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대하 1:7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8
역대기는 포로 귀환 세대들을 위한 선민 이스라엘에 관한 역사이다. 남유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선민의식을 새롭게 고취하고 영적각성과 교훈을 주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찾아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심을 통해 늘 앞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보게 된다. 인류 첫 살인자 가인에게도 ‘동생은 어디 있으냐’ 물으시고, 주인 사라에게 쫓겨난 하갈을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로 가느냐’ 하고 말을 건네시는, 하나님이 오늘은 솔로몬에게 물으신다. 그리고 동일하게 내게도 물으시는 것은 무엇일까?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
하며 우리에게 성경은 제시하는 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나로 어찌 행해야 할지 그 방법을 가르치신다. 오늘 솔로몬은 주의 물으심 앞에서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하고 아뢴다(대하 1:10). 자신을 위한 무엇도 아니라,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곧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구하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32:6).
주는 왜 이처럼 우리를 구별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이는 우리로 맡기신 사명이 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이에 우리로 주께 아뢰고 고하게 하신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40:17).
하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곧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 복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수 6:27).” 주가 함께 하실 때 또한 주가 세우신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73:23-25).
이를 붙들면 붙들수록 죄에 대해 단호하게 하신다.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렘 25:5).” 이에 우리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 12).” 이러한 말씀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문다. 입에 한 가득 머금고 천천히 소리 내어 읊조린다. 마음에 새겨 나로 간직하기를 원한다. 항상 먼저 나를 찾아오셨고, 붙드셨고, 돌이키사 새롭게 하심으로, 오늘 나로 주의 은혜를 덧입은 자녀인 것을 알게 하셨다. 이에 따른 고난은 복을 더하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 우리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어찌 행해야 할지. 첫째, 안심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둘째, 믿어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이는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아, 이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로 산다는 일은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6-7).” 여러 근심과 걱정이 끝이 없다. 그럴 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무엇인지, 주를 인식함으로 어떤 복을 받는지 오늘 솔로몬의 단면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대하 1:7).”
곧 저는 훗날에 이렇게 회상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26).” 곧 우리가 주를 신뢰하고 안다는 것,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면 나로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만 바라게 하시려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으로만 붙들려 살게 하실 것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를 알고 중심에 그 말씀을 두고 산다는 일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 16:29).” 하여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나는 의도적으로 말씀을 찾고 이를 옮겨 다시금 되새기며 우물거린다. 이를 삼켜 나의 몸 안 깊숙이 나의 힘이 되게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그때 나는 무엇을 들고 주 앞에 설까? 나의 수고와 애씀? 나름의 헌신과 희생? 과연 얼마큼의 것을 들고 서야 잘 하였다, 말씀해주실까? 그저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3).”
하실 때, 앞서 바울의 선언처럼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5, 8).” 내가 붙들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뿐이다. 다들 나름의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주의 사명을 완주한다지만 나는 갚을 길 없이 이 몸조차 드리는 것도 송구할 따름이다. 다만 그러한 데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왜 내게 이 귀한 은혜를 더하시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염치없는데 또 주를 찾고 부르며 보채듯,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83:1).
오늘 시인의 기도를 입에 붙인다. 이는 한순간도 나를 외면하시거나 허투루 나의 일을 다루시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어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오직 말씀만을 말씀으로만 의뢰함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나의 병적인 문제까지도 있는 그대로 주 앞에 서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2-4).
시시콜콜 엄마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주께 고한다. 이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사 41:13).” 그럼 달리 무엇이 나를 능히 해칠 수 있겠나?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이를 알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13-15).
주가 행하신다. 곧,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31:20).
그들이 나였고, 나는 주의 예정 가운데 택하심을 입은 주의 자녀인 것을. 이를 알게 하시려고, 잊지 않고 오직 주의 언약만을 붙들고 살게 하시려고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 49:2-3).” 이와 같은 확신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은 생을 다할 수 있을까?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너희의 구속자요…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3-15).”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나는 이처럼 심란한 마음을 말씀으로 채운다. 온갖 마음이 들락거린다 해도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곧 오늘 내게 두신 자리,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들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18).
나는 오늘 시인의 심정을 헤아리다 내 마음을 열어보게 된다. 그럴 때 마주하는 마음으로는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아, 여전한 나의 고집과 아집뿐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 일을 어찌할지. 이에 주님은 다시 알려주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할 때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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