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를 계수하라
민 4:29-30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시 143:5-6
레위의 가족들을 계수하고 저들로 성막의 일을 맡게 하였다. 그 가운데 므라리는 레위의 막내아들로 힘쓰고 가장 어려운 노역을 맡았다. 그 뜻은 ‘쓰다, 쓴’의 의미로 어렵고 궂은일을 맡은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성막의 널판과 기둥, 기둥받침, 말뚝과 그 줄 등 기구에 쓸 것을 옮기거나 설치 관리하였다. 그 일은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감독을 받았다. “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은 므라리 종족과 조상의 가문의 지휘관이 될 것이요 이 종족은 성막 북쪽에 진을 칠 것이며 므라리 자손이 맡을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뜰 사방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말뚝과 그 줄들이니라(민 3:35-37).” 그 사역이 고되고 어려워서 소와 수레를 다른 족속보다 많이 배당 받았다.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감독하게 하였으나(7:8).” 그 수가 적은 부족이었으나 큰일을 맡아 행하였고,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열두 성읍을 스블론과 루우벤, 갓 지파로부터 제공받았다. 그 중에 길르앗라못은 도피성이었다. 성전을 깨끗하게 돌보고 가꾸는 일에 충성하였다. 각각 레위 자손으로 성막을 맡은 일에 그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었고, 저들은 이 모든 일에 신중하고 주의하며 조심하였다. 곧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같이 하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가 할 일과 그가 멜 것을 지휘하게 할지니라(4:19).” 그런 가운데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20).” 이 두렵고 떨리는 일 가운데 궂은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 쉽고 수월한 일이 어디 있겠나? 다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존귀하심을 더할 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출 20:20).” 무얼 얼마나 어떻게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걸 얼마나 귀하게 정성을 다해 수행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는 실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히 12:21).” 곧 주의 일을 맡는다는 것은 가벼이 대충 여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더하신 은혜는 쉽고 가볍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분명히 엄중하고 엄위한 일인데 이 일이 가벼움은 주께 맡길 때이다. 나는 ‘주의 이름으로’ 주가 그의 이름을 위하여 하신다는 데서 안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시 143:11).
아이들을 마주하고 대하는 일에 있어 주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이유다. 주의 사랑으로가 아니면 내가 어찌 저들 한 영혼, 한 영혼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주시는 기쁨은 남다른 것이었다. 가령 아이들이 만든 단톡방에 묵상글을 올렸다. 누가 읽겠나싶지만 이는 내 몫이 아닌 것이고, 그 가운데 한 녀석이 ‘아멘’ 하고 화답하자 마음이 흡족하였다. 자연스럽게 기도로 시작하였고, 우리는 마치 그래왔던 것처럼 잠언을 펼쳐 읽고 어느 한 구절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직 글은 빈약하고 내용은 어수룩하나 그리 따라하고 행하는 데 있어 귀하고 흐뭇하였다. 특히 어제는 글의 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소재를 찾고 이를 전개하는 데 있어 그 예로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시편의 내용이 마치 나의 마음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5-6).
나는 저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고단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것이 내재된 내 안의 슬픔이나 원망으로 여전히 붙들려 있을 법한데 오히려 이제 찬송이 되었다는 말을 아이들은 어찌 알아들었을까? 왕따니 은따니, 따돌림이니 놀림당함은 예사였고, 소위 ‘학폭’으로 분류되는 모든 일을 겪어봤으며 그것으로 나의 학창 시절은 지옥 같았고, 더욱이 첫사랑과의 강제 이별은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지 진지한 눈망울이 제법 긴장을 하는 듯도 하였다. 그런 거 보면 그러려고 나의 지난했던 세월 가운데 나의 눈물과 노여움이 오늘에 찬송이 되게 하시고 남은 노여움은 없이 하신다는 말씀이 이것이었으려나!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나는 이제 이 말씀의 실제다. 당당히 아이들에게 나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나의 옛날이야기를 읊조리며 주의 행하심을 자랑할 수 있는 게 복되었다. 더욱이 한참 저 나이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첫사랑과 이별을 했다. 물리적으로 이사를 하여 인천으로 오게 됨으로 이별이 된 것도 있지만 가까운 어느 날 소녀의 삼촌이 찾아와 누가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였고, 이는 우리 둘 사이 때문이라는 말에 나는 겁을 먹었다. 고작 그때 나는 고1을 준비하는 중3 아이였다. 소녀는 당시 고3이 되는 것이고, 하긴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정혼을 하기로 한 이가 거절을 당한 것이니 그런 사달이 날 법도 하였다. 당시 나환자촌 특유의 문화나 생리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여하튼 그 일로 삼촌이란 이가 찾아왔고, 나더러 데리고 살 거냐며 윽박질렀고 그 사실을 아버지께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겁을 주었다.
