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대하 15:7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 97:10
14장 9-15절에 이어, 아사 왕의 2차 종교 개혁이라 할 수 있겠다. 아사랴 선지자의 선포로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자세에 있음을 지적한다(15:1-7). 아사 왕은 이에 고무되어 성전의 단을 보수하고 하나님께 대규모의 제사로 언약의 갱신을 확인한다(8-15). 아사는 아세라 상을 섬기는 어머니 마아가를 태후에서 폐한다. 그리고 모든 우상을 가드론에 시냇가에서 불사르고 자신이 부친과는 구별됨의 증표로 은금 기명을 하나님께 봉헌한다(16-18). 이후 35년까지 저의 통치 하에서는 전쟁이 없었다(19).
저는 먼저 선지자의 말씀 선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순종하였다. 아사 왕의 모습은 훌륭하다. 이를 오늘 시편으로 되새긴다면,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시 97:11-12).
말씀은 빛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오셨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 14).” 저는 빛으로 오셨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이를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이에 우리의 진정한 화답은 아사와 같이 순종으로 그 말씀을 따르는 게 아닐까? 하면, 다들 복 받기를 원하는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다시 말해 모든 복이란 복은 다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기도하는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어떨 때 오히려 더 가중되기만 하는 것일까? 나는 국군의 날에 특히 바다 위에 떠 있는 엄청난 군함을 보았다. 그 위로는 수십 대의 전투기들이 들고 날고 세워져 있는데도 그 거친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 비밀은 평형수 때문이었다. 이는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거친 파도와 요동치는 선체에도 결코 침몰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 하였다.
이를 우리 신앙의 평형수로 이해한다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우리 신앙의 무게 중심을 잡고 있음으로 어떤 세파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천성을 향해 항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여기서 특히 세 번째 호흡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부분을 평형수로 본다면 곧 일련의 사건과 상황, 어떤 문제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란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한다. 곧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그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중심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있다. 이는 곧 기도의 첫 번째 호흡인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할 때 궁극적으로 이는 두 번째 호흡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에 우리는 동참하는 게 된다.
오늘 아사는 이를 위하여 말씀을 청종하였고 모후가 섬기던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저를 태후에서 직위해제하였다. 순종이란 결단만이 아니라 결행이다. 출항은 뱃고동만 요란하게 울려대는 신호가 아니라 정박하였던 곳을 떠나 항해를 시작하는 일이다. 이때 우리의 중심, 평형수가 되는 말씀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하여 시인은,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119:50).
곧 이와 같은 동참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이를 위하여 문제를 우리에게 던지신다. 한데 우린 문제에만 함몰되어 온통 주의 나라와 그의 거룩한 이름에는 관심이 없다. 문제 해결만이 목적이 된다. 친구가 혹시 이 글을 볼까? 저에게 끊임없이 닥치는 문제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한데 저는 늘 문제에만 집중하여 때론 그 내용을 상세하게 알리며 기도를 부탁하곤 한다. 물론 나도 내 문제를 놓고 주께 칭얼거리듯 조른다. 떼쓰고 징징거리기도 한다. 이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주님의 약속을 증표로 한다. 그런데 주님은 앞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러니 늘 내 안의 충돌은 힘겨루기 같다.
먼저 요단을 마르게 해주시면 건너겠습니다! 하고 나는 고집을 부리고, 주님은 믿음으로 먼저 딛고 건너면 홍해처럼 요단은 갈라져 마른 땅을 걷게 하시겠다고 한다. 나는 늘 내 문제부터 고한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다시 말해서 먼저가 있고 나중이 있다. 먼저는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다음이 구하고 바라는 것이다. 하면 그 순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할 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바로 이 차이! 한데 늘 나는 먼저와 나중에서 거꾸로다. 그러니 자꾸 출항을 미루고 요란하게 뱃고동만 울려대고 있을 뿐, 정작 어제나 그제나 다를 바 없이 그 자리만 맴돌고 있는 것 같다.
한데 성경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를 주목하신다. 하면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문제는 자연스럽게 더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과정이고 연마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의 구원은 출항을 시작한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행 2:40).” 이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듣고 행함으로 주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던 문제들로부터 놓여나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경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어쩌면 이와 같은 경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가 귀하다. 곧 더는 그럴 기회조차 없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그래서 문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느 9:27).” 이때의 고난, 우리의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채우시는 평형수가 된다. 할 때,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렘 26:13).”
이른 새벽에 이처럼 자유롭게 주의 전에 올라와 말씀을 찾아가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복되다. 날씨가 궂고 비가 내려 허리와 어깨는 아프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원하여 주의 전으로 나아오는 것,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0, 33).” 나는 누구보다 주의 이와 같은 돌보심 가운데서 살았음을 고백한다.
이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이와 같은 체험을 마음에 가지고 사는 자로서는 복되다. 세상 누가 마음에 말할 수 없는 비밀-문제가 하나쯤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이것으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그렇게 우린,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그러할 때 우리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97:1).
오늘 시편에서 1절 말씀이 압도적이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이와 같은 주의 통치와 섭리가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들까지도 다 이유와 목적을 두고 그리 허용하시는 것이라면, ‘땅은 즐거워하며’ 곧 나는, 내가 속한 모든 문제들까지도 즐거워할 때,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아, 실은 문제가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허다한 섬과 같아서 하나가 좀 해결되었다 했더니 또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허다하다! 그러니 여든일곱의 장모나 쉰여섯의 아내나 서른둘인 딸애나… 저마다의 문제를 어찌 해결할 수가 없다. 하여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한 마디로 주의 뜻이 먼저 이 땅, 곧 우리의 문제들 속에서도 이루어지시기를 바란다. 하여,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2:5).
그것은,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25:5).
다른 더 좋은 수를 나는 이제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주가 이루신다는 것,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4).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7).
정신 똑바로 차리자. 우리의 구원의 방주는 항해를 시작했다. 더는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에게 채우시는 문제라는 평형수로 우린 멸망당하는 세대들과 구별될 수 있다. 이는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이 변치 않는 항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사 5:16-17).” 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1:4-5).
공연히 허튼 데 마음 두고 문제를 어찌 해결하겠다고 하다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사 1:29-31).”
그러므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97:10).
우리의 할 일은 주를 사랑하는 만큼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는 것부터가 악이었다는 데서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하여 이제 우리 주님은,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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