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3 주일
시편 53편
돌이킬 때에 기뻐하리로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53: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53: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시 53: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오늘 시편 53편은 지난 주일과 같이 다윗의 지혜시다. 또한 시편 14편의 내용과 형식이 거의 일치한다. 각각 5절에서 그 단서로 찾아, 14편은 ‘무신론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53편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무신론자나 이방인은 둘 다 ‘어리석은 자’다. 그런데 굳이 여지를 좀 둔다면, 무신론자는 무지함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이방인은 알면서도 자기의지로 다른 신(神)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 본문을 두 연으로 나누었다. 1연(1-4절)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의 타락을 진술하였고, 2연(5-6절)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결국을 진술하고 있다. 우리의 결국과 저들의 결국은 다르다.
1연,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1) 저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53:1).”
어쩌면 인간 본연의 문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을 싫어한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세상이 그만큼 좋다. 죄악은 우리가 ‘돌이켜 고침을 받는 것’을 훼방한다. 스스로의 만족을 우선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가만 보면 우리 주변에 온통 다 미신적인 것들뿐이다.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행운을 바란다. 문화와 유행을 따른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그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롬 3:23-24). 안다는 것은 이를 믿는다는 것이다.
본문 1절은 그렇게 저들의 어리석음을 주목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53:1).” 여기서 세 가지 공통점은, ① 모두가 부패했다. ② 모두가 악을 행하는 데 있어 가증스럽다. ③ 그렇게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의 다른 선행으로 이를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주는 세 가지 유익을 생각해보았다. 첫째, 우리는 믿음으로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둘째,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권세를 가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셋째, 영원한 멸망에서 면제가 되어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이를 우리는 믿음으로 알고 앎으로 믿는다.
2) 하나님은 사람을 탐구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시 53:2).”
하나님은 저마다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그러므로 기도는 개인의 소원 그 이상의 의미다. 성령으로가 아니면 온전한 기도는 불가능하다. 즉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모두 기도로 상달되는 것은 아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기도는 결국 주를 찾고 주를 만나는 통로다.
온전한 기도는 무엇일까? 오늘 본문 3절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면,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3).” 이를 역으로 읽으면, 우리는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물러가 다시 더러운 자가 되지 않도록 신중을 더해야 한다. 염려와 근심 중에도 주의 뜻을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늘 우리의 기도는 헛됨으로 그친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렘 5:2).” 성령으로가 아니면 참 기도는 불가능하다. 반성은 회개가 아니다. 뉘우침과 후회도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주의 영으로, 주의 뜻을 추구하는 성령으로의 역사다. 이를 알지 못할 때, 무지는 악과 결탁한다. 자신이 옳은 줄 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
3) 죄악은 무지함으로 비롯된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4).”
죄와 죄악은 다르다. 죄는 사망이다. 죽은 영혼으로 사는 일이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받았다. 그럼에도 죄악을 행한다! 이는 본질적인 육신의 일이다. 무지함은 늘 뒤늦게 후회한다. 살아보고 아는 삶은 고달프다. 고딩만 돼도 중딩 때의 일이 부끄러운 것처럼, 지금 자신이 바라는 일이 머잖아 부끄럽고 유치한 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질은,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사 59:7-8).” 그럼에도 닥치기 전까지는 괜찮다고 자부한다.
곧 이와 같은 무지함이 죄악이다. 우리가 말씀을 더욱 묵상하고, 하나님을 더욱 더 알고자 하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아니면 세상의 미혹하는 영에 휘둘린다.
2연(5-6절), 저들의 결국과 우리의 결국은 다르다.
1) 하나님은 저들을 버리셨다.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시편 53:5).”
이방인의 결국이다. 첫째, 저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한다. 그것을 해소하려 스스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다! 둘째,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적대시하고 그 믿음을 대항한다. 곧 스스로 신(神)을 만들어 우상을 삼는다. 저들은 자기 의지대로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기 싫어한다. 성경을 거역하고, 문화와 유행을 따른다. 돈을 숭배하고 출세와 성공을 복락으로 삼는다. 그렇게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3).” 우리 인생은 내남없이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계기는 당장의 유익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눅 14:18).” 늘 바쁘다. 하나님을 바라고 천국을 사모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사는 게 지옥이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사 59:8).” 그래놓고는 하나님 탓을 한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반드시 찾으시고 돌이키신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시 53:6).”
상대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반드시 찾고 돌이키신다. 이를 우리는 믿음으로 안다. 앎으로 첫째, 길이 참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둘째, 날마다 씻고 깨끗함을 얻는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덧붙여 서로의 돌이킴을 응원하고 함께 즐거워한다. 이는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다섯 가지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둘째, 그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17).” 셋째, 우리들로 하여금 넘어지지 않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16:1).” 넷째, 우리로 주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4).” 다섯째, 우리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나오는 말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이에 우리의 행보가 남다르다. ‘네 가지 행보’를 히브리서에서 찾으며 말씀을 정리하겠다. 첫째, 게으르지 않게 하신다. 둘째, 오래 참게 하신다. 셋째, 약속의 말씀을 받게 하신다. 넷째, 앞서 간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게 하신다. 오늘 시편은 어리석은 자들의 결국과 우리 믿음의 자녀들의 결국을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시 53:6).” 이를 위해서는 우리를 죽여서라도 살리신다. 곧 오늘 우리를 징계하심은 세상과 같이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돌이켜 주를 찾을 때에 기뻐하신다.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55편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0) | 2021.06.04 |
---|---|
시편 54편 /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0) | 2021.05.28 |
시편 52편/ 우리가 도엑이다 (0) | 2021.05.07 |
시편 51편 /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 (0) | 2021.04.30 |
시편 50편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0) | 2021.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