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욥기 35:7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편 33:4-5
우리의 의는 상대적이다. 하나님의 의는 절대적이다. 이 두 의는 서로 비교대상일 수 없다. 성경은 우리 사람을 일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곧 우리의 선행이란 게 우리끼리 견주어 서로 경탄하고 높일 수 있으나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2).”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를 자부하는 것에 대하여 엘리후는 지적하고 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욥 35:5).” 결국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71:19).
그럼에도 스스로를 높여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곧 이를 내세워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자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심지어 자기 의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는 어리석음도 많다. 성경은 이를 지적한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3).”
하물며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라면서 세속적인 유익을 바라고 이를 척도로 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엘리후의 지적은 그것인데,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욥 35:3).” 곧 욥이 한 말에 대하여 지적하는 것으로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9:21-23).” 이러한 욥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실제 의를 행하고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30:26).” 하는 실망은 우리에게도 흔하다.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인과응보적인 사고로 ‘~하면 복 받고, ~하면 벌 받는다.’ 하는 식의 인식에는 어쩔 수 없는 세속적인 기준이 따른다. 가정예배로 요즘 일부러 에베소서를 조금씩 읽고 이를 본문으로 우리의 창조 목적과 그 의를 설명한다. 장모는 그때마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 ‘그래서 복’이라 이해한다. 어제도 한참을 주변 이야기로 흐르는 동안 나는 성령의 내주임재하심을 바랐다. 내 임의로 이해시킬 수도 주입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성경을 풀어 말하였을 뿐 이를 받아내는 것은 저의 영혼의 일이겠다.
이것이 어디 늙으신 장모만 두고 느끼는 일이겠나? 주의 일을 두고 말하기란 나는 그저 말할 뿐이다. 듣는 이의 몫으로는 내가 나설 수 없다. 다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러하기까지 성령이 아니시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를 증거할 수 있을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이를 고백하고 알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결국 다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7).” 이것이 결코 모두의 소유가 될 수는 없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원리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그러니 우리의 참 복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고, 이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단 2:20).” 결국,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여 나는 전할 뿐이다. 마음을 주시고 그 기회가 오면 마주하여 주의 사랑을 나타낼 뿐이다. 이를 저가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그 둘은 내가 어찌 강요할 수 없었다. 다만 오늘의 ‘너와 나’는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는 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40:1-2).
이를 어찌 말로다 알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늘을 우러러 주를 바라고 구할 수 있다는 게 은혜 아니면 불가능하였다. 곧 우리가 주를 바라며 묵상한다는 것은,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77:12).
낮은 소리로 되뇌인다는 것, 내가 내 영혼을 향하여 선포하고 선언하는 일이어서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4).” 다만 그뿐이었다. 오겠다던 친구가 올까 하여 기다렸으나 이내 연락이 없었다. 오고 가는 일에 대하여 더는 조바심내지 않는다.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속 태우지 않는다. 하게 하시면 감당하는 것이고, 그것도 능력 주실 때의 일이어서 아니면 만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이를 나는 지혜자의 음성에서 들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6-18).”
‘지나치게’ 곧 내가 가진 의와 열심과 어떤 마음을 두고 이를 마치 의로 또는 악함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려 드는 것이 문제이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이란 게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같이 움직이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64:9).
결국은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고 만족할 수 있는 일,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10).
내가 하는 것을 내 스스로가 기억하고 이를 자부하는 마음이 모두 옳은 길을 훼방할 수 있다. 하여 우리 주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그런데 사람이 본디 그런가? 누구에게 주든지 혹은 받든지 이를 생색내고 알아주어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8:13).
우리의 악이란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겠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사랑하면 사랑해서, 의를 행하면 의를 행하여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이 난처한 상황을 묵상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3).” 주님은 그런 나를 알지 못하신다고 하니!
우리 안에 드는 마음과 주가 바라시는 마음이 이처럼 다를 수가…….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이를 오늘 시편으로 이어서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32:1).
아, 정답은 하나.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 저가 행하신 일 때문에도 아니고 앞에 뒤에 붙는 수식어, ‘사랑의’ 하나님, ‘자비와 은총의’ 하나님으로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로의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는 일.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하나님으로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4).
이 놀라우신 사실 앞에 승복하는 것이다. 나에게 어찌 행하심으로 그것을 두고 한정하여 마음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는 이제 어떤 ‘어쩔 수 없음’이 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이런저런 사연으로 사역을 중단하고 일선에 뛰어든 누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분명히 같이 있다. 그러고도 멀쩡하니 살 수 있다? 부르심을 받고 저는 분명히 어떤 뜨거움으로 선교 길에 올랐다. 한데 어찌하다 사업가가 되었다. 말로는 주를 말하나 장사꾼이 다 됐다. 이익을 남기려고 ‘남들처럼’ 산다. 저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하는 어떤, 그 속을 볶아대는 무엇을 무엇으로 견뎌내는 것인지, 무뎌지고 만 것인지.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1-12).
사는 게 고작 사는 날 동안의 일로 그칠 거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아는 복은 그런 게 아니지 않던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이 놀라운 은총을 알고도,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이를 아멘, 하고 다 알면서….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고로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이를 우리는 알아버렸는데 어쩌자고 다 와서 다른 것과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0-21).
주께로 가자.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라(사 25:9-11).” 주가 행하시기를. 그라하시면 우린 할 수 있을 것이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곧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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