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8 주일
시편 105편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시 105: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시 105: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시 105: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시 105: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들어가는 말
오늘 시편은 역사 시다. 시편 150편 가운데 역사 시는 78, 105, 106편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을 총칭한다. 역사 시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영적인 각성과 교훈을 제공한다. 선조들의 실수와 죄악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78편에서는 선민의 형성 과정과 출애굽과 다윗의 통치를 다룬다. 105편과 106편은 인간의 역사에 투영된 하나님의 언약과 그 사랑을 근거를 은혜로 제시하며 감사를 드러낸다. 105편에 이어 106편은 그 형식과 내용이 유사하다. 그 중 106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도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 통탄과 참회의 시다.
시편 105편은 선민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세 족장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을 토대로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오늘 시편도 다윗의 시로 보는 게 합당하다. 1-15절에 표현되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는 감격스러움을 노래’하고 부분은 역대상 16:7-36절 가운데 8-22절의 내용이 같다. 다만 오늘 시편 16절 이후 역대상 16장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시편 106편의 내용은 포로 시대 이후 작품으로 추정되어 다윗의 시로 보기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
오늘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연은 1-7절로 도입부라 할 수 있는데,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토대로 후손들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행사를 찬송한다. 2연은 8-45절까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자는 촉구다. 이를 세부적으로 나누면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8-23절로 출애굽 이전 족장시대의 언약사. 둘째는 24-38절로 하나님의 역동적인 구속 사역을 그리고 있는 출애굽 과정. 셋째는 39-42절로 광야시절을 통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넷째, 43-45절은 가나안 정복과 정착에 따른 총체적인 사역. 이상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우리의 찬양을 촉구한다.
본문 이해
1연: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1-7)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5-6).”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주의 판단이 온 땅에 있다. 그러므로 ①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아뢴다. 또한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나타낸다. ② 우리는 그의 기이한 일들을 삶으로 체험하며 찬송한다. ③ 우리는 주께 구함으로 즐거워 할 줄 안다. ④ 우리는 주의 능력을 구하고 그의 얼굴 뵙기를 항상 구한다. ⑤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행하시는 기적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것을 우린 항상 기억하고 감사한다.
‘출애굽’ 사건은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나타낸다. 곧 주의 자녀로 사는 것은 세상에 속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기이한 역사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이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그러므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곧 우리의 ‘출애굽’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
오늘 시편의 첫 구절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사명이다. 곧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하여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하는 고백이 우리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찬송과 감사다. 한데 이것이 고난을 통해 성장한다. 바울 사도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는 아이가 자라면서 성장통을 겪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몸도 마음도 장성하여 가는 것처럼, 고난이 없다면 영혼의 성장도 묘연하다. 어려움을 통해 우린 주를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주께로 나아간다. 오늘 시편에서 요셉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17-18절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저의 고난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한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의미’다.
욥의 고백처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는 것도, 베드로의 설교처럼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자손들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하신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므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3).”
2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자는 촉구: 세부적인 네 가지 사실(8-45).
1) 출애굽 이전 족장시대의 언약(8-23).
오늘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구속사역은, ①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 ②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영원한 언약이다. ③ 이 땅에서의 ‘가나안’은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난 뒤에 구별된 삶이다. 이후 장차 들어갈 저 본향을 암시한다. ④ 지금은 우리가 희미하나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는 모두 ‘기름 부은 자’로 세우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주의 선지자’들이다. 세상은 피폐해져 가도 우리는 말씀이 응할 때까지 이를 통해 단련된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게 하심은 장차 들어가 누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모형으로 알게 하심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곧 우리로 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하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감격하고 감사한다. 곧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2) 하나님의 역동적인 구속 사역: 출애굽(24-38).
70여 명의 적은 숫자로 애굽에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걸을 수 있는 장정만 60만이 넘었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크게 번성하게 하사 그의 대적들보다 강하게 하셨”다는 시인의 증거다(24). 곧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하는 말씀과 같이 오늘 우리는 저들과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열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27-35). 결국 우리로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출 수 없는 빛과 소금으로 산 위의 동네를 비추는 등불로 살아야 한다. 우리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는 향기가 되게 하시고,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누구라도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를 맡고,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안다. 이는 우리 행실을 편지처럼 읽히게 함으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3:3).” 하여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읽고 하나님의 산 증거로 삼는다.
3) 광야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보호와 인도하심(39-42).
우리에겐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사는 동안 이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주가 함께 하심을 알게 한다.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사 우리를 보호하신다. 또한 일상 가운데 우리가 구한즉 ‘메추라기’를 주시고, ‘하늘의 양식’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신다. 때론 반석을 열어 물이 흐르게 하시고, 마른 땅에 강물이 넘치게도 하신다. 이는 그의 말씀을 이루심이다. 아브라함을 기억하심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실체는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들은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하는 확답을 가졌다(히 11:1-2).
4) ‘가나안 정복’과 ‘가나안의 안착’은 하나님의 나라에 정착하는 우리의 찬송과 경배의 근거다(43-45).
이제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 즐겁게 주 앞에 나온다. ‘그의 택한 자’로 노래하며 찬송한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그의 나라를 소유하고 사는 증거다. 이 영원한 안식은 실현될 것이다. 더 이상 고통도 눈물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말씀을 따라 살 것이다. 우리는 회의하고 의심할 때도 있지만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이 모든 언약을 이루신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간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그런즉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곧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시 49:7).” 우린 누구도 구원의 값을 지불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다시 말해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한 게 아니라, 천국에 갈 자이기 때문이다.
나오는 말
한 생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는 그러한 예측 못할 상황에 이루어진다. 가령 ‘룻’의 경우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에브랏 사람 엘리멜렉은 그의 아내의 나오미와 두 아들의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다. 흉년을 피해 갔으나 엘리멜렉은 일찍 죽었고 십년 만에 두 아들 말론과 기룐마저 죽었다. 나오미에게는 두 아들의 자부인 모압 여인들 오르바와 룻이 남았다. 세 과부가 살 길을 찾아 베들렘으로 돌아올 때, 오르바는 모압 땅 친정에 남았고,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다. 룻의 신앙은 분명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 1:16-17).”
모압 땅 이방 여인 룻은 훗날에 다윗 왕의 외조모가 되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1-22).” 보아스는 룻이 베들레헴에서 맞이한 신랑이다. 이와 같이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0-21).” 이에 우리는 오늘의 여러 사연으로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불행한 일도, 슬픈 일도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계획과 섭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린 ‘하나님의 기이하신 역사’를 찬송하게 된다. 곧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저는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그러므로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 3:22).” 즉 전능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세상에서 출애굽 시키셨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지나 영적인 가나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의 권세로 우리는 죄 씻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시 105:7).” 하는 오늘 시편의 주제는 바로 이를 알고 우리로 찬송하게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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