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언 20:24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편 60:12
‘구원을 이루라.’ 하는 말씀을 놓고 아내와 장모와 같이 말씀을 나누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데 받은 구원을 이루라 하심은 무얼까? 또한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13-14).” 곧 그 구원을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 기쁘신 뜻으로 우리 안에 소원을 두셨다. 이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 시비가 없이 하라, 하시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풀어서 설명하며 실제 우리 생의 성장과정을 비유로 들었다. 하여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15-16).” 세상이 아무리 어그러지고 거스른다 해도 우리는 그리하여 빛을 낸다. 이 빛은 생명의 말씀으로 밝힌다.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은 그리스도의 날에 이는 자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는 길을 주께 맡김으로,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오늘 잠언은 그 이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곧 우린 거룩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하시는 말씀 앞에 주의한다. 그래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세상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것들로부터 항상 주의하는 일, 항상 순전하고 흠이 없게 살려하여, 이는 주의 권세 아래 사는 것이겠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15).” 오늘 잠언은 우리가 말을 다스림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 사는 것이다. 이를 시편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60:12).
주가 우리를 대신하여 상대하신다. 하여 우리는 사는 동안에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3).” 잠언은 지혜로운 삶의 특징을 알린다. 세상의 어그러짐 가운데 또 하나의 특징은 게으름이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4).” 거둘 게 없는 영혼은 그 구원도 초라할 따름이다. 고로 나는 나의 자리를 지키며 산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전 10:4).”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또한 담당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나는 무던하기를 기도한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앎으로,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10).”
믿음으로 가는 나라는 맞지만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누릴 수 있는 영광도 다르다. 곧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 같이 말씀을 나눌 때 내가 전하다 내가 나를 독려한다. 내게 은혜가 크다.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할 때의 영광이 있고, 이를 정리하여 퇴고할 때의 영광이 있고, 전할 때의 영광이 있다. 각각의 영광을 더욱 주를 사모하게 하는 것으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한데 나를 슬프게 할 때는 내가 저를 생각하는 것보다 저가 저 자신을 생각하는 게 적을 때, 내가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저가 스스로에게 바라시는 주의 사랑을 알지 못할 때, 사느라 그저 사는 일에 급급하여 진정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를 기뻐하는 삶을 살려하지 않을 때, 나는 순간 절망한다. 더는 뭐라 한들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나는 난감한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내게 두시는 마음이라니, 나는 저를 사랑할 수가 없다. 하여서 주의 사랑이 아니면 그 주의 마음으로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고백을 아뢸 때 주는 기뻐하신다. 내가 저를 생각함은 정작 저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마음을 두신 이로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11:4).
동생들 사역의 현장을 보고 있으려면 안쓰럽고 답답한데 이는 또한 내 안의 자랑이기도 하다. 마치 어릴 때 아버지의 가난과 역경이 저의 훈장이셨던 것처럼 어느새 이는 또한 우리의 자랑이 되는 것이다. 일련의 사태와 그 삶이 고단하여 왜 꼭 저러고 살아야 하나 싶을 때 도리어 감사도 나온다. 하여 우린 주께 고하는 것이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94:9).
주가 다 아심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그렇게 노아는 견디었고 요셉은 무던하였으며 아브라함은 순종하였고 다윗은 충실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덤덤하였고 바울은 강직하였다. 결국 육을 입고 살면서 육신에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우리 사람은 얼마나 거짓된지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그럴 때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를 수 있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러할 때,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곧 내가 누구에게 권하고 전하다 내가 그 앞에 꿇어 주를 바라게 되는 것. 이는 특혜이고 영광이었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40:9).
주가 내 안에 더하시는 마음으로,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45:2).
주만 바라며 산다는 일,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 32:29).” 이는 내가 줄 수 없고 권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널 위해 혹은 네가 날 위해 서로가 위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하여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여 섬김을 마다하지 않을 것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이는 가족을 떠나 그 이상의 교감이었다. 서로를 생각함이 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연결되었다. 이를 잠언은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16:7).” 이 놀라운 원리를 익혀가는 것, 우리로서 구원을 이룬다 함은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곧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일은 막연한 느낌이고 공허한 깨달음이 아니라 실제였다. 마음씀 그 이상의 어떤 관여와 교류가 있었다. 하여,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60:3-4).
우리로 흔들리고 낙심하다 깃발을 쥐게 하신다. 그리하여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주가 하시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이는 사랑이었고,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3).” 하신 대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오늘 우리가 이루어가는 구원으로 천국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5).
우리는 아뢰고 주는 이루신다. 주가 이루시는 데 있어 우리는 아룀으로 그 증거를 선명하게 마주한다. 생은 때로 고달파서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 28:67).” 그러할지라도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9-11).
우린 이를 지켜본다. 목격자로 산다. 하여 저절로 진술하고 고백하며 증거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142:5).
우리 안의 고백이 우리로 살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능력이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눅 11:9-10).” 이 놀라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하여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 기이한 현실을 산다.
점점 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그렇게 담대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1).
주께 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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