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예레미야 14:21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2-3
유다에 가뭄이 내렸다. 앞서 재앙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아무도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마실 물이 없고, 들짐승이 고통당하며 모든 생명이 기갈에 헐떡인다. 이 모든 게 예고된 현실이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렘 11:22-23).”
이내 현실이 되어 고통당한다. 부끄러움과 파멸을 자초하였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 44:9).” 하심을 듣고,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시 16:4).
하는 기도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가뭄은 경고였다. 영혼이 가물어 황망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다. 누가 그리 고백하면서도 대수롭지 않아한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죄의 본질이다. 이에, 오늘 시인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14:2-3).
그에 따른 예레미야의 기도가 절절하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렘 14:21).” 우린 주께 아뢴다. 하면 주는 응답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이에 맞춰 예수님도 이르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자연재해로 가뭄은 물론 우리 영혼의 가뭄이 파괴적이다. 가뭄은 소멸을 의미한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슬퍼하고 피곤하다. 애통하고 부르짖는다. 오늘 2절,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결국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지혜자는 말하길,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잠 22:5).” 곧 가뭄이 이르기 전에 우린 우리 영혼을 지켜 패역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놓아두시면,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사 5:5-6).”
이를 듣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게 한다. 여러 사건과 상황으로 알리신다. 예수님도 이르시기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대이다. 이를 보며 우린 애통해한다. 주 앞에 두려움을 둔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하여,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32:5).
우린 이를 경험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시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 그 하나님을 늘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삶으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79:9).
이른 새벽 눈을 뜨고 주 앞에 앉아 말씀을 편다. 나와 내 주변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악해지는 세상을 두고는 경고의 말씀을 경계로 삼는다. 내게 두려운 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신 31:17-18).” 이와 같은 가뭄이 닥치기 전에, 행여 나의 현실이 되기 전에 우리로 주 앞에 돌이킬 수 있도록 오늘의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셨다.
누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 나는 이를 설명하려 애쓰고 저는 당면한 문제로 애쓴다. 아,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2).” 그리하여 누군 악을 악으로 여기지 못한다. 자기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면서도 그들을 탓한다. 어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나 또한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백성,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였을 때,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렘 14:8).”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처한 현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디에서 잊어버린 것일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이에 눈을 떠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그때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17-19).”
그렇듯 나는 일찍 눈을 뜨고 교회로 올라온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시간이 이른 시간이다. 개의치 않고 말씀 앞에 앉는다. 그러할 때에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하는 말씀이 나를 붙드신다.
어제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들고 나는 소리가 거칠었다. 고무나무 잎들이 파닥거리듯 흔들렸다. 나의 하루는 길다. 더욱이 혼자 있어 오롯이 길다. 오후께 잠시 누워 자기도 한다. 누구 전화로 깬다. 간단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사연이 오간다. 어떤 사연은 안타깝다. 그의 가뭄을 안쓰러워한다. 동조하고 들어주길 바라지 뭐라 일러 물꼬를 알려주면 귓등으로나 듣는다. 그리고 늘 똑같이 넌 어때? 하고 묻는다. 난 그야말로 늘 똑같다. 같은 한 날을 사랑한다. 그 속에 요동하는 물결이 있어도 어김없이 나는 같은 동선을 따라 아침에 교회로 나온다. 모두에게는 사무실이나 나에게는 주의 성전이다. 나는 그 곳에서 긴 하루를 보낸다. 아이가 선물로 준 상품권으로 성경을 새로 샀다. 밑줄 긋고 메모하는 몹쓸 버릇으로 책이 쉬 닳는다. 유진 피터슨의 책도 한 권 샀다. 창밖으로 건물들이 올라가면서 하늘이 좁아졌다.
나의 일상은 가뭄이거나 홍수이거나 동일하여 별다를 게 없다. 누구의 이런저런 상황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3-14).” 생각하던 것을 말해주려하나 저는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저 떠들기 위해 말하는 사람들의 단내 나는 말이 먼지처럼 날리는 것 같다. 가뭄으로 모든 영적 감각이 마른 것일까?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넌 어때? 하고 묻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32:6).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저의 사연을 듣다 해주지 못한 말로 주께 기도하게 된다. 누구의 이런저런 사연이 나로서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게 한다. 그들 사연을 다 아는데, ‘참새는 나뭇가지에 앉다 휘청하고는 시치미 뗀다.’ 그렇듯 또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여전히 그러고들 산다. 돌이켜 주를 바랄 의향이 없다. 그러니 뭐라 이른들…. 덕분에 나로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게 한다.’ 누구의 사연이 나로 주를 더 바라게 한다. 나도 속으로 외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갈 1:10-11).”
누가 어떤 말로 무슨 위로나 제안을 할 때 나는 저에게 사람을 그리 믿지 말라고 이른다. 말로는 무얼 못할까? 앞서 말이 나오는 경우 십중팔구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라, 사실은 서로가 남의 일에 사랑을 다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어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장모와 아내를 앞에 두고 전한 내용이다. 그야말로 서로가 정 떼려 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골이 깊다. 이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12).”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장모와 사사건건 모든 데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애달파 하는 아내나 다르지 않다. 뭐라 이르면 자신도 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후회가 또 밀려든다. 그러다 당신이 병 나! 하고 경고해도 아내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나의 이쪽과 저쪽을 보는 듯하다. 아내를 더 위한다고 하지만 장모의 고질적인 죄의식과 외로움을 위로한다.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일이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했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엊그제는 장모의 묵은 용변을 치웠다. 그때마다 알려야 한다고 아내는 핀잔인데 장모는 또 딸애의 수고를 덜어주려는지 자꾸 미룬다. 하루 종일 담겨있던 통을 비우고 세제를 풀어 닦는데 역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스킨을 발랐는데도 한 번 각인된 냄새가 떠나질 않는다. 문득 죄의 속성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본인은 무슨 냄새가 나냐며 짜증을 내시고 아내는 미칠 것 같다며 성화다. 누구 편도 들 수 없어 멀뚱히 주만 바라본다. 한 생이 가고 오는 일이란 게 이처럼 피곤한 일일 줄이야…. 부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렘 14:2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4:1).
아무리 그러한 세상이고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 해도 우린 이로써 주를 발견하고 바라고 주 앞에 자꾸 내려놓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아, 이 한 구절의 말씀으로도 모든 문제는 더 이상 문제일 게 아니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환난을 당하나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럴 수 있는 권능, 사랑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리하여 믿음도 있어야 소망이 오나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시끄럽기만 하다.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 자, 그러니 어쩐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5).
이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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