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1 주일
시편 104편
천지창조
시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 104: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시 104: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시 104: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 104: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지난 103편에 이어 오늘 시편도 감사와 송축의 시다. 오늘 시편은 수백 편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찬송 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다윗의 시로 확신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표현이 103편에 이어 오늘 시편에서도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반복된다.
오늘 시편의 배경은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묘사시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이 첫째 날, 빛을 지으심을. 2-4절은 둘째 날 궁창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5-18절은 천하의 물을 한 곳에 모으시고 바다를 조성하시고 육지의 식물들을 창조하신 주를. 19-24절에서는 넷째 날로 해와 달과 각종 절지와 주야의 순환 질서를 제정하심. 25-26절은 다섯째 날의 어족과 조류 바다를 다스리게 하심을. 27-30절에서는 육지의 동물과 사람을 지으신 여섯 째 날을. 그리고 마지막 31-34절에서는 모든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일곱 째 날 주의 영광의 날을 찬송함으로 시의 구조를 다한다. 35절은 1절의 반복어구로 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송영 부분이다.
천지창조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본 진리다. 이를 인정하고 믿으려면 30절에 나타나는 바, “주의 영을 보내어” 우리로 믿고 알게 해주셔야 한다. 곧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모호하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진술한 후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하고, 주의 영이 우리의 생각과 지각을 주장시고 조성하셔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이해와 상식으로 감당할 수 없다. 세상 학문으로 증명할 수 없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 할 때 여러 가설이 난무하다. 이를 인정하는 길은 믿음이다. 시편은 광대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통해 우리의 무지를 알게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함께 여전히 우리 삶을 새롭게 조성하시는 창조과정, 주의 섭리를 바로 알기 위해 주의 영을 구할 것이다. 이때 하나는 ‘주의 영’ 곧 ‘성령’을 구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또 하나는 주의 영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역할과 사역을 담당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주의 자녀는 주의 영, 성령을 구해야 한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30-32).”
여기서 중요한 세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주의 영 곧 성령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신다(30). 이때의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다르다. 이후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하나님은 즐거워하신다(31). 이는 에베소서 1장에서도 밝히는 것과 같이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 우리가 이를 믿음으로 오늘도 매순간 우리를 새롭게 하심을 감사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게 한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 자연과 우주 모든 만물로 개선하게 하신다(32). 즉 우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산다. 그런 가운데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하고 베드로 사도는 설교하면서,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2).”고 한다. 왜 그러는 걸까?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13).” 즉 하나님이 모든 창조, 조성 섭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시편 63편 3절에서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곧 주의 목적과 그 뜻을 안다면, 욥과 같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곧 주의 인자하심이 내 생명보다 낫고, 설령 하나님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우리는 안다는 의미다(단 3:18).”
히브리서는 이를 더욱 확신하면서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히 11:39)” ‘이 사람들은’ 에녹부터 예수님까지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다. 증거는 받았으나 이 땅에서 약속은 받지 못해도 믿음은 한층 더 높다. 저들이 지킨 믿음은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41).” 즉 지금은 어떻다 해도, 죽음 너머에는 더 좋은 것이 예비되어 있음을 주의 영이 알게 하신다.
이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즉 주가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와 개인의 삶을 기꺼이 고난 중에도 감수한다는 것인데,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심은 팔자소관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때론 노여움이라 해도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 우리의 노여움까지 찬송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은혜이다.
바울은 꿋꿋하게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한다(롬 12:3). 왜냐하면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하고 베드로는 강조하는 것이다. 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
곧 우리가 어려움 중에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시는 은혜는 곧 능력이다. 우리의 특권이다. 권세가 된다. 그렇다면 성령은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행하실까? 다음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가?>를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1) 성령은 우리에게 치욕도 복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2)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안다. “…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3) 성령은 예수께서 구하시고 우리로 받게 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16-17).”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하나님이 주의 영을 주신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4) 성령을 주시면 우리는 분별의 영을 갖는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
5) 성령은 우리로 충성하게 하신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6) 성령은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2. 성령으로 하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우리도 즐거워한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33-34).”
글쓰기나 책 읽기는 작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공부도 하던 사람이 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주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숱한 회의와 갈등을 거치면서 더욱 확실해진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곧 적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도 감당할 수 있다.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느낌이나 생각으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즉 우리가 믿음으로 굳건하여지는 일은 ① 성령으로 봉사하고, ② 그리스도 예수로 오늘의 이 모든 상황을 통해 주를 자랑-찬송하고, ③우리 육체를 신뢰하지 않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여기서 ‘가만히 서서… 보라’는 것은 무관심하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실제 알지만 무슨 일이 터지면 누구라도 ‘가만히 있기’보다 ‘뭐라도 하려 한다.’ 조바심에도 못 견딘다. 하면 가만히 있다는 것은 온전히 주를 바란다는 의미다. “…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사 30:15).” 이는 매우 엄청난 능력이다. 은혜가 아니면 곧 주의 영이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누이 강조한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그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무슨 일을 두고 해가 어찌 하려 한다고 할 때 이는 일시적이거나 공격적이다. 하지만 주를 바라고 주께 기도함으로 맡기면,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심을 삶을 증명하게 된다(호 1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이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잘 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하나님께 맡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둘째, 오직 말씀-언약만이 유효하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1:24-25).”
셋째, 다만 하나님으로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6).”
결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자임을 명심하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5:10-11).”
그렇다면 <실질적인 우리의 일>은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면서 오늘 시편의 천지창조와 오늘도 이를 조성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조성사역을 살펴보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① 우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②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신앙을 연마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③ 영원한 영광을 위해 고난도 함께 받는 자로 성숙해져야 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④ 교만하지 말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한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그러므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시 104:1, 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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