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 15:23-24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시 88:9
찬송과 원망이 한 입에 있다. 한껏 주를 찬송하다 순간 원망과 저주의 소리에 잠긴다. 감히,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시 44:11-12).
졸지에 변덕스러운 하나님으로, 장사치로 자신을 두고 흥정하고 이익을 취하려하는 듯 진술하고 있다. 심지어는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3).
자신이 당하는 이 모든 조롱과 조소, 현실의 어려움이 모두 주가 꾸미신 일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4-16).
이 일을 주도하고 그리 내버려두는 것에 대해 그 분노를 하나님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잊지 않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17-19).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고 상기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의아한 심정이 들기도 한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기꺼이 그와 같은 모욕과 굴욕도 참으실 뿐 아니라, 이를 예배로 승화하여 받아주신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3-24).
나의 하루 중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가령 지금과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글로 쓰면서는 상당히 거룩하고 감사하다. 영광을 주께 올려드린다. 그러다가도 순간 돌아서며 욱, 하고 올라오는 원망과 설움을 본다. 현실에 발을 내딛기 무섭게 불평과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은 반복되는데, 이를 자신에게 전가하여 참고 누르면 억압이 된다. 남에게 돌려서 누구 탓을 하면 저주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고하면 이는 탄식이 되고, 그 노여움까지 찬송이 된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이 모든 것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앞서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곧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그러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23-24).” 순간 그 원망이 또는 노여움이 주를 탓하며 주의 종 모세에게로 향한다. 그럼에도 이를 그대로 받아 오늘 시편으로 묵상하면,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88:9).
살다가 순간 어떤 어려움이 왜 우리를 저울질하듯 힘들게 하지 않겠나? 한데 그 어려움이 우리의 이중성, 죄성을 드러내며 주 앞에 꿇린다. 부복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곤란으로 내 눈이 쇠할 정도로 눈물이 또 화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매일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를 향하여 두 손을 들게 하는 것이 그와 같은 곤란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견실하시다. 이를 앎으로 바울은 절규하였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3).
곧 나도 나를 어쩔 수 없음을 두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
가만히 주 앞에 서면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나 자신이 아닌가싶다. 돌아서기 무섭게 원망이 또 설움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때 당혹스럽다. 이처럼 말씀으로 충만하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를 향하여 입을 삐쭉거릴 때, 바울 사도는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5).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우리로 시달리게 하는 이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시 39:1).
시인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각오를 하지만 그러려니 그게 또 고역이라,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2-4).
결국은 주께 의뢰하는 일,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5).
이를 인정하고 주께 고하고 아뢰며 부복하는 것이 예배였다. 그리하여,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9).
나로 오늘을 살며 사는 동안에 주를 더욱 의뢰하게 하심으로 나의 나 됨이 주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려는 것,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를 인정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출 15:2-3).
주의 거룩하신 이름 앞에 나를 세워 주만 바라게 하는 일, 그리하여 우리 안이 분노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알게 한다. 우리 안의 질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신가를 알게 한다. 내 안의 경멸이 하나님이 악을 조롱하시고 멸시하심을 깨닫게 한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나의 타락과 하나님의 긍휼을 느끼게 하고, 나로 절망하게 하는 것이 내 안의 죄가 얼마나 끈질기게 나를 무너뜨리려 하는지 그러나 하나님이 이내 나를 어떻게 붙들고 계시는지를 마주하게 한다. 결국 우리 안의 수치가 주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내가 의뢰할 자는 오직 한 분이심을 바로 하게 한다. 이를 알게 하시려고 인생 곳곳에 ‘마라’를 두셨다. 인생의 쓴 물, 고난은 우리로 주의 구원을 알리는 자명종시계 같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80:4-6).
이를 앎으로 주께 아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출 15:6-7).” 곧 나의 원망으로도 찬송이 되게 하시는 주는 나로 하여금 내가 주의 자녀인 것을 명심하게 하신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11).” 곧 우리의 탄식이 탄성이 되게 하여 비로소 찬송하게 하신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3).
한 생을 다하는 동안 우리가 이를 알고 주께 고하며 감복하기를,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17).” 고로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18).” 이와 같은 고백이 어찌 누구나 아무나의 것으로 허투루 일삼을 수 있는 것이겠나? 그 속에 온통 뒤죽박죽인 감정들로 인하여 하루에도 골백번씩 찬송과 원망이 뒤섞이며 살아가고 있지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 8:6-9).
오늘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이 감복되어 그 감정 하나하나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까지,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곧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임을 그리하여 영원한 나의 치료자, 전능하신 나의 주가 되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니, 우리로 고난까지도 그 슬픔과 서러움까지도 주를 알고 주께 찬송하게 하려 하심인 것을,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시 80:8).
우리를 애굽에서 뽑아다 주의 약속의 땅에 심으신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의도적으로 하나님은 그 담을 허물어 우리로 수욕을 당하게도 하신다.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2-13).
때론 알 수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의 일하심을 두고 회의한다. 갈등하기도 하고 원망하게도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주께 부르짖는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시 88:1-2).
누구를 위로할 때 나는 종종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하고 권한다. 그런데 대부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 자신의 책임이나 당위적인 이유로 생각하여 스스로 궁지에 몰린다. 엄마로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이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수 없어 이를 마땅하게 여기면서, 힘에 부치니 그 속에는 온통 부정적인 감정들로 득시글거린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만큼 했는데… 하는 따위의 어려움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그때에 이를 꾹꾹 눌러 참는 것도 죄고, 누구를 겨누어 그 탓을 하는 것도 죄다. 그것으로 우리는 자꾸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로 바뀌어 가는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한 가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곧 하나님이 가장 역겨워하시는 일은 자신의 옳고 그름으로 자신이 어찌 알아서 하려다 이도저도 아닌 꼴로 뭉개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자기 안의 뿌리 깊은 감정과 자기 주변을 에우고 있는 숱한 어쩔 수 없음과 씨름해야 한다. 그러다 힘에 부쳐 주의 이름을 부르다 원망하고 심지어 주를 조롱하고 따지듯 다투려는 것처럼 주를 멸시한다 해도, 이것까지도 주는 받아주시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는 예배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시 88:6-7).
그렇게 주를 탓하고,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8).
오늘의 이 처지는 모두가 주 때문이라, 헛웃음이 나고 주를 모욕하듯 조롱하기도 한다.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0-12).
우롱하듯 하는 이와 같은 본심이 드러나고 나서야 자신의 실상을 본다. 얼마나 자신이 한심하고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인가 하는 것을,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3-14).
결국은 가장 두렵고 또 무서운 일은 주의 외면이다. 주의 침묵으로 우리 영혼은 숨이 다할 수도 있는 고통을 겪는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6-17).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60:1-3).
이를 인정할 때에, 반드시 듣게 될 것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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