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잠언 22:19-21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62:5-7
솔로몬의 375개의 경구선집이랄 수 있는 잠언의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지혜의 근원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주를 경외하는 삶이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고, 인생은 이로 인하여 복과 성공과 생명과 승리를 맛볼 수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복된 인생이란 게 오늘 잠언의 핵심이다.
그럼 주를 경외함이란 어떤 삶일까? 첫째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것이다. 오늘 첫 구절은 이렇게 말문을 연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1).” 은총이라 하면 하늘의 주께서 만이 더하시는 것으로 나에게 주시는 유일한 은혜이다. 이름 없는 것은 비천하다.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은 그 처음 일이 모든 사물의 이름을 도하는 것이었다. 고로 이름이 없는 것은 비천한 것으로 우리의 신분사회에서도 사람을 천하게 여길 때 그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욥 30:8).” 고로 은총이란 사랑받는 자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귀히 여김을 받게 하셨다.
땅의 보화를 의미하는 은과 금, 재물은 허무한 것으로,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5).” 애지중지 마음을 두고 살 게 못 된다. 베드로도 이를 비유하여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벧전 1:18).” 이에 우리가 오늘 추구하는 땅의 영광은 하늘의 영광과 족히 비교가 되지 못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8-9).”
둘째로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근신하고 깨어있는 일이다. 오늘 잠언은 이를 슬기라 하여,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3).” 우리의 슬기로움은 장래의 일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럴 때 땅의 영광과 재물은 덤으로 온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4).”
이를 알고 스스로를 구별하는 삶,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6).” 영적으로 잠들었다는 그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하여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그러할 때 우리는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4).”
곧 주를 경외함이란 셋째, 말씀을 따라 삼가며 자신의 영혼을 보존함이다. 오늘 잠언은 이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5).” 영혼을 지킨다는 일은,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내리는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겔 7:19).” 마치 곧 죽게 됐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고 이것으로 심령을 족하게 할 수 없고 창자를 대신할 수도 없다. 그와 같은 허무함에 대하여 시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시 49:6-10).
그러니 인생이란 게 얼마나 속절없는 일인지, 단념 말고는 할 게 없다. 이를 보면서 우리, 주를 경외하는 자는 깨닫는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 29:9).” 우리를 형통하게 하는 게 무언인지를 아는 것으로,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1:3).
어떻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
이 놀라운 반동, 우린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것인데 이것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뿌리가 든든한 나무와 같이 자라게 한다. 그렇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이와 같이 나는 가끔 나의 이른 아침과 한 날의 수고가 말씀을 곁에 하는 일이어서 그 은총이 귀하다. 이 말씀은… 결코 나를 아무렇게도 두지 않으신다. 이는 아주 잠시 훗날에 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73:18-19).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가했던 이가 언제 들려온 소문에 이혼을 하고 거의 알코올 중독자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혹은 어떤 질병에 놓여 승승장구하던 그의 인생이 묶여 버렸을 때, “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8).” 그래서 난 누가 물을 때 ‘늘 그렇죠 뭐’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무던함이 감사하다. 이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저희와 우리의 차이는 언제든지 좀이나 동록이 끼칠지 모르고 도둑이 들지 모르는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이것이 주를 경외하는 삶의 결정적인 모습이다. 이 땅에 뭐 그리 미련을 두고 애지중지하는 것을 모아 살려하는지… 성경은 여기저기서 그러지 말라 이르신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민 16:3).” 사람들은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저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리석었다. 그저 다만 오는 잠언은 간곡하게 되묻는다.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19-21).”
그리고 단호하게 결론짓듯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26).”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 다만 앞선 이들의 삶의 기준을 살피고 귀히 여기라는 것,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28).” 그러할 때 묵묵히 누가 뭐라 하든지 자기 일에 능숙하여서 그런 자는 왕 앞에 설 것이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29).” 이를 이어서 오늘 시편으로 다시 되새기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1-2).
다른 무엇을 기웃거리는 이들을 보면 안다. 언제 곧 위기가 닥쳤을 때 저는 갈피를 잡을 수 없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이는 곧 있을 일이다. 누구는 알면서도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을 갔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이었다. 자신은 그럴 리 없다고 장담하던 것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있다. 주일을 한두 번 빠지더니 더는 개의치 않게 되었다. 같이 말씀을 나누며 기도로 어울리던 이들과 하나둘 멀어진다. 그 부모가 저를 두고 눈물로 호소하는 일에 지겨워한다. 오늘의 저는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딸애는 친구에 대한 소식을 덤덤하게 말하였고, 나는 들으며 할 말이 없었다. 너는 그게 부러운가? 하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자신도 알 것이어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어찌 강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3-4).
세상이 하려는 일이고 이 땅의 결정은 그러한 것을,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어느 가까운 훗날 후회가 또 슬픔이 광풍처럼 몰아칠 때, 비로소 아하! 하고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 13:4).”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이러한 말씀을 앞에 놓고,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5-6).
하는 내 안의 붙들림이 은총이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7).
이는 결코 아무나, 어쩌다, 누구라도 받는 게 아니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그래서 가끔은 누굴 위해 기도할 때 저의 ‘좋은 날’을 흔드시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오늘의 은총이 나로 하여금 주를 바라게 하심이었으니,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이를 알고 살아가는 일,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9).
인생 고작 이 나이쯤 되어서도 알겠다. 무엇이 그토록 귀하고 소중하였던가? 이제 남은 것들을 두고 볼 때, 노인이 되는 연습과 죽음을 대비하는 훈련과 그 너머의 소망을 간직하는 익숙한 마음이 절실하였다. 느닷없이 닥친 누구의 어려움을 보면서 혹은 저의 허무한 선택을 만류할 수 없을 때 나는 주를 더욱 바란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1).
이에 진정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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