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편 75:6-7
말씀 앞에 때론 걸려 넘어진다. 읽고 묵상하고 삶으로 살려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자신으로 한계를 느낄 때,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 8:14-15).”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외면하고 그래서 도망치기도 하겠다. 말씀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나 됨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말씀도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도무지 그럴 수 없는 나 자신을 두고 나는 주께 면목이 없다. 그럴 수 없는 자신으로 더욱 주를 의뢰하는 길밖에 달리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허탈하기도 하고 저런 마음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6-7).”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실 것에 대하여 더욱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은 저 혼자 널을 뛰고 묵상하고 전한 말씀의 반의반도 삶으로 이끌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할 때 말씀 앞에 순전하여지기를.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욥 8:20).” 수아 사람 빌닷의 입을 빌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오직 주를 바람이여.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 33:20).” 나의 염려는 종종 나의 목을 조른다. 한 아이엄마가 아무래도 수업을 해주었으면 하였고, 아내는 마지못해 하면서도 은근히 기다렸던 일이다. 그러다 세 아이가 되어서, 우선 중등부로만 각각 시간을 분산하여 수업하기로 하였다. 그러니 하지 말라고만 할 수도 없었고, 정작 이런 시국에 수업을 한다는 게 마음을 어렵게 하였다. 근심에 근심이 더해져서 나는 오후 내내 마음이 어려웠다. 그러할 때 무엇을 바랄까?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62:1).” 보면 다들 사는 게 눈물겹다.
그러니 안 믿는 자들, 하나님 없이 잘들 사는 자들의 흥왕함이 때론 부럽기도 할밖에. 막내 동생이 결국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된 셈이어서, 그러한 일이 감사한데 동시에 서러운 마음도 주체할 길이 없다. 옥상에서의 교회라… 어릴 적, 아마도 내가 초딩 5, 6학년쯤이었을까? 이층 건물에 예배당을 세 얻고 사택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옥상에 가건물을 꾸려 산 적이 있었다. 베니어판으로 얼키설키 지어 비닐을 대충 두른 거여서 여름에는 더위가 겨울에는 추위가 극성이었다. 무엇보다 변소가 없어 아버지는 커다란 고무대야를 주워와 발판을 놓고 사용하다 얼추 차면 어머니와 둘이 길 건너 나대지에 패인 웅덩이로 가져가 쌓인 똥물을 묻곤 하였다. 동생이 가족방에 올린 예배모습을 보다, 문득 나는 어릴 적 일이 떠올랐고, 감사하고 축복할 일인데도 마음 한편으로는 서러움이 울컥, 하고 치밀고 올랐다. 그때 나는 어린 게 뭘 안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 가난이 싫은 만큼 아버지의 무능이 싫었고, 하나님의 요구가 잔인하다고도 여겼다. 돌아보면 그런저런 혹독한 훈련이 우리 형제들의 가는 길을 단련하신 게 아닌가 싶지만, 어머니가 눈물로 대표기도를 하셨다는 막내의 전언에 나는 괜히 미어지는 마음이 들어 공연히 화부터 났다. 그러니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예수로 우리가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는 말씀이 가히 그럴 만도 하겠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게 아니면 무슨 수로 이 어려운 마음을 담고 살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주의 성소가 우리로 함정이 되고 올무가 되기도 하신다는 이 역설이 나는 실감된다. 그로 인하여 나의 마음은 자기연민으로 허덕거렸던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 8:14-15).” 동생의 결정에 나는 축하하고 축복하는 마음과 안 됐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같이 뻗대고 있었으니. 교회 통장에서 얼마를 감사헌금으로 보내며 괜히 자꾸 마음은 까부라졌다. 오후 내내 울고 싶었고, 아내의 극성으로 인해서도 미안함과 속상함이 같이 뒹굴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던 것은 새해 첫 주일 예배에서 나는 아들과 딸에게 될 수만 있다면, 하나는 목사가 되고 하나는 사모가 되기를 위하여 바랐다. 이는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안 한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성령은 나로 하여금 그리 전하게는 하셨지만 나의 마음은 금세 두려움으로 찼다. 지난날 나의 지독했던 가난과 사람들로 인한 시달림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어린 게 뭘 안다고 나도 일찍부터 목사가 되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죽어도 주의 길을 가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짓누르기도 하였다… 까마득한 옛날 일인 줄 알았는데 오늘도 여전히 우리가 가는 길 위의 길이었고, 어머니가 대표로 기도하시며 울먹거리셨다는 말에 그 심정을 헤아리다 마음만 자꾸 까부라졌다.
