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살후 1:3-4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시 104:31
그러므로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33).” 하시는 말씀 앞에서 아멘, 한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그렇게 모두는 주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전혀 그럴 거 같지 않고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기묘할 따름이다. 나는 그저 막연하여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런 내게 더하시는 일들이 상한 영혼의 갈급함이었으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이는 오직 여호와의 영광이 저들 위에 넘치게 하심이었다.
가만히 되는 일을 보다보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겠다. 저 영혼을 사랑하심이다. 그 영혼을 지나 뒤에 감춰진 영혼들을 돌아오게 하려 하심이다. 녀석은 그렇게 왔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주일에도 나오고 글도 쓰고 같이 성경공부도 하면서 하겠다고 하였다. 순순히 그럴 아이가 아닌데… 짐작컨대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와 저들의 외면이 아이의 영혼을 건드린 것 같다. 어려움이 우리로 원론적인 문제를 끄집어내게 한다. 덮어두고 괜찮다고 여기던 것을 다시금 회의하게 한다. 이는 주가 하시는 일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신 30:3).” 몰랐는데 믿음으로 잘 자라던 여동생이 간호대를 졸업하면서 바빠진 병원 일에 치여 교회를 멀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아들을 위해서도 교회로 달려가더니 더는 주를 바라지 않고, 사느라 급급한 날을 보내는가보았다.
일련의 상황이 우리로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느 1:9).” 기억하여 아룀으로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마주하게 한다. 나는 아이에게 거침없이 말하였다. 어떤 기억이 어떻게 서러움으로 또는 아픔으로 자신을 짓누르든지 그것으로 오늘을 산다. 우리의 현재는 지나온 과거의 결과다. 그렇다면 오늘의 선택이 또한 내일이 될 것이다. 어느 훗날 오늘을 어찌 회상하고 있을까? 나의 지난날들이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뿐인 것 같지만 그 안에 주가 함께 하셨음을 안다. 우리가 주를 경외함이란 아무리 외면하고 돌아서서 멀리 달아났다 해도 결국은 오늘이라는 동안에 주를 바라게 하심이었으니,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시 119:79).”
누가 오후께 전화를 주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려워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을 견디기 어렵다고 호소하였다. 나는 저의 외로움의 깊이를 가늠할 길 없어 두려움이 앞섰다. 고아는 버려짐의 극점이다. 혼자 하는 시간이 너무 버거워하는 것에 나는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토요일에 저는 오기로 했다. 아이는 화요일에 오기로 했다. 오전에 일찍 시작하는 일과 덕분에 누가 오고 가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저의 말을 들어주고 성경으로 저를 가르치고, 나름의 서러움을 글로 쓰게 하는 것이 기도가 되게 하는 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 22:29).” 내가 알긴 뭘 알겠나. 저보다 나은 게 무엇이겠나. 오히려 약도 먹고 빌빌하며 근근이 이어가는 불씨 같이 모양도 형체도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14).” 주가 나를 주관하게 하는 일,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시 31:3).”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오죽하니 나 같은 위인에게 연락을 하고 주의 이름을 바라겠나, 생각하면 그 영혼들이 안타까울 따름이어서. 하긴 나의 만만함이 저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목사라고는 하나 안정제를 먹고 몸도 빌빌 하고 잘난 것도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편한 거였다. 나는 그리 자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나는 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진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 거꾸로 모든 것을 가지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자로 사는, 유명한 자로 살면서 무명자 같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에게, 그러므로 주를 나타내게 하시려고.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 63:7).” 그러므로 나는 이제 앞서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가 안다고, 알아서 하겠다고 설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위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나는 이 말씀이 즐겁다. 내 삶에 증거로 주신다. 나는 누구와 어떤 일을 도모할 주변머리가 없다. 누구의 투자를 끌어다 교회를 교회답게 넓히거나 옮길 여력이 안 된다. 이를 주께서 하심은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 고로 나의 자랑은 내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숨고 머뭇거리며 주저하고 망설이다 이처럼 주께서 강제로 갖다 떠안기셔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자주 어두운 생각을 하게 돼요. 특히 집이 혼자 있을 때, 내가 이대로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는 누구의 말에 내가 너무 소홀하였다 하는 자책이 또는 덩달아 어떤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면서 ‘올래?’ 하고 다시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인데, “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삼하 22:40).” 이로써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2:2).” 이를 알게 하려 하심이고, 이것이 주의 영광이 됨이었다. 이를 위해 사울도 사울로 두셨고 바로도 바로로 애굽을 치리하게 하시는 종으로 부리셨다. 하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 143:10).” 나는 주의 인도하심을 절감한다. 누구의 일로 더욱 주를 바란다.
