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3 주일
시편 82편
선거를 앞두고
시 82: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시 82: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들어가는 말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는 미래를 준비한다. 베짱이는 현실에 안주한다. 그리고 미래가 현실이 되어, 추운 겨울이 닥쳤을 때 저들의 차이는 갈린다.
꽃 중에 아비요나라는 꽃이 있다. 저녁에 피어나 아침에 해가 뜨면 진다. 팔레스타인 지역, 특히 이스라엘의 성지 통곡의 벽에서 피어나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꽃도 한 번 피우고 진다. 아비요나는 불에 타도 그 뿌리가 깊어 다시 핀다. 꽃이 피는 시기도 모든 꽃들이 피는 우기가 아니라, 대지가 타들어가는 건기이다. 그때마다 흰 꽃을 피운다. 건조하고 메마른 4월에서 10월의 사막에서 아비요나가 핀다. 아비요나는 히브리어로 정욕(desire)을 뜻한다. 성경 구약에 히브리어로 한 번 표현되는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전 12:5).” 여기서 정욕이 그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아비요나의 히브리어 이름 ‘짤라프’는 민수기 27장의 슬라브핫의 딸들을 연상시킨다. 슬라브핫은 슬로브(짤라프)+핫(하드)의 합성어로 ‘날카로운 가시’란 뜻을 가진다. 짤라프(가시)+하드(날카로운)의 합성어로 짤라프하드라 불리는데,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민 26:33).” 그 딸들이 어느 날 모세에게 요구한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민 27:3).” 할 때, 여기서 ‘자기 죄’로 죽은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범하고, 안식일에 나무를 하러 갔던 나무꾼이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자기 죄로 죽은’ 것을 슬라브핫의 딸들이 자백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15:32).” 저가 슬라브핫이다.
아비요나의 꽃과 같이 슬라브핫의 딸들은 강인하였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가나안 땅에 대해 자신들의 몫을 당당히 요구한다. 당황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은 저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확인하신다. 우리가 알기로 가장 질긴 민족은 이스라엘, 가장 생명력이 강한 동물은 염소, 식물은 아비요나를 꼽는다. 아비요나의 생명력은 슬라브핫의 딸들을 연상시키는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어찌 그런 상황에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것처럼, 바위틈 낭떠러지에서도 굳건하게 생명력을 지키며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는 아비요나의 특성을 닮았다.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다윗의 삼대 악장 아삽의 지혜시다. 불의한 재판장-권력자에 대한 엄격한 하나님의 경고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땅의 권력자들을 판단하신다. 앞서 나는 오늘 제목을 다소 직설적으로 정하였다. 이는 서두 부분에서 ‘신’을 지칭되는 ‘엘로힘’이 하나님의 사자 곧 그의 쓰심에 있어 저가 세우시는 이 땅의 권력자들, 곧 통치자나 재판장을 일컫는다. 이에 오늘의 시적 화자는 중반부, 2절에서 7절로 미뤄 ‘하나님’을 지칭하며 이를 아삽이 표현하여 통치자들의 책임과 의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게 한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반부를 1절로 하나님이 세상 재판장-권세자들을 판단하실 것과 중반부, 2-7절로 불공평한 재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후반부 8절은 종말론적인 심판을 예고함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린 두 가지 분명하고 확실한, 그러나 두려우면서 엄연한 책임이 따르는 이 땅의 통치자, 곧 대선을 앞두고 우리의 올바른 판단과 묵상을 이끌고자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성향이나 판단, 진영논리나 사람들의 가치판단 기준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즉 부화뇌동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말씀이 기준이다.
1. 세상 권세는 엄연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시 82:1).”
이 땅을 살며 도저히 내 힘으로는 안 될 때 우린 법의 판단을 요구한다. 엄연히 교회 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성경은 이르셨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 6:1).” 그런데 어떤가? 교회가 자꾸 세상일에 휘말린다. 저들 방식으로 시시비비를 가린다. 이는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6).”
오늘 본문은 이때의 ‘신들’을 세상 주권자들로 지칭하였다. 세상 권세 잡은 자는 엄연히 사탄이다. 고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부디 교회에서, 설교 중에, 교인들이 안 믿는 자들처럼 누가 어떻고, 어느 정당이 어떻고 하며 싸우거나 갈리면 안 된다. 성경은 다만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곧 우리가 저들은 존중함은 저 사람, 저의 정당을 보고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함이다. 악인도 악한 날에 쓰시고자 세우신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대선을 앞두고 곧 우리는 선거를 통해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하는데, 누가 되었든 저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권세자이다. 이는 명백한 진리다. 제발 안 믿는 사람들의 말이나 주장, 유튜브에 의존해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 19:11).” 하면, 우리의 기준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으로 이 명백한 기준을 살피도록 하자.
