까이에서 비롯된다.

 

누구에게는 안이함으로, 누구에게는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돈으로, 연애로, 당장의 이익과 그에 따른 수익으로 ‘서로 사랑하며 사람으로 희락하자.’ 하고 손을 잡아끈다. 그때마다 죄는 담대하고 거침이 없다. 하나님만 아니면 다 잘 되는 것 같다. 희한하게 또 그럴 때면 척척, 하는 일이 풀리고 막혔던 하수구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이 사는 맛도 난다. 그러나 곧 있어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 5:5-7).” 우리는 아주 '두려운 열심'을 가져야 한다. '두려운 기쁨'을 알아야 한다. 부디 오늘을 사는 나의 영혼과 우리 가족과 내 곁에 두시는 모든 영혼들에 대하여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 해도,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4-5).” 그러나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6).”

 

그리하여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