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전봉석 2022. 10. 25. 03:50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에스라 1:2-3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편 119:49-50

 

 

B. C. 538년 바사 왕 고레스의 포로귀환 칙령으로부터 444년 느헤미야 주도의 3차 포로귀환 직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에스라의 신앙개혁을 중심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영속성을 강조한다. 이는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였다(사 44:28-45:3). 예레미야가 선민의 포로 기간을 예언한 70년의 시간,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렘 25:11-13).”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바사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붙들림으로 이스라엘의 귀환과 그 성전 건축을 명령하였다. 바사 왕으로 즉위한 원년 B. C. 538년의 일이다. 저가 비록 이방나라의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오늘 서두의 3절까지는 역대하 36:22-23절과 일치한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섭리를 우린 때로 알 수 없다.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 요셉의 고백처럼,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8).” 그러기까지 저의 환난의 고난의 시간은 무던함으로 주를 바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 오늘의 이런저런 상황이 더러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중에… 우리로 왜 말씀을 붙들게 하시는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시는 주님이 단언하시기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즉 하나님은 오늘 성경을 통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아 안다! 그 말씀에 대한 성취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이 놀라운 진리 앞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 나 같은 죄인에게 어찌 이 말씀을 붙들고 더욱 알고자 하게 하시는 것일까?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이는 바리새인을 향한 말씀이셨다.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이는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향해 하신 말씀이다. 또한 사두개인을 향하여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요 37:38).”

 

저들은 당대의 종교지도자요, 학자요, 권세 잡은 자들이었는데 어찌 말씀을 이리도 알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정작 하나님을 잘 알고 일생을 주의 앞에서 일을 수행하였다고는 하나 바리새인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고, 돈을 사랑하였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경건하게 살게 하려 하심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이는 천국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그리하여 우리는 ‘먼저’ 구할 것을 찾고, 바라고, 붙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두 번째로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과 함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썼다. 바울은 이에 대해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3).” 어째서 그럴까?

 

①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당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② 진리의 하나님의 능력을 무기로 삼게 하시기 위함이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하여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7-10).”

③ 우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하여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우심을 받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4-5).”

 

넷째, 우리의 몸은 속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이에,

 

①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② 더는 몸의 지배를 혐오하게 되고, 하나님의 법-말씀을 사랑하게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③ 이를 위하여 자신을 날마다 죽인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다섯째, 환난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줄 알게 하신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어제는 점심께 갑자기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프면 순간 당혹스럽다. 가슴은 눌리고 빈맥은 떨어지지 않았고, 변을 볼 수 없었고, 온 몸이 마치 흠씬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병원 어디를 가야 하나 서성거리다 집으로 가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좀 누웠다. 몸의 시달림은 정직하여서 속수무책이다. 즉 오늘 본문에서 바사 제국의 고레스가 명한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2).” 이렇듯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더러 허를 찌르듯 예측할 수 없다. 왜 저로 그 마음을 감동하게 하셨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다만 몸의 신호와 같이 주께로만 집중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3).”

 

일찍이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내가 누구보다 특별한 것은,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6).”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 3:17).” 왜 내게 은혜를 주시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그러므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하여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이와 같은 말씀으로 나는 육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오늘의 현실을 감내하며, 주어진 것에 충성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부디 그러할 수 있도록, 몸이 아프면 마음은 더욱 주를 바란다. 아니면 살 수가 없다. 고난은 극복할 수 있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영광의 날을 보게 한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 4:3-4).”

 

일찍 눈을 뜨고 뒤척거리다 교회로 올라왔다. 이것까지만… 여기까지만이라도 하자, 하는 심정으로 주 앞에 나를 둔다. 오늘 시편은 늘 나를 붙드신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119:49-50).

 

때론 이 몸을 가지고 산다는 일이 고달프다. 한데 이와 같은 고통이 나로 더욱 주를 바라게 한다는 데서 때론 놀랍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하여 나는 구한다. 이를 통하여 주가 하시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곧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이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그러시려고 고통을 두시는 것이면,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신 7:12).” 말씀을 늘 가까이 하게 하시려고, 나로 이처럼 주 앞에 붙들어두시는 것이면 이보다 더 귀한 사랑이 또 있을까?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9-10).

 

말씀을 떠나지 않고 살게 하심은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이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25).

 

몸이 아픈 게 절대 좋지 않지만 그로 인하여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심은 은혜이다. 누가 다 저녁에 요즘 직장에서의 감원을 두고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다.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 직장 내 괴롭힘을 두고도 힘들어하는 것을 아는데… 그와 같은 어려움을 통하여 주를 더욱 바라기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여기서 ‘무엇을 하든지’에서 오래 입안 가득 말씀을 물고 있다.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 40).

 

주의 의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1-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말씀 앞에 나를 가만히 앉히고,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예수님도 말씀 가운데 거하셨음을…. 고로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그리하여,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119:43, 49).

 

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말씀으로 나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