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0 주일
시편 112편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의 복
시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들어가는 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0-41).”
오늘 본문에 앞서 예레미야가 전하는 다섯 가지의 복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즉 ‘하나님의 기쁨’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만족할 때, 그리스도께서 존귀하심을 받는 것에 기쁨을 느끼신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바울 사도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그럼 어떻게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실 수 있을 수 있을까? 간단하게 정리하면 살든지, 죽든지… 즐겁든지 고통스럽든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만족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즉 <하나님의 기쁨 다섯 가지>,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 때 기뻐하신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 언약 곧 우리로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우리가 소망 중에 바랄 때 하나님은 기쁘시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기뻐하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이를 보다 실감나게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도 주시지 않겠나? 곧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이를 위하여 모든 것-생사화복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쁨을 이룬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우리 안에 두신 것을 기뻐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곧 오늘 우리가 남들과 달리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의 은혜와 은총을 누리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기쁘시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을 우리 마음에 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넷째, 경외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우리로 기뻐하신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곧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0-31).” 곧 내가 주를 바라며 주를 의지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잘 알기 때문이듯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다섯째,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신다.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1).” 이를 시인은 우리 자신이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80:15).” 하고 비유하였고,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104:16).” 하고 우리를 ‘여호와의 나무’로 지칭하였다. 이를 이사야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3).”
본문 이해
오늘 시편은 작가 미상의 지혜 시이다. 지난 번 111편과 같이 한 사람이 마치 쌍으로 지은 시 같이 공통점이 많다. 처음 시작이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것도, 각 행의 첫 머리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쓰였다는 것도, 무엇보다 111편을 설명하는 듯 시적정황이 전개되면서 112편의 시는 ‘감사와 경배의 예배’ 시이다. 그리고 ‘복에 대한 지혜’ 시이다. 본시는 시편 1편의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구성’과 같고, 시편 14편의 ‘인본주의자들의 비극적 결말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누릴 지복’을 비교한다.
시는 모두 3연으로 구성되었다. 1연(1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의인은 복을 받을 것을 선언한다. 2연(2-9절)은 우리가 누릴 복락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3, 6, 9절에서는 각각 ‘영원히’란 표현을 붙여 이 복이 일시적인 이 땅에서의 복일 뿐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설명한다. 3연(10절)은 복 있는 의인과 악인의 결말을 알린다.
1.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킴으로 누리는 복에 대하여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2:1).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10절 말씀,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할 때 저들은 우리의 결말 곧 의인들의 복과 자신들의 결국을 비교하며 절규할 것이다. 이에 오늘 시인은 ‘할렐루야’로 이를 찬송하는 것이다. 곧 이는 성경의 언약으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하신 성경의 약속을 우린 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이것이 앞서도 살핀 것 같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즉 이 복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이와 같은 일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이는 기독교의 놀라운 교리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4-6).” 그것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2. 우리가 누릴 복락의 현재성과 영원성에 대하여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2, 6).”
그럼 <우리가 누릴 이 땅에서의 복>은 어떤 것들인가?
① 만사 모든 일 가운데 복이 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3-6).”
②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7).” 그러므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6).”
오늘 시편에 이에 따른 것으로 ① 자손들이 잘 될 것을 약속하신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112:2).” 그뿐인가? ② 물질적인 축복과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③ 주의 공의 곧 주의 돌보심으로 우리의 명예가 보장되고,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④ 주가 돌보시고 긍휼을 더하실 것이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3-4).” 곧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바라는 모든 행복의 실타래가 꼬이지 않고 잘 풀릴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특히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하여 이를 잘 이해하고 배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9).” 하면서 우리의 인내가 아름다울 것을 설명하였다.
오늘 시편 5, 6절을 이어서 보면,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여기서 우리가 영원히 받을 복의 출처를 밝히고 있는데,
①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
② 일을 정의로 행하는 자
이들은 궁극적으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의인으로 구원하심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때의 은혜는 받은 자가 또한 베푼다. 그럼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여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곧 우리가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곧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일이다. 이 놀라운 진리,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 사람이 꾸어드린다? 그렇다면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눅 14:13).” 우리가 누굴 도울 때 생색을 내고 이를 사방에 알려 칭찬을 받으면 나중에 하나님께 받을 게 없다. 이에 예수님은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또한 우리가 공의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곧 우리가 주를 경외함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잠 10:7).” 저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으로 만족함을 얻고 사는 일이겠으나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6:22).” 고로, 오늘 시편은 우리가 ‘공의-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루는 정의에 대하여,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7-8).” 즉 여기서 우리가 정의로 행함으로 이루게 될 세 가지,
① 우린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의뢰한다.
② 마음을 굳게 정하여 견고함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③ 우리를 대적하던 것들이 받게 될 보응을 우리는 볼 것이다.
3. 복 있는 의인 우리와 우리의 대적인 악인들의 결말에 대하여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10).”
점점 더 사람의 욕망이 들끓는 세상이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소아성애자와 변태적 쾌락주의자가 늘고 있다. 돈과 탐욕의 시대를 지나 퇴폐와 폐륜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때론 이와 같은 현상 앞에서 두려움이 인다. 게임중독자가 늘고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혼재한다. 특히 게임 리니지가 성행하면서 더욱 악랄하게, 더욱 잔인하게 죽이고 죽는 일에 쾌감을 느낀다. 사람이 사람의 슬픔을 대하는 데 있어 이를 희화하고 농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때에 성경이 우리를 붙드신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을 인용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그러므로 우리는 이 추하고 더럽고 무뢰한 자들의 결말을 볼 것이다. 저들은 우리의 복됨을 보고 한탄할 것이다. 이를 갈며 후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죽어 소멸되기 전까지 자신들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산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10).”
우리는 점점 더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진다. 주를 경외함으로 자신의 성품을 쳐서 복종시키고, 날마다 죽인다. 이에 “그가(우리는)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9).” 오늘 시인은 확신한다. 더는 일시적인 재물과 쾌락에 정신 팔려 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진 것을 빈궁한 자들에게 나누어, 우리의 의는 영구히 보존되고 이에 우리의 영광은 그 뿔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10).” 이내 악인들은 사라져 영원한 멸망의 구덩이에서 고통당할 것이다.
나오는 말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8).”
우리도 저들처럼 죄인이다. 마치 저들과 달리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할 의인은 없다. 우리가 저들과 다른 점은 돌이킨다는 것이다. 곧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3).” 그러니까 우리의 돌이킴-회개-회심-거듭남은 오롯이 ‘주의 영을 부어져서 가능하였다.’ 이에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하여 사하심을 받았다.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성도를 위한 성령의 견인은 불가항력적이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도 어찌 그러할 수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① 우리는 말씀을 붙든다. ②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기뻐하신다. ③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셨다. ④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⑤ 하나님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신다.
그 사랑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이 놀라운 진리로 인하여, “…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영광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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