그것 때문에 힘에 부쳐할 때는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들었다 나기를 반복하심으로 내 영혼을 숨을 쉬게 하신다. 나는 주의 기이하신 사랑을 누구보다 실감한다. 때론 내가 죽겠다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숨을 몰아쉴 때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꺼번에 싹 물러나게 하시더니, 주가 함께 하심을 확신하게 하신 후에는 다시 하나씩 둘씩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연결하시는 것이었으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이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시 104:34).” 나로 주로 즐거워하게 하시려고, 이것이 주의 영광이 됨을. 오늘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그 증인으로 이와 같은 말씀을 증언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살후 1:3).” 아하! 먼저는 나의 믿음이 자라고, 다음은 사랑이 풍성하게 하려 하심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4).” 우리의 견딤은 주의 자랑이 된다. 우리로 인내와 믿음을 더하시는 이유였다.
갑자기 약이 는 아이에게 어떤 계기를 묻지 않았다. 왜? 하고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안들, 우리가 안다고 해결할 수 없고 그것을 해결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알면 두 개가 어지럽힌다. 두 개를 다 알면 무작위로 어렵게 공격한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지도하고 계심을 신뢰할 뿐이다. 나는 앞서 아이에게 또는 누구에게도 선언하듯 우선할 것은 예배였다. 억지로라도 교회에 와야 하고 함께 기도하고 아멘, 하고 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아직 모르니까 괜찮다고 놓아둘 때가 아니다. 나는 내 힘으로 너를 상대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나는 나도 내가 이기지 못한다고 실토하였다. 성령으로밖에는 할 수 없다. 이를 알아듣거나 말거나, 따라오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저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만남은 주가 선별하셨다. 나는 이를 기본전제로 놓기로 하였다. 그러하다면 주가 하실 것을,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5).”
고난 없이 저들이 왜 나 같은 걸 찾겠나? 몇 년씩 연락도 없다가 그저 그리움에 연락을 하고 찾아오고 회포를 푸는 그런 사이를 바라지 않는다. 누가 그런 식으로 겸사겸사 나를 어느 자리로 부를 때 나는 결코 승낙하지 않는다.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고 선을 긋기도 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해야 사탄도 호락호락하게 대하지 못한다. 하나를 허용하면 열을 차지하려 드는 게 저의 속성인 걸 잘 안다. 나는 먼저 예배로 권했고 성경으로 인도했으며 ‘자기 이야기’도 지금보다 편해지기 위한 게 아니라 남은 생이 더는 끌려다니지 않게 하려 함이니.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6-7).” 우리로 주 앞에 서게 하실 것이다. 이를 모두 목격하고 체험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같이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으신다. 심지어 나 같은 게 뭐라고 대등한 자리에서 어떤 일을 마주하게 하려 하심인데,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10).”
나는 오늘도 말씀에서 원리와 그 방법을 일깨우심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시 104:1).” 나로 하여금 어째서 주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는지, 이는 나 또한 주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시고자 하심을,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13).” 고로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이다. 그렇게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16).”그렇게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24).” 그리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31).” 곧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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