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28:13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시편 68:19
하루가 금방 간다. 그런 가운데 평강은 아무나의 것이 아니다. 오늘 잠언의 첫 구절이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1).” 우리가 주를 믿고 산다는 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와 같은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 29:11).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꾸어도 모자람이 없으시다.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것이 복음으로 오늘 잠언은 우리가 이를 앎으로 성실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8).” 우리의 성실함은 하루하루 그 주어진 날의 충실함으로, 진정 하나님을 따르는 삶은 다르다.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4).” 오늘 잠언의 핵심은 우리가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 그러할 때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6).” 우리의 성실은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과 곧게 하신 것을 받아들임에서부터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그 손이 깨끗하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여러 유혹이 난무하는 때이다. 특히 비인격인 것을 유난히 사랑하는 시대다. 상대적으로 사람과 사람이가 기계적으로 바뀐다. 이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8).” 두 마음, 곧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이러한 현상이 너무 자주 들린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겠다는 것은 그때마다 자신이 좋은 대로 행함인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
해서 야고보 사도는 거듭 말하길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6-7).” 마치 보험을 하나 더 드는 일과 같이 이것도 저것도 놓질 못한다. 그러나 우린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 주를 향하다 받는 수모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여 우린 불의하게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늘 잠언 8절,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8).” 그 재산은 헛될 뿐이다. 차라리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37:16).
가난하여 부유한 삶이 있다. 불의한 재물은 그 끝이 가련하여서,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39:6).
그런 일이다. 보면 애쓴다고 애쓰며 살았던 세월인데 모든 게 손에 쥐었던 모래알 같다. 하여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욥 26:16-17).” 그 소유는 서로 다른 것이니, 누가 시무룩하여 기가 죽었다. 평생을 서초에 가진 아파트 하나 건사하느라 그것으로 대출을 얻었다가 애써서 갚고 도로 대출을 얻었다가 도로 갚고 하더니 더는 오른 금리에 맥이 풀렸다. 사는 게 지겹다는 저의 말에 나는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모르고 되풀이 하는 생활이 아니었다. 중년이 되어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1).”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그 허망함을 알 것도 같다.
모르고 하는 일이면 뭐라 이르겠는데 다 알면서도 여전한 고집이라,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그런데 어쩌겠나?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그저 나는 누구의 소식에 마음이 아스라할 따름이었다. 함께 주를 바라며 서로가 누구보다 주의 하시는 일에 감사가 넘칠 수 있을 것인데,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욥 28:12-13).”
저들은 내가 뒤늦게 주께로 돌아간다고 할 때 누구보다 만류하고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때 그 일이 나는 나를 위한 우정이고 사랑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서로가 다른 데 시선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잠언 14절,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하는 격언은 당연하면서 어렵다. 저들도 마음을 완악하게 하려 하는 그러려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세상을 더 가까이 하다 보니 하나님을 알지만 그 마음에 두고 사는 일에는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우리가 주를 경외함이란,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신 28:66).” 주를 멀리하고 살던 때를 확실하게 구분하면 안다.
그때는 나도 몰랐다. 나름 산다고 사는데 그 사는 일이 왜 그처럼 어렵기만 한 것인지, 이제와 보니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사 51:13).”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이에 가장 옳은 수단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5).”
우리가 주를 찾는다는 것,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신 8:11).” 주를 경외하는 마음은 주의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주의 사랑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한데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12-14).” 다들 그러하였고 여전히 그러한 자리에서 후회와 갈등 뿐 여전히 발버둥치는 누구의 일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무어라 말해주어도 저는 마다할 뿐이어서,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나의 가는 길이 정하여져 더는 내가 사는 게 아니어서, 나는 다행이다. 누구의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틀렸었다는 게 나는 이제 참 다행이다.’ 나의 선택 나의 판단에 있어 틀렸다고 인정함으로 맞는 답은 하나가 된다. 오늘 잠언도 이를 강조하는 것으로,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18).” 어쩌면 이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린 서로 미룬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운다. 누구의 권면도 꺼려한다. 나는 그러했었고, 그리 내가 옳은 줄 알고 저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틀렸다가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누구와의 대화에서 이제라도! 라고 말을 더하려다 그런 말에 귀 기울일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듣고자 하지 않을 때는 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나는 이제 이와 같은 말씀에 안도한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안다는 것, 오늘 시편은 이를 필두로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68:1-2).
이와 같은 결말을 알면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이와 같은 말씀이 귀에 들어온다. 그러할 때 우리의 성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2-13).” 무엇이 우선이고 먼저인지 알게 한다. 우린 말씀을 듣다 초가 녹아내리듯 마음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종종한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어떤 말씀이 혹은 찬송이 수천 년을 기다리며 나 들으라고 여태 보존되었던 것처럼 여겨져,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3-4).
나는 오늘 시편 앞에서 이제 여기에 있는 나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아직 거기에 있는 누구와의 대화를 마음에 새기며,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이와 같은 힘이 우리에게는 생겼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산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가령 감옥에서도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이는 저들이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도 같았다. 그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 능력이 된다. 이는 내 안에 주가 계심이었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7-8).
하나님이 우릴 앞서 나아가실 때 있었던 일, 내가 돌이켜 주의 길을 간다고 할 때 하나님이 먼저 달려가셨던 그 길을… 나는 이제 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주가 그리 행하심을,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9-10).
주의 언약은 분명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욜 2:19-20).”
이를 이제 내가 삶으로 내 편이신 주와 함께 누린다는 것. 그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19-21).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 온갖 질병과 어려운 현실과 마음의 숱한 갈등을 주가 쳐서 깨뜨리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이 구름 속에 있도다
(34).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3:17-18).”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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