사랑, 결혼, 나병, 우리 둘 사이의 아이, 가정… 순간 저이가 들이미는 언어는 폭력적으로 나를 위협하였고, 겨우 열여섯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것으로 저가 시키는 대로 연락을 모두 끊었고, 생의 첫 발판이었던 나의 의지는 보기 좋게 뭉개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당시의 폭압과 위협적인 학교 분위기는 나를 주눅 들게 하였고 나는 조용히 없는 듯 있는 듯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내 생에 가장 지옥 같은 날들이라, 어른이 돼서도 나는 종종 울면서 꿈을 깨곤 하였다. 그때 위로가 되었던 것이 특수학교였던 부개동 어디의 보육원이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곳에 가서 그곳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숨통이 트였다. 그러던 게 고2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을 때, 그곳의 ‘란희가 죽었다.’ 어쩌면 첫사랑을 대신해서 사랑을 다시 주었던 아이였다. 날 때부터 아이는 전신마비로 자라기를 멈춘 체구는 서너 살 아이 몸짓으로 자기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었다. 란희에게서는 이상하게 엄마 냄새가 났고, 살은 부들거려 젖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토요일이면 나는 란희를 안고 강단으로 가서 외부손님을 같이 맞이하였고, 저들과 어울리는 서너 시간이 가장 즐겁고 큰 위로가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란희가 죽었다.
내 인생에 가장 빠른 충격이었으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방황을 했다. 머리를 삭발하고, 기말고사 답안을 백지로 냈다. 곧이어 시작된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고 모진 하루하루였다.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독서실을 끊어 밖에서 생활했고, 그때 처음으로 술과 담배를 배웠다. 고3이 시작되고 어느 날 교련시간에 뜻하지 않은 소동이 일었다. 평소 나는 체육과 교련에서 모두 열외여서, 교련복도 체육복도 없었다. 그날은 궂은 날씨로 실내 수업을 하였고 선생은 교련복을 입지 않은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냈다. 누가 나를 지목하여 장애아인 것을 상기시키자 선생은 거기에 격분하였는지 아이들을 패기 시작했고, 나 역시 처음으로 야구방방이로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고작 두 대를 맞는 것을 나는 도저히 남은 한 대를 더는 맞을 수 없었고 그것이 선생을 더 화나게 했는지, 연신 뺨을 후려치며 앞드리라고 소리지르고, 나더러 몸이 아니라 정신상태가 썩어빠졌다며 교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대로 나는 학교를 나와 가출을 했다.
어설프게 담배를 펴대며 길을 걸었고 매서운 바람에 눈물은 금세 말라 팽팽하게 당기고 시렸다. 얼떨결에 뛰쳐나온 터라,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던 나로서는 한참을 걸어 란희가 살았던 보육원으로 갔다. 그래도 몇 년 정이 든 보모선생은 나를 반겨주었고 원장 몰래 밥을 내주고 잠자리도 봐준 기억이 난다. 다음 날 부모누나가 얼마의 돈을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무작정 ‘그 애’가 있다는 서울로 갔다. 소녀는 대학을 연거푸 떨어지고 창신동 어디 무슨 의상실에서 일하며 공부한다고 하였다. 근처 어디로 찾아가 3년만에 우리는 만났다. 객기어리게도 술과 담배로 나는 어른 흉내를 내었고, 이윽고 같이 밤을 새울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밖은 몹시 추운 3월이었다. 못 마시는 술로 속을 다 토하고, 정신을 잃듯 누운 나에게 소녀는 ‘나를 사랑하는지?’ 하고 물었고, 나는 아이를 쳐다보며 그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 애는 더욱 서러워서 울다 우리는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나온 그 애는 국밥을 사주고 내 손에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그것이 '나의 소녀'와는 마지막 만남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부산으로 내려갔고,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며칠을 그렇게 서러워하며 울다 돌아왔다.
