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12:2, 17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2:6
주를 외면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 같다. 저들의 형통함이 때로 우릴 어렵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알 때 우린 더욱 확고해진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하는 예레미야의 고백이 돋보인다(1). 하여 저는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이는 아삽의 시에 담긴 심정도 같았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1-3).
실제 내가 아는 자들 중에도 어찌 저 정도일까? 하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듯 잘 산다. 하는 일마다 번성하고 구상하는 것마다 돈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 편히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다가도,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17).
‘그들의 종말’ 곧 이 땅에서의 날이 셈을 할 가치도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될 때,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저들을 지으셨고, 오늘 여기에 두셨지만 예레미야의 시선처럼,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우린 저들의 모습에서 이상하고 안타까운 것을 느낀다(렘 12:2). 결국은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심을 붙들기 때문이다(17).
오늘의 실상이 전부가 아니다. 그를 따르고 추종하는 자들도 결국은 같다.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습 3:5).” 가령 동생이 겪는 오늘의 시련이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데 말이다. 설령 그를 둘러싼 이들의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라. 그 많은 돈으로 왜들 그러고 사나, 싶은… 본처와 자식을 두고 공공연하게 애인(?) 집을 서슴없이 드나드는 중늙은이의 행보라니. 더욱이 공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오만 가지가 불법투성이라, 그와 같은 사각지대에서 모든 게 위태롭기만 한데. 이를 당사자만 모를 뿐이다. 그러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오히려 우린 주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45:17-18).
그러나,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92:6-7).
우린 이를 안다. 알면 알수록 주를 경외하게 된다. 우리 곁에 저들의 잘 됨이 도리어 우리의 교재가 된다. 저들을 보고 악을 깨닫고, 주의 선하심을 구하게 된다. 결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9-21).”
가까운 훗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를 깨달을 때가 오나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2-23).”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두렵고 오싹하다. 정작 그 날에 ‘난 널 모른다.’ 하시는 상상을 하면 말이다. 나름 주를 믿는다고 믿고 선을 구하고 의를 행하며 산다고 살았는데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면… 더는 되돌릴 수 없는, 회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 이 낭패를 어쩌면 좋을까?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단순하게 나는 바울의 심정을 그리 읽고 품에 간직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나 그런 위인들은 있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오늘 예레미야도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2).” 혹시 그게 나는 아닐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내가 아는 아무개와도 거리를 두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저의 조언이 또는 격려가 때로는 나의 가는 길에 걸림이 된다. 현실적으로는 저의 말이 다 옳다. 실제 오늘의 삶도 저가 훨씬 나은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러나,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33:14-15).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게 실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뜻과 마음을 살피신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3).” 우린 저들을 보면서 이를 실감한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호 8:7).”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 처지가 어떠하다 해서 그것으로 굴하거나 우울해할 게 아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전 6:8-10).”
이에 오늘 시편의 한 구절 말씀이 새삼 귀하게 읽힌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12:6).
말씀을 머금고 오래 묵상하다보면 모든 말씀이 나를 향하신다. 내게 들으라 하신다. 내가 들을 수 있도록 주변의 실상을 열어 보이시기도 한다. 그리하여 늘 성공하는 삶으로 행복하려니 여겼던 누군가는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정신과를 다니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게 오래였다. 그래서 이를 술로 풀고, 애인으로 위로를 삼으려 하고, 돈으로 사람을 함부로 부리며 행세께나 하는 줄 아는데… 나는 저의 모습이 안쓰럽다. 안 됐고 불쌍하다. 곧 가까운 미래에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22:13).” 이를 저는 모른다. 그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데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두려워할 줄 아는 게 복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시련이 우리로 인내를 배우게 한다. 인내로 순종함을 알게 한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5).” 주가 되물으셨다. 이는 예레미야가 고향 땅 아나돗 사람들을 보고 들은 것을 놓고 위기감을 느낄 때 주가 던지시는 질문이었다. 이어서 말씀하시길,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6).” 종종 우릴 어렵게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가족인 경우가 더 크다.
늘 안 믿는 가족들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애통하며 주 앞에 호소하기를 권하고는 하는 이유가 저들의 결국은 차치하고, 저들로 주의 길을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내하며 애통하는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7-8).” 때론 이와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중적인 고통을 겪으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주의 권능이 우리에게는 잠재되어 있다. 주일 날 아이와 통화하면서도, 어제 장모와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럴 시간에 안 믿는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시라!
“내 소유가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것을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9).” 이 가혹한 현실을 나는 같이 고통 한다. 정작 너의 속에는 그러한 간절함이 있기는 한가? 하고 아이에게는 되물었다. 사랑하고 소중한 이가 당장 죽을병에 걸렸다고 가정하면 무엇인들 못하겠나? 하물며 그 영혼이 고작 몇 년을 더 못살고 죽는 것에도 그리 모든 슬픔이 응축되는데 영원히 놓일 저들의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을 과연 심각하게 여기기는 하는지?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헐며 내 몫을 짓밟아서 내가 기뻐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도다(10).” 오늘 본문이 비유적인 까닭은 그 결국이 너무도 끔찍해서이다. “그들이 이를 황폐하게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11).”
당장의 현실이 우선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린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 누군 세상으로 위로를 얻으려하나 우린 주를 바람으로 인내하고 연단하여 소망을 이루어간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죽으셨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그러므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오늘 말씀의 경고를 신중하게 듣는다.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6-17).” 이를 그대로 시편의 세계로 펼쳐 주 앞에 아뢰면,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3-4).
우리에게 산 교훈은 오늘 내 곁에 두시는 일련의 이런저런 일이었다. 어려움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래서도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5).
주의 탄식과 약속을 들을 수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6).
이와 같은 아름다운 표현이 정제되어 나오기까지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느 9:32-33).” 결국,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7-8).
우리의 현실은 우리로 바른 길을 가게 하려 하심이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살전 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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