우울의 바닥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꺼지고 꺼져내려도 끝도 없는 나락과 같은 것인가. 나는 아픈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 오후 내내 심통이 난 것처럼 아무 말도 않고 뚱하니 널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 아침의 말씀이라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는 것이 하늘의 상이 크다? 나의 불안은 전염병이 여전한데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온다는 것만으로, 이 혹한 추위에 상가 건물 교회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는 누나네나 막내네나… 어릴 적 죽기보다 싫었던 가난과 추위와 모진 삶의 현실이 오늘도 여전하다는 데서 나는 종종 두 마음의 공존이 지긋지긋하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과 서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같이 하는 것이었으니, 누가 나를 이 지겨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까?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22-23).”
이 치열한 싸움이 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를 외면하고 부정하느라 멀리 떨어져 상관없는 자로 산다고 살았던 것인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나의 절규가 도리어 감사를 이끌었고, 오늘에 이르러 말씀을 전하게 하셨으니 이 또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 마음 같아서는 어린 조카들에게 얼마씩이나마 턱턱 보내주고 싶은데, 교회 통장에 근근이 모인 헌물에서 얼마를 동생에게 교회 이름으로 감사헌금으로 보내고, 감사보다는 서러움이 더 컸던 마음이라 나야말로 구제불능인가. 참으로 보잘것없는 위인이다. 앞서 전하였던 말씀과 정작 나의 생활은 이질감으로 뒤틀어져 안정제를 삼키면서 병적으로 이는 불안을 달래야 하는 연약함만 확인하였다. 그러다 드는 마음이라, 그저 사느라 저처럼 비루하고 궁색한 것이면 이 또 얼마나 한심스러울까만 이것이 주의 일이라니! 주께서 이끄시는 것이었으니, 어릴 적 나의 아버지의 훈장이 오늘 우리의 훈장이 되는 것이 아니겠나?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겠으나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4-16).”
그래서 나는 주의 말씀 앞에 자주 좌절한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나로 인하여 숨을 헐떡인다. 조금은 의연하게 또는 덤덤함으로 이 모든 상황을 주께 의탁하고 오직 주만을 바람으로 감사히 꿋꿋하였으면 좋겠는데… 말씀을 전하면서도 나는 모자란 것뿐이고, 말씀으로 살았으면 하면서도 더더욱 모자란 자신과 마주해야 할 뿐이니, 나는 걸려 넘어지고 부러지고 덫에 걸려 잡힐 뿐이다. 그것만으로 말씀은 나를 나로 나 된 것에 승복하게 하시고 복종시키신다. 내가 할 수 없음은 빤한 일이고, 주가 그리 세우시는 일이라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이 마음의 가련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나의 영혼은 가난함으로 천국을 사모한다. 지난날의 서러움과 여전한 이 길 위에서 주가 아니시면 살 수가 없어 슬퍼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오직 주만이 나를 위로하심이었다. 그리하여 더욱 주를 바람이여.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한 생의 삶으로도 충만하였다. 그러니 나의 나 된 것으로는 도저히 내딛을 수 없는 길 위에서 주를 바라고 바래도 주를 그리워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 무엇으로 나의 영혼은 허기를 채울 것인가?
쥐뿔도 없으면서 이 무슨 해괴한 망동인가 싶겠으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늘 우리로 나는 불순하고 오만하여 자기 위로로는 구역질나는 마음뿐이어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이를 비워내고 다시 내어드림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 두신 데 따른 서러움과 어설픔이 도리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의 아들로만 삼으시려고 하심이었다. 여느 목사들은 잘도 사람이 따르고, 누구는 전별금으로 돈도 넉넉하여 보란 듯 교회도 잘만 새로 하더구만! 내 안에 이는 심통으로 송구할 따름인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10).” 하시는 말씀이 싫으면서 좋고, 꺼려지면서 끌어당겨 품에 안으신다. 아,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1-12).” 나는 이 아침의 말씀으로 위로를 얻는 것인지, 심통을 부리는 것인지, 주가 아니시면 내가 제일 문제라. 이 꼴통으로는 주체할 길 없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 하시는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인다.
말씀으로 벅찬 마음이라 감사하고, 감사함으로 서러운 마음을 주께 행하고, 주를 향한 얼굴로 나는 감히 내 아이들에게도 할 수만 있으면 목사가 되고, 딸에게는 사모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으니. 어차피 한 생을 살다 가는 것, 이 길 위에서 우리로 악착같이 주의 곁에서 말씀만 붙들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복이었다. 그리 전하고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어 오후 내내 벙어리 냉가슴 앓듯 괜히 혼자서 속상해하였으니. 나는 가끔 의연하고 확신에 찬 어느 목사를 보면 부러움보다 두려움이 먼더 든다. 나는 도저히 안 돼서, 오늘 하루도 간신히 하루치 감사도 다 못하고 사는 것인데.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시 75:1).” 심령이 가난함으로, 애통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그리 살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특혜였고, 특권이었고, 넘치는 은혜였음을. 어느 가까운 훗날 그 상이 큼이라. 그리하여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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