어쩌면 생소하고 낯선 나의 이야기를 적당히 아이들에게 걸러서 들려주었고, 누구나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진지하였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다 돌아갔다. 우습기도 하지? 나는 오후께 길을 걸으며 이문세의 <옛사랑>을 들었고, 조동진의 <제비꽃>을 불렀다. 조동진의 노래나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는 ‘옛사랑’이 가르쳐준 노래로 한 번도 불러준 적은 없어도 그 가사를 적어 서로 노랫말을 한참씩 따라 읽고는 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더는 상처도 이제 다 아물었다 싶은데, 그 흉터를 바라다보면 기억은 생생한 것처럼… 슬픔이란 가끔 일이 그리되어지도록 하는 가학성을 가진다.
전에 오던, 자해를 하던 아이가 그런 말을 했었다. 왜 자꾸 손목을 긋니? 하고 묻는 나의 어눌한 질문에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은 사랑 받고 싶다는 어렸을 적을 마음을 되살아나게 해요.’ 하는 어리둥절한 대답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미련하였던 질문까지,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자 아이는 한참을 나를 보더니 ‘탱큐죠! 그럴 용기는 없으니까….’ 하는 말이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는지 아리고 슬펐던 기억이 중첩됐다. 걸어서 집으로 오다 나의 첫사랑과 자해를 하던 몇 해 전에 만났던 소녀와 이문세의 <옛사랑>과 조동진의 <제비꽃>이 한데 어우러진,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길로 멀리 돌아서 집으로 온 것 같다. 이렇듯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로 ‘일시정지’ 그리고 돌아보아 두고 온 것을 바라보게 한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그러는 동안 주의 은혜가 어떠하셨는지,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하는 오늘 시편의 의미를 되새기며 묵상하게 한다(5-6).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한다’는 것. 가만히 빈 방에 앉아 조동진의 <제비꽃>을 들으며 울고 싶은 감정을 일부러 내버려둠으로, 그 시간도 나의 소중했던 지난날의 한 이야기였고 더는 이 땅에서 란희는 볼 수 없으나 죽기 전에 옛사랑(?) 나에게는 여전히 예배당 뒤편 계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소녀로 남아있는 첫사랑(?)을 만나보고 싶기는 하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 것도 아무렇지 않게 나의 아팠을 혹은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듯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누구나의 이야기’는 이처럼 절절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모든 이야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나의 이 확신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선명한 족적이면서 오늘도 앞서 걸으시는 하나님의 발자국소리이기도 하다. 덧붙여 좀 이상했던 어제 일 하나 더, 아내 심부름으로 교회 앞에 무인 가게에서 부대찌개 1인분을 사는데 종종 내다보는 점원인지 주인인지, 아주머니인지 아가씨인지, 지난번에는 서비스라며 감주를 두 병 주더니 이번에는 5900원짜리 부대찌개를 사는데 9900원짜리 돼지고지김치찌개를 서비스라며 내주는 게 아닌가? 마침 가방 안에는 아들 간식으로 산 얼린 떡을 녹인 게 몇 줄 있었는데 나는 답례로 그것을 냅다 건네며 고맙다고 하였다. 서로 아니라며, 서로가 괜찮다고 하면서 서로에게 건네는 선물이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중에 그런 생각마자 드는 이상한 하루였다.
