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예레미야 6:15-16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시편 6:8-9
어제에 이어 묵상하는 것으로 북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타락의 길을 남유다도 걷고 있다. 저들을 보며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징계하심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것에 놀란다. 죄란 물들기 쉽고 그에 따른 관성이 붙는가보다. 오늘 말씀에서도 여러 차례 권면하고 경고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렘 6:15-16).”
이 어찌 된 일일까? 돌아오는 주일에 나누려고 말씀 초안을 잡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시 132:1).
하고 주께 호소하며,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2-5).
이는 솔로몬의 시로 추측되는데 저는 먼저 아버지 다윗을 사랑하신 하나님께 바라였다. ‘다윗을 기억하소서.’ 곧 그의 겸손을 아뢰는데 저는 서원하기를 주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결코 졸지 않고 안이하게 자신을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였다.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에는 성소가 있고 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다. 한데 오늘 본문은 저 시편과 달리 ‘옛적 길 선한 길’을 돌아보고 그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저들은 이를 거부한다.
오늘 시편도 이와 대조적으로 악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6:8-9).
우리가 주를 찾고 주를 바랄 수 있는 것이 귀하였다.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 누구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 ‘피난하라’하고 오늘 본문은 외친다.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1).” 드고아와 벧학게렘은 예루살렘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여기서 깃발을 들고 재앙과 파멸을 알려온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예루살렘에는 이를 들을 수 있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그만큼 우린 죄에 무뎌졌다. 모두가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다 물든다. 예수님은 경고하신 바 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 곧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은 우리에게 전하시는 경고다. 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스스로 걷어낸다. 보호하심의 울타리를 치우는 우매를 범한다. 아,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렘 6:2-3).” 하나님의 목장이요 장막을 열강이 와서 두른다. 시온의 딸이 멸절할 것이다. 이와 같은 두려운 경고에도 이를 귀담아 듣고 두려워 경계하는 자들이 없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 3:16).”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사랑에 대하여,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7-8).
이게 그렇듯 어려운 게 죄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라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서로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 않고, 이를 위해 허용하는 범주가 같다. 친구가 요가를 한다고 하는데 요가가 가진 이교도적인 요소와 우상숭배적인 문화를 거론해도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싱거운 소리 같다. 가르치는 이 또한 믿는 자라 한다하니, 어찌 이를 권면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게 우린 허용하고 서로에게 권한다. 죄란 요란하지 않다. 시커멓고 흉물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환한 광명과 같고 천사와 같아서 뭐라 이르다보면 나의 우려가 지나친 노파심이 된다. 마치 노이로제 같이 너무 신경증적인가 싶다. 그만큼 우리 곁의 생활반경이 우상숭배적인 것들로 물들어 있다. 의식과 분별이 무색하다. 서로 경계하고 권면하기가 민망하다. 당시 남유다가 그렇지 않았을까? 오늘 본문,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렘 6:4-5).” 이런,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뭘! 하면서. 우리의 허용은 늘어간다. 나타함은 서서히 아주 오랜 시간 타성에 젖는 법이다. 빠진 줄도 모르게 빠져드는 늪과 같이. 자, 일어나자, 했는데 저녁이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밤에 올라가서 요새를 헐자, 하고 다짐하였다가 도로 누워있다. 우리의 안이함이란 무뎌지고 둔감하여져 죄가 별스럽게 여겨진다. 북이스라엘도 그러했고 이를 보며 남유다도 그러했다. 서로는 그런가보다 하고, 그러려니 놓아두었다. 이때 성경은 엄히 소리치신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하여,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날이 풀려 오늘은 새벽에는 묵상을 끝내고 낚시를 간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위로할 사람이 둘이나 온다. 친구가 먼저 약속이 되었고 동생이 오겠다고 했다. 나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말씀 앞에 앉았다. 어떤 만남이 될지, 어떤 말을 해주어야할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이를 듣고 위로하는 데 있어 말이 없어도 말이 되는 시간도 있다. 서로 던져놓은 낚싯대를 응시하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때 성령은 우리 마음을 건드실 것이다. 말이 없어도 말이 되는 시간이 오가면서 조용한 대화가 바람을 타고 흩어질 것이다. 평소 자주 통화하며 했던 말이 있어, 서로 가만히 처한 일을 두고 생각하는 시간일 뿐이다. 우리의 만남은 주가 주도하신다. 나는 이를 의심치 않는다. 조만간 은퇴하고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하는 친구와 이런저런 불투명한 장래를 두고 주의 사역의 길에 생각이 많은 동생과… 나의 오늘은 가만히 같이 있음으로도 충분하다. 계란을 삶고 커피와 사과를 준비하였다.
일상이 주를 바람이라. 일련의 이런저런 일들이 유다 앞의 북이스라엘처럼, 교훈적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 주의 뜻을 바라는 것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우리는 항상 주 없이 살 수가 없다. 이런저런 일들이 문제가 아니다. 무심히 두신 일은 없다. 우리를 주의 자녀로 삼으심은 매사 모든 게 주의 뜻에 따른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오늘 말씀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렘 6:6).” 저들은 이에 순종을 잃었다. 자기들 생각이 있고 그 판단을 따랐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10).” 크게 와 닿지 않는 말씀과 들으려하지 않는 마음에는 별 수 없다. 타성에 젖은 마음은 습성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11).”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 때론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14).” 그러니 말씀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데 우린 이를 한사코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므로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16, 17).” 하는, 다들 그러하고 모두가 다를 게 없으니 서로가 태평하다. 이러한 때에 오늘과 같은 시간이라면. 친구에게도 동생에게도 물론 나 자신에게도 주가 전하여주실 좋은 시간이 될 터.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나훔 1:2-3).” 말씀이 큰 소리로 들릴 때, 우리는 이를 듣고 두려워할 줄 안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으로도 오늘 본문 24절,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그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두려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회개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면서 ‘옛적 선한 길’을 떠올린다. ‘다윗의 겸손과 서원’을 기억한다.
이내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렸음이라.” 이는 매우 두려운 일로 사명자가 그 부르심의 자리를 이탈하고, 가야할 길을 외면할 때 닥친다(30). 이에 오늘 시편은 어김없이 길을 열어 보이신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6:1-3).
두려워하며 주의 용서와 도우심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자로서의 근신이다. 깨어있음이다. 그렇듯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1-12).” 이를 알 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4).” 주가 내게 더하시는 오늘 하루, 일련의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들로 동생과 친구가 와서 한나절을 물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게 하실까?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말씀 앞에 묵묵히 앉아….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9).
주가 들으심이여, 주가 받으심이여. 나는 간구하고 기도할 따름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9).” 이러할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그러므로,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10).
우리로 힘들게 하는 오늘의 모든 것들이 우리로 더욱 주를 사랑하게 하시려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0) | 2023.05.12 |
---|---|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0) | 2023.05.11 |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0) | 2023.05.09 |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0) | 2023.05.08 |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