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 직무를 다하라

전봉석 2021. 7. 18. 05:58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3-5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 116:8

 

 

우리는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에서 주의 은혜를 살핀다. C. S. 루이스의 표현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실제 저는 늦은 장가를 갔다. 아이 하나 딸린 과부였다. 한두 해 만에 사랑하는 아내를 골수암으로 잃었다. <헤아려본 슬픔>에서 저는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 <변신>의 작가 카프카는 ‘우리의 인생에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아마존 오지에서 살아가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은 일 년에 한두 번 들어오는 상선의 선장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연애 이야기’를 부탁해서 창가에 서서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며 자신의 험난했던 인생을 어른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간섭과 세미하신 음성을 경험한다.

 

강영우는 중학교 2학년 때 시력을 잃었다. 방과 후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 얼굴 정면으로 공에 맞고 쓰러졌다.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는 동안 동기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강영우는 그제야 점자책으로 가나다라, 1234를 읽히고, 맹아학교 중등과정으로 입학을 했다. 그러는 동안 같이 공놀이를 하였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였다. 강영우는 고등학교까지 마치는 동안 여러 번 죽음을 생각하였고 실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때 주말마다 학교에 봉사를 오던 석은옥의 사랑으로 이겨냈다. 저는 연대 특수교육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 차석으로 졸업 후에 첫 국비유학생으로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다. 강영우의 곁에 석은옥이 있었고 저들 사이에 크리스토퍼 강과 폴 강 두 아들이 있었다. 저는 학업을 마친 뒤 국내 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대학은 맹인 교수를 받을 수 있는 역량이 되지 못했고 저의 지원을 거절하였다. 강영우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 두 번째 좌절이었다고 회상하였다. 저는 미국에 남아 UN에 들어가 인권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당시 부시 정권의 백악관에서 국제장애위원회 정책차곤보를 지냈다.

 

나는 종종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인생의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가 주는 유익에 대해, 그때에 주님의 손길을 어찌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어제는 답답한 심정으로 친구가 달려왔다. ‘코로나 4단계’ 격상으로 길이 안 막혔는데도 두 시간 남짓 운전을 하고서였다. 하나님의 은혜, 그에 따른 감격이 저에게는 없었다. 이를 같이 성경 모임의 교인들 사이에서 듣다보면 소외감이 들기도 한다는 게 저의 고백이었다. 나는 친구의 답답한 심경이 은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나의 생에 가장 오래된 친구인 셈이고, 늘 곁에서 늘 별의 별 짓을 같이 하며 누구보다 나의 나 됨을 가장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저에게 내 인생의 굴곡 때마다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어떠했던가를 상기시켰다. 저는 새삼 놀라워했고, 그것으로 감격하였을까? 우리의 만남이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헤어지게 되는 것이 나에게는 감사와 영광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너와 내가 이런 사이가 되었다는 게 놀랍지 않니? 나는 저에게 물었고 저는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도합 여섯 시간의 교제였다. 주의 은혜는 기묘하시다.

 

오늘 날 우리의 때가 어떠한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3-5).” 이 한 구절이 축약하고 있는 내용이 현실이지 않나?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한 때에 우리의 만남과 서로의 고백이 감사와 영광이 되게 하셨으니,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 하는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다. 누구보다 저 친구는 나의 사망의 시절과 내 눈의 눈물과 내 발의 넘어짐의 현장에 같이 있었다.

 

지금 나로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고 자랑할 게 없는 현실인 것 같으나…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그런데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이것이 나를 일컫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나는 친구에게 그렇지 아니한가? 되물었다. 너의 적당함이 너의 기쁨을 가리고, 너의 나름의 성실함과 노력이 너로 하여금 주의 은혜에 감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 19:24).” 나름의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놓여나야 한다. 올무 잡힌 것이 실은 스스로의 의였다. 내가 아는 저는 성실하고 나름은 바랐다. 그것으로 저는 자신의 의로 삼는다. 이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

 

하시는 말씀을 어찌 설명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문제이겠나? 나는 저의 말을 들을 때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빌었다. 무슨 말 끝에 지금의 내가 좋아 보인다는 친구에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는 말씀의 고백으로 응수하였다(합 3:17-18). 더불어 나의 확신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19).” 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말씀 하나하나가 내 이야기다. 성경의 시대를 산다. 이는 말씀의 시대이다. 더 무엇을 바람은 오만함이다. 예수를 앞에 모시고 이적과 기사를 바라던 숱한 군중의 심리와 같다. 저들은 자신이 구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말씀의 완성이 있은 후에 환상도 나름의 놀라운 표적도 그 안에 감추어졌다. 더는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적으로 드려러나거나 천사를 보내어 말씀하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바란다는 것은 성경의 모독이다. 이를 보았다, 들었다,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저들은 말씀을 외면하는 일과 같다. 누가 죽었다 살아나 예수를 보았다더라, 천국에 갔었다더라, 하나님이 꿈에 계시로 말씀하셨다더라 하는 소리는 모두 거짓이거나 그의 신앙이 왜곡하는 자기 추구다.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하는 시절은 지났다.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한 구원의 말씀이 완성되었다. 너는 한 번이라도 몰두하여 성경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한 구절의 말씀을 며칠씩 입에 머금고 그 맛을 음미하며 일상의 소소함으로 감격스러워한 적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인 2월 10일에 여수 애양원 병원 수술실에 있었다. 그리고 3개월 가까이 입원을 하고 있느라 중학교를 1년 꿇었다. 실은 그렇게 해서 저 친구도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다. 그때 여수 애양원은 나환자촌으로 손양원 목사가 섬긴 애양원 교회가 있었다. 아버지는 짬을 내어 여수까지 오시는 날이면 교회의 승낙으로 새벽예배를 인도하셨고, 그때 지 장로라는 분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저는 맹인으로 교회 안에는 맹인 장로들이 예닐 곱 분 계셨다. 저들이 유명한 것은 성경 66권을 모두 암송하는 것이다. 나의 이름을 부르며 숙소로 찾아와 예배를 인도하실 때면 어린 나에게 본문을 읽게 하였고 내가 더듬거리며 읽다 틀린 부분에서는 저가 수정을 하여 다시 읽게 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몰래 저의 눈앞을 손으로 휘저으며 정말로 앞을 보지 못하는가? 궁금해하였다.

