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전봉석 2022. 5. 12. 04:49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 2:2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자신을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인생들의 교만함을 경고하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는 한나의 기도가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1-10). 시편의 많은 내용이 이를 인용하듯 서로의 찬송이 같은 것을 본다.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75: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92:10).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113:7-9).

 

곧 이를 이사야는 정리하기를,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사 29:10).”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진술한다. 구원을 구하고 감사를 감사할 수 있는 자를 높이 드신다. 뿔은 힘과 명예,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다. 한나는 자신이 당하였던 서러움을 주께서 물리치시고 자신의 뿔을 높이시는 데에 감사로 감사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저는 누구신가?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2).” 이와 같은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이를 다윗의 시로 읽어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5:2).

 

우리를 괴롭게 하는 온갖 것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몸의 허약함과 실패와 낙심과 좌절에 이르기까지 삶은 우리를 노엽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원재료로 삼아,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산다. 우리로 우리의 노여움이 찬송이 되게 하시는 것을 본다. 어제도 누구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이런저런 사정도 있는데, 교회가 연합하여 금식하며 함께 기도하는 어느 백혈병 청년의 남은 생을 두고 주가 응답하시는 것을 들었다. 일찍이 양 부모가 다 질병으로 죽고 두 형제만 남았는데, 하나는 모 대기업에서 일하고 하나는 전투기조종사로 복무하다 굴지의 항공사 기장으로 취직하고 결혼할 참이었다. 졸지에 닥친 병마로 형제는 서로의 백혈구를 이식하는 데 있어 한 번은 실패였고, 다른 한 번으로 이제 3개월을 넘기고 있는 셈이었다. 저들 형제의 노여움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기까지, 교회가 연합하게 하시고 곁에서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을 보게 하신다. 우리가 의지할 유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오늘 한나도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참된 복락이 무엇인가를 여러 시편에서 되새기게 한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143:8).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믿음과 비례하여 우리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사모하는 것일 텐데,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119:66).

 

말씀을 믿음으로 명철과 지식을 얻는다. 어제 누구에게도 이르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내가 미련한 자가 아니면 믿음의 사람인데, 그 경계는 주를 경외하는 데 있었다. 곧 두려워할 줄 아는 게 지혜였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

 

오늘 본문은 상대적으로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을 대비하듯이 병렬식으로 놓고 있다. ‘저들의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하고 규정하는 말씀이 두렵게 한다(삼상2:12). 그 행실에 대하여는 차마 열거할 수도 없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17).” 한데 이를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이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정의한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29).” 성경은 엄히 이르시되,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 그러므로 저 두 아들이 죽음이 한 날이고, 이를 표징으로 삼아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충실한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34-35).”

 

성경은 일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이것이 우리에게 맡기신 기업으로서의 자식들이다.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신 11:19-20).” 이는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인데,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욜 1:3).” 이는 우리 부모 된 자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를 따라 오늘 시편을 보면 ‘다윗의 메시야를 예언하는 시’로 일곱 편 가운데 마지막 편이다(2, 16, 22, 24, 45, 72, 110). 메시야의 제왕적 면모와 제사정적인 직분을 함께 예언하고 있다. 말씀은 이를 자주 인용하였다(마 22:41-45, 막 12:35-37, 눅 20:41-44, 행 2:34-35, 고전 15:25, 히 1:13). 이는 곧 하나님의 섭리와 그 불변하심을 찬송한다. 동시에 종말론적인 심판의 예언이기도 하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110:1).

 

곧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곧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오늘 이 말씀이 마치 하나의 기록으로 한나의 기도와 상대적으로 엘리의 최후를 대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고, 그 최고의 권능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2).

 

주의 권능의 규가 모든 원수를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44:5-6).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이 우리의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길 수 있음이다.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슥 10:5).” 주가 싸우시고 주가 승리하실 것이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 어렵게 이김이 아니라 넉넉히 이김이다. 이김은 여호와의 것이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살고 죽음이 주께 달렸고, 성공과 실패 또한 주께 달렸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주를 바람은 완고한 자신의 마음을 부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그 몸을 드리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 1:4).” 곧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4).” 아, 이와 같은 말씀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기쁨이 넘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10:3).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주의 권능의 날’ 곧 주의 통치가 실현되는 날에 주의 백성이라 불리는 자들이 한데 모일 것이다. 거기서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그러므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오늘의 무게를 달게 받으며 주를 따름이겠다. 그러할 때,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4).

 

예수는 우리의 죄를 완전히 속하신 영원한 우리의 제사장이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이는 선언이다.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7:17).” 하여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1).” 곧 주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111:7-8).

 

이미 정하여진 일, 저를 우리는 평강의 왕이라 부른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에,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110:5-6).

 

이 권능의 날에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6-7).” 우리 몸도 이 지구도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고, 우리의 새로워진 속사람은 완전하여져서 주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6:22).” 그러므로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7).

 

이 세상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이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더는 악의 권세가 머물 수 없으니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9).” 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회복될 것이다.

 

이를 오늘 한나는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 2: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