돌아보면 사는 게 다 공평하였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 적도 없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것도 없다. 그때마다 그만큼 또 줄 것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 기꺼운 마음으로 새삼스럽게도 감사의 실제를 열어보기도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의 ‘깨어진 마음’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거나 부서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단단하게 하여 다음은 잘 휘어지도록 하거나 다른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한다. 놀랍지? 조금 이른 욕심이었을까? 이제 겨우 시작한지 일주일, 세 번 만난 아이들을 두고 나는 너무 서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돌아오는 주일부터 예배를 다시 회복하고 이래저래 갈 곳이 없다면 우리 교회로라도 오라고 이를 때에 알았다. 구속의 시간은 언제든 성급한 때는 없다. 가장 서둘러야 하고 더욱 더 성급해져야 하는 게 구속이다. 저들 하나하나가 내가 저 나이 때 딛고 살았을 남모를 갈등과 어려움이 중첩되면서… 부디 주를 사모하는 오늘의 나의 마음이 앞으로 저들이 딛고 걸아갈 날들에서 풋, 하고 웃으며 새로 힘을 낼 수 있는 이야기 정도였으면 좋겠다. 나아가 마른 땅에 단비처럼 촉촉하여지는 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제 삶에 대한 환상이 없다. 용기 있게 살 수 있는 역량은 깨어짐으로였지 어리광으로 응석받이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누구에게는 저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되고 부진한 것 같아서 조바심이 쳐지겠으나 그 아이 또한 깨지고 깨어짐으로 얻게 될 주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권리가 있다. 모든 새는 껍질을 깨지 않고는 날개를 펼 수 없다. 이를 부모라는 이유로 그 기회를 빼앗을 수 없다. 보호나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저를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의 유년시절이 나 혼자 오롯이 견디어야 했던, 지긋지긋한 외로움의 순간들이어서 이제는 다행이다. 지금은 감사하고 사랑한다. 진정한 자신감은 주를 향한 무모한 신뢰와 저의 구속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함부로 살았던 날들조차 주가 함게 계셨다. 혼자 울던 날, 주가 함께 동행하고 계셨다.
모든 길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간 허다한 무리들이 있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걸어갔다(히 12:1). 그리하여 모든 길은 누구에게나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길은 언제나 거기에서부터 길이다. 나의 이야기가 누구보다 유별난 이야기가 아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곤 하는지, 결코 모든 이야기에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다. 혼자라고 느낄 때, 사는 게 다들 참 고단하기만 한 것을. ‘나, 너, 거기, 좀, 만져 봐도 돼?’ 보란 듯 판발로 앉아 있던 언제 여름 날, 나는 아이의 팔뚝에 선연한 자해자국에 자꾸 눈길을 주다 얼결에 물었다. 아이는 잠시 못 들은 척하다 입을 삐쭉하고는 시큰둥하다는 듯 ‘그래요!’ 하고 팔을 내게 내밀었었다. 그때도 우스웠던 것은 아이가 틀어놓은 음악에서 악동뮤지션의 <항해>가 신곡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손끝에 닿은 아이의 상처, 어떤 아픔, 아니 아이만의 항해를 연상하며 떨리는 손끝으로 여러 겹으로 줄이 그어진 아이의 팔에 손을 대어보았다. 아, 새들은 모두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사 40:30-31).
부디 나의 이야기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내가 아는 저들에게도 들려질 수 있기를…. 단지 어제 그 아이들은 나의 ‘첫사랑’ 이야기쯤으로 듣고 말았을까? 나는 흘리듯 무심히 하는 말이어도 주의 놀라우신 사랑이 아이들과 함께 하셨음을 믿는다. 글쎄, 아이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하루에 한 장씩 잠언으로 묵상글을 쓴다! 설마 하는 나의 어눌함조차 주는 능히 권능의 말씀으로 전달하신 것을 믿는다.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사 32:4).
주가 하신 말씀만 붙들 뿐이다. 내가 뭘 하겠나? 누구에게는 그저 불쌍하고 안 된 모습일까? 이젠 상관없다. 누구에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고 축복일까? 그것도 상관없다. 나는 이제 누구의 시선이나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별로 환상이 없다. 그렇든 말든, 이생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실상이 모두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란 나의 생의 참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아는 일이다. 그 징글징글하였던 나의 유년시절조차 지금은 누구에게 들려주다보면 사무치게 그립고 죽음조차 두렵지 않을 만큼 충분하였다. 내가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미워하였던 숱한 날들이 <옛사랑>의 노랫말처럼 혹은 <제비꽃>의 가사처럼… 그래, <항해>다. 우리는 모두 싫든 좋든 구원의 방주를 타고 나아가는 항해중이다. 그렇게 자신의 ‘구속 이야기’도 남의 모든 이야기도 같은 항해 길에 동행하는 같은 구속의 이야기다. 곧 우리가 닿을 항구에서 우리는 누구라도 모두에게 들려주어야 할 끝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시 143:8-10).
이는 결국 나의 이야기, 날 위한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6).
그리하여,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8).
곧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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