 

저는 서울대 경영학을 전공하고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던 중에 나병이 찾아왔다. 박정희 정권은 저들을 끌어가 소록도에 격리하였다. 전염성이 있는 양성에서 음성 판정을 받는 동안 저의 두 눈알은 빠졌고 사지는 뒤틀렸고 손가락은 곱아 마비가 되었다. 입은 틀어지고 코는 주저앉았다. 해괴한 몰골로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저들을 각 지역마다 나환자촌을 따로 두어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보장하였다. 그렇게들 맹인이 된 저들은 날마다 모여앉아 성경을 들었다. 듣고 또 듣기를 되뇌고 또 되뇌기를 수억 번은 되풀이 하면서 성경 66권을 모두 암송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까지 저들의 심경이 어떠할지, 나는 가늠할 길 없었다. 가까운 훗날 퇴원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던 나는 음울한 아이였다. 일 년에 한 번 병원에 들러 상태가 어떠한가 살펴야 했고, 그것은 내게 숨통 트이는 여행이었다. 완행열차로 밤새 달려 애양원 근처 간이역에 내린 어느 날, 너무 이른 시각이라 교회로 올라가 뒤편에 앉아 눈을 붙일 요령이었다. 그때 저만치서 맹인 장로들이 모여 성경을 암송하고 돌아가며 기도를 하는데, 순간 또렷하게 나의 이름이 지 장로의 목소리에서 불려졌다.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간 날이었다.

 

나는 저의 기도로 오늘에 있다. 이를 확신한다. 아버지는 애양원이 동기가 되어서였을까? 하나님의 예행연습은 곧이어 우리 가족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나환자촌 마을의 교회로 인도하셨다. 우리 삶에는 우연이란 없다. 어제의 만남은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바, 그 놀라운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이야기다. 친구는 하나님이 이미 우리의 결말을 다 알고 있다는 것에 불편스러워하였고 나는 하나님의 모두 아심으로 비로소 안도하였다. 어찌 되었든 주가 다 아신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복된 사실인가?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걱정할 게 없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복이 온다? 전도서는 이를 묵살한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전 7:15).” 그러니 열심히 살아서 일구어 놓은 생의 주인은 결코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리할 수 있도록 하신 이의 영광이다. 

 

나의 나환자촌 병원과 하필 그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이상한 계획을 그때에 누가 알았겠나? 내 인생이 지 장로를 만나고 저와의 3개월 여 시간은 가히 그림 같다. 맹인이 절름발이 소년의 휠체어를 밀고 동네 구경을 나선 날이었다. 저는 멀리서 걸어오는 누구의 발소리만 듣고도, 권사님 장에 가소? 하고 먼저 물었고 늙수그레한 목소리의 여성은 돌아간 입을 가리며, 장로님! 갸는 누구요? 하고 엉뚱하게 되물었다. 그럼 저는 응? 내 손주! 서울에서 왔네! 하고 너스레를 떨며 그 옆을 지나쳤다. 할아버지 장님 아니지? 하고 내가 돌아보며 물으니까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짙은 선글라스를 벗어보였고 저의 동공에는 눈알이 없이 움푹하니 비어있었다. 나는 저들의 기이한 몸이 신기하였다. 셔츠가 너풀거린다 싶으면 팔이 없었고, 바짓가랑이가 바람에 너무 휘날린다 싶으면 다리 한 쪽이 없었다. 그렇게 가끔씩 돌아보던 동네의 풍경은 어린 내게 무서웠던 기억보다 포근함과 평안함으로 기억된다. 분명히 맹인이 맞는데 혼자 사는 지 장로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 삶은 계란과 감자를 척척 내어주기도 하였다. 이이가 정말 눈이 안 보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후 결혼을 하고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여수 애양원에 갔다. 지 장로는 천국에 가신 뒤였고 같이 마주치곤 하던 권사님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동네를 둘러보는데 아이들과 아내가 질겁을 하여 서둘러 돌아오긴 하였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 4:6).” 나에게 저는 그러하다. 누구에게 이제 나의 남은 생은 그러하였으면, 하고 친구 앞에서 조심스런 고백을 하였다. 나 같이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죄인이나… 하나님께 있어 우리의 선함은 우리가 행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의 생이 얼마나 복되고 귀하고 감사한가? 이를 지 장로는 알게 했고, 강영우는 들려주었다. 하여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7-8).” 나는 저들의 생을 축복하며 나의 남은 날들로도 주 앞에 모두 드려지기를. 하여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시 116:1).” 하는 축복의 고백이 나의 생의 마지막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제도 친구가 오기 전까지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일찍 교회로 올라와 주께 묻고 또 구했다. 친구가 돌아가고 내 마음은 감사와 영광으로 벅차올랐다. 그렇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5).” 이를 어찌 말로다 알게 할 수 있을까? 이에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6-7).” 나는 이제 친구의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사랑한다. 우리의 남은 생이 주의 영광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인생으로 증명되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8).” 이를 누구보다 나의 곁에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친구에서 구차하지 않으며 망설이지 않고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어서 감사하였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9-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