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대상 14:15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 67:7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13명의 자녀를 낳았다. 두로 왕 히람을 통해 건축 기술과 자재를 구해 왕궁을 건축한다. 다윗은 자신을 굳건히 세운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다윗은 블레셋의 2차 침공을 막아낸다. 사무엘서에서는 오늘 내용이 언약궤 운반 앞에 수록되었다(삼하 5:11-25).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높이시고 붙드신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창 39:6).” 주를 경외함으로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에 9:4).” 곧 우린 주의 사람으로 주에 의해 높임과 붙드심을 받는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20).”
그러므로 우린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6:5).”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도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의 주장, 나의 생각까지도 주의 것임을 아는 일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주가 싸우신다. 날 위해 앞장서신다. 나는 오늘 말씀이 가슴 울린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대상 14:15).” 어떤 어려움이 내 앞에 있다. 우린 그 일로 신음한다. 걱정이 앞서고 근심이 뒤를 따른다. 한데 말씀은,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신다.’ 이를 위해 ‘바로의 마음조차 하나님이 완악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신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출 14:4).”
이로 인해 우리가 당하는 것 같지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 다시 강조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 하나님이 날 위해 싸우신다. 이로써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28:7).”
아내는 요즘 걱정이 많다. 연로하신 장모님이 거동도 불편한데 팔까지 부러졌고, 뼈들이 어긋나서 결국 재수술을 하기 위해 인천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예약을 했다. 가정예배가 끝나고 장모님을 추석 지나고 우리 집으로 모시자고 하였다. 아내는 공부 중에 있는 아들을 걱정하였다. 그건 그때 가서, 우선은 앞에 놓인 문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인생의 이런저런 일들이 모두 주의 장중에서 돈다. 오늘 본문도 이를 확실히 하는 것으로 읽힌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하나님은 우리로 알게 하신다. 그런 뒤 ‘곧 나가서 싸우라.’ 마음에 주신 일을 이루는 데 있어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행하신다.
다만 우린 주께 묻고 주의 뜻을 구할 따름이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 무슨 일이 터지면 순리대로 주의 뜻을 따르면 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
아이가 오전에 와서 지난 주일예배에 벌초를 가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한 말씀을 같이 나누었다. 설교원고를 가지고 나는 주를 송축하는 것에 대해 전하였다. 송축은 감사고, 감사는 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능력이다. 중1 때 만난 아이는 어느새 서른을 내다보는 청년이 되었다. 글방에서 교회로 무사히 전환하고 그 신앙이 안착된 경우라, 나는 아이를 통해 또한 감사를 느낀다. 아들보다 한두 해 앞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치러 이번에 2차도 두 과목만 남기고 모두 통과하였다. 나는 요셉과 오바댜와 다니엘게 그 세 친구를 설명하며, 회계사라는 직업이 될 유혹에 대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뜻을 정해야 함’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으나 우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감한다. 하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저 아이는 누구보다 나를 오래보았고 목사 전과 후를 다 안다. 같이 내려가 오전 근무를 끝내고 온 아이와 같이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가운데 주가 함께 하심을 느낀다. 성공적인 삶이란 주께 묻는 것이 시작이다. 이는 늘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오늘 시편으로 이를 더욱 확실히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67:1-2).
우리는 한순간도 주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이를 인정하며 산다는 것,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우리가 구할 것은 명확하다. 오늘의 형편이나 사정은 막힘이 될 수 없다. 사탄은 이를 사이에 두고 부정적인 마음을 끊임없이 심어놓지만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느 9:31).” 누구도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아내를 그리 위로하였고, 아이와 말씀을 나누면서도 그리 강조하였다.
우리의 앞날을 어찌 알겠나? 형평과 사정을 따지면 답은 늘 묘연하다. 있다고 해서 쉬운 게 아니다. 없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 중심의 일이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참 자유는 느끼고 누리는 사람의 것이다. 구원의 길이 거기에 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27:1-2).
어려움이 없는 길은 죽음뿐이다. 살아 있어서 어려움도 있다. 하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나는 종종 아이 앞에서 무장해제를 한다. 저는 나의 앞과 뒤를 보며 자랐다. 한 번도 공백이 없이 글방 선생에서 교회 목사의 모습을 곁에서 보았다. 나는 저에게 나의 허물도 교훈처럼 드러내어 그리 살면 안 되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하고 이제는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말씀이 우리를 붙드신다.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3).
앞서 언듭 된 ‘주의 도’란 무얼까? ‘하나님의 뜻’,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길’, 곧 ‘주의 구원’을 뜻함인데, 이를 우리가 아는 것은 말씀으로다. 아이는 묵상글을 쓴다. ‘아픈 아이’는 성경을 필사한다. 아내는 저 아이들을 두고 기도할 때 ‘교회의 기둥’으로 삼으시기를 구한다. 이를 우리가 아는 것은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고로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분명 이생의 목적이 있으시다. 거저 왔다 거저 가는 삶은 없다. 할 때 우리의 절박함이 우리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도가 되고 간구가 되고 우리의 속 사람을 날로 새롭게 한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합 2:14).”
나는 늘 내 곁의 한 영혼으로 씨름한다. 아침 일찍 또 누가 호소하듯 기도를 부탁하는데 나는 묵묵히 저의 사정을 주께 고한다. 주가 다 아시면서 왜 저를 돕지 않으시는지, 주께도 저이에게도 나는 묻지 않는다. 이는 날 위한 것이다. 내게 맡기시는 일이다. 비록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듯하나 그것으로 온 마음을 다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집으로 오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아프다. 요즘은 이 일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싶은… 회의와 갈등을 사탄은 부추긴다. 한데 가만히 주 앞에 앉으면 우리가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맡은 게 아니라, 주께서 나를 위해 그 일을 두심이었다. 오늘 시편은 이를,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4).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럼에도 우리가 구별된 것은,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5-6).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내 코가 석 자라 해도 주가 또한 하게 하심은 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복도 주시려고 오늘의 어려움도 감당하게 하신다. 여러 문제와 문제가 끊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17:4-5).
그럴 수 있게 주가 앞서 행하신다는 확신,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9:11).
아이들과 나눈 대화의 주제도 이것이 전부다. 말씀으로 중심을 삼고 사는 삶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67: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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