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7 주일
시편 83편
온 세계의 지존자
시 83:1 [아삽의 시 곧 노래]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시 83:17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시 83: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들어가는 말
경직된 신앙은 교조주의와 같다. 교조주의란 알아보지도 않고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이다. 뭐라 이르면 저는 늘 마음에 ‘나는, 안다’고 판단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돌았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다, 징계를 받고, 회개를 하면, 긍휼하심으로 용서를 하시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반역과 징계와 회개와 용서와 회복이 연속되었다. 그럼에도 항상 주께서 저들과 함께 하신 것은 주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주의 자녀라고 죄를 짓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죄를 일깨우면 뉘우치고 회개할 줄 한다.
오늘 날에도 우리의 문제는 죄를 짓는 것보다 회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신앙의 교조주의는 여전히 교회 안에도 팽배하다. 자신이 안다고 여기는 것을 각자의 판단에 따라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한다. 저들은 고질적이라 스스로는 이를 고칠 수 없다. 성경에서 그런 자들은 가장 먼저 가인이 있었고, 에서가 있었고… 후에 가룟인 유다가 있었다. 저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을 우선했다. 그래서 우리가 대화할 때도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나도 알아!’ 하는 사람으로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을 하기에 더 급한 자들이다. 고스란히 이는 신앙으로도 이어진다.
반대로 성경에서 바보처럼 우직했던 사람들은 노아가 있었고, 아브라함이 있었고… 우리가 아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우리가 흔히 ‘바보 같다’ 할 때, 저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으로 주어진 길을 무던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노아는 120년을 무던히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길을 떠났다. 다윗은 늘 도망자 신세이면서도 주를 신뢰하였고, 바울은 죽으나 사나 자신은 주의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이에 대한 바울의 설교 한 대목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고로 우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이 시대에, 이런 시국에 믿음을 붙들고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주 앞에 나온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고 우직하게 한 길 가는 바보들을 사용하신다. 이는 이어지는 바울의 설교에서도,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19-20).”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 밖에서 일하신다. 이를 역설적으로 설교하기를, “…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왜 우리가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주의 말씀 앞에 서야 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은 다윗의 3대 악장, 아삽의 후손들에 의한 시이다. 시편 73편에서부터 83편까지의 시 가운데 마지막 장의 시편이다. 시적 배경은 B. C. 872-848년에 남유다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절, 에돔과 암몬이 주변의 열 개 국가나 족속들과 연합하여 공격한 것이니 그 실상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시적구성은 3연으로, 1연은 1-4절로 원수들의 연합을 하나님께 아뢰는 내용이다. 2연은 5-12절로 하나님의 보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3연은 13-18절로 여호와께서 온 세계의 지존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밝혀준다.
1. 우리는 주께 우리의 소원을 재촉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83:1).”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요구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특히 어려운 사정을 말하고 뭔가를 부탁한다는 일은 여간해선 말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를 좋아하신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뿐만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사 42:3).” 하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0).” 이 얼마나 격렬한 약속이신가? 차라리 산이 떠나 옮겨갈지라도 주의 자비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다만 우리의 할 일은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것.’ 즉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에겐 이와 같은 든든한 배경이 있다. 오늘 시편은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시 83:2).” 하고 거침없이 주께 고한다. 저들의 현재가 월등히 나은 것 같으나, 말씀은 다시금 상기시킨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신 20:4).” 이를 알 때 우리의 회개는 자연스럽고 도약은 날마다 새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다시 정리하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주 앞에서 성결하고, 평강 가운데서 살아가기만 힘쓰면 된다. 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2. 세상 권세는 어쨌든 주의 자녀들을 공격하게 되어 있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5-8).”
사탄은 어떻게든 우리를 충동한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어떻게 해서든 우리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예수님도 이르시기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성경적으로 믿음 안에서 바로 산다는 일은… 반드시 세상과 부대낌이 있게 돼 있다. 남들은 다 괜찮은 일을 두고 우리는 갈등하고, 씨름하다 불이익을 감수하기도 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안 믿는 사회에서 잘만 살아간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령 내가 아는 누구는 공부를 많이 했다. 그리고 3대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저는 2년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직장 내에 관행으로 이어지는 악습들을 거부하다 저들의 공격적인 반응에 조용히 자신이 물러난 것이다. 특히 주일을 범해야 하는 일에서 저는 철저히 용납할 수 없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저는 외국인 벤처기업에 들어갔다. 그 회사는 한국의 뿌리 깊은 악습이 강요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국내 세금을 탈루하고, 자국으로 빼돌리기 위한 간계가 있었고 이를 알고 개선하려하다 저는 강제로 퇴직을 당했다. 물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일은 꾸며졌다. 저는 이를 용인하고 눈감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저의 정직함과 성실함은 동종업계에 소문이 났고, 서로 비싼 몸값을 부르며 스카우트 제의를 하게 되었다. 저의 모든 조건은 온전한 주일 성수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회사 생활이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람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신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 얼마나 많은 부정과 비리가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지키며 산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하는 말씀으로 굳게 선 자들이다. 세상이 아무리 연합하여 우리를 공격한다 해도, 그로 인해 당장의 불이익이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때 오바댜와 같이 B. C. 586년 바벨론의 포로 시절에도 주께 크게 쓰임을 받는다. 당시 다니엘도 그의 세 친구들처럼,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경우처럼, 이를 모두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신다. 요셉의 고백이 이를 증거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자신이 당한 고초까지도 모두 주의 영광으로 돌리는 것이다.
3. 하나님의 통치는 지존하시다.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시 83:17-18).”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잘 되는 것 같아도 우리의 믿음이 이긴다. 예수님은 일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곧 우리의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주의 긍휼하심과 사랑하심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개인적으로 나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어떠한지 확신한다. 87학번으로 전혀 엉뚱한 길로 갔던 나를, 97학번으로 기어이 신학교에 편입하게 하셨다. 그때 대학원 1학기를 포함하여 총 5학기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이가 있었다. 저와 나는 그럴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다시 엇나가 그 길을 포기하자 12년 동안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은 기어이 09학번으로 신대원을 하게 하셨다. 주의 부르심은 때로 가혹하다. 신대원을 3년 다닐 동안, 총 6학기의 등록금을 나는 내 돈으로 낸 적이 없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사 43:13).” 이와 같은 주의 선포가 나를 붙드신다. 이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면 누구라도 공통된 신앙 고백이다.
곧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곧 먼저 믿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확신은 필수다. 이것으로 안 믿는 가족과 주변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인이 돼야 한다. 예전에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에는 하나님도 더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저들이 아무리 교회를 쥐고 흔드는 것 같으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시 83:12).” 모든 통치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이와 같은 고백과 경험이 우리 신앙의 배경이다.
나오는 말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끝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분명해졌다.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시 83:16).” 오히려 우리는 저들을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기도처럼,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하였던 기도처럼, ‘저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한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이를 두려워할 줄 우리는 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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