첫째, 공평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시 82:2).”
우선은 별 수 없다. ‘나쁜 놈, 이상한 놈, 미친 놈’이 설치는 세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는 어른이 없다. 현자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 다들 자기주장에 거슬리면 애고 어른이고 막말과 막돼먹은 행동거지를 한다. 더는 어른이 없는 시대다. 점점 더 이제 각각의 이익단체가 주축이 되어 필요에 의해 누구를 지지하고 선호할 것이다. 거기에는 선과 악의 기준이 없다. 적당한 정치자금-뇌물이 오갈 뿐이다. 한데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 23:8).” 그러나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실용주의, 합리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는 필연적인 관례가 되었다. 점점 우리는 공평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공평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둘째, 사회적인 약자를 위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3-4).”
사람들은 내남없이 부자 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성경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 23:4).” 술을 즐기로 돈을 사랑한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딤전 3:3).”는 자로 선택해야 하는데, 성경과는 점점 멀어진다. 팔레스타인 지역, 사막 한 가운데처럼 점점 더 척박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권력자에게는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꼬이면 돈이 오간다. 중책이 끼리끼리 주어지고 그 값은 은밀하게 거래된다. 결국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그나마 그러 사람을 뽑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하시는데, 모든 교회 교단 총회장을 뽑을 때보면 세상보다 더 추악하고 험악한 무법천지가 되곤 한다.
셋째, 음흉하지 않고 숨기는 게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
음흉하다 하는 것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겉으로 사람을 보면 강단 있고 뚝심 좋고 배포가 지도자감인데,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다. 서로들 그 가족들도 뭘 그리 숨기고 사는 게 많은지, 오늘 시편은 일러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6-7).” 숨긴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고, 에두르던 저의 본색은 탄로 나게 되어 있다. 당장은 권력을 잡는데 급급하여 모르면서 아는 척, 나라와 민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척, 가난하고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척 할 수는 있겠으나… 그 삶의 궤적이 바뀌지는 않는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이해할 수 없고, 권력을 가지고 살았던 자는 억울한 이의 심정을 알 리 없다. 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신 16:18).” 공의는 음흉한 탈을 쓰지 않는다.
2. 우리의 영원한 상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결국 아무리 세상이 어떠하다 해도, 우리의 영원한 재판장, 권력자, 지도자, 상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세상 모든 권세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그래서 바울은 함부로 스승이 되지 말라고도 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함부로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7).” 이는 왜 그런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 곧 우리의 상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가령 저 위대한 지혜의 왕 솔로몬을 보자. 저는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은 자로 전무후무한 지혜의 통치자였다. 한데 저의 너무 좋은 머리가 저로 타협하게 하였는가? 주변국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고,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결탁하였고, 우상을 끌어 들여 허용함으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저의 통치로 나라는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철천지원수로 지냈다. 결국 이 땅에서 그 어떤 권세자도 공명정대할 수 없다.
나오는 말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우리는 겸허히 주의 뜻을 기준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람들의 이상을 좇아서는 안 된다. 이에 세 가지, 첫째, 공평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시 82:2).” 둘째, 사회적인 약자를 위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3-4).” 셋째, 음흉하지 않고 숨기는 게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
이는 우리 스스로 명심해야 할 것으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8).” 그러므로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행여 저가 미련한 자-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이면 5년 내내 국민들이 고생이다.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잠 17:12).” 부디 기도로 누군가를 선택하되, 호리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저의 살아온 삶을 보아야 한다. 그 주변을 에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저가 누구의 조언을 듣고 어떤 이를 등용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아니면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26:9).” 마구 휘둘어대는 권력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섣불리 주가 세우실 주의 권세자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에 말을 섞지 말자. 묵묵히 또 신중하자. 이 모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음을 명심하자. 우리는 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이에 뿌리를 바로 박은 아비나요와 같이 또는 슬라브핫의 딸들과 같이, 당장은 척박하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개미에게서 그 지혜를 배우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그리하여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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