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 62:7
말씀을 붙들고 산다는 일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그러므로 때로는 말씀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허투루 주를 믿는다는 사람과 어울리기 싫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내 곁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 더는 상관하지 않으려고 할 때 말이다. 어쩔 때 이 ‘변화산’은 매혹적이고 황홀하여서 나만 알고 나만 들어앉아 아무하고도 상종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막 9:5).” 하는 심정으로 꼼짝도 하기 싫다.
바깥세상과 담 쌓고 뭔 난리가 나든지 어쩌든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외면하고 들어앉았고 싶다. 한데 말씀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6).” 내가 뭘 모르기 때문이라 하신다. 하고 이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외치신다(7). 저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돌아보게 하신다. 나로 주를 영접하고 목사로까지 삼으신 데 따른 이유를 알게 하심이다. 하여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도로 저잣거리 지긋지긋한 사람들 사이다. 사람들이 악다구니하고 모였다.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8).” 예수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물으신다.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17).” 아, 이 지긋지긋한 일상의 소용돌이여!
가끔은 그대로 숨어 나 혼자이고 싶은데, 주님과만 남아 말씀으로만 만족스러워하며 <어린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처럼 가보지는 않았어도 위치와 장소와 그 곳의 여러 풍속을 아는 정도이면 좋겠는데…. 그도 안 되면 혼자 만족스러워하는 ‘전등 켜는 사람’ 켰다 껐다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길을 밝혔다가 꺼두었다가 하면서…. 한데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8).” 사탄은 우릴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이 우릴 휘두른다. 아…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겔 34:14).”
그렇듯 평온하기를 바라나 순간 돌아보면 여기는 지옥과 다름이 없는 아귀다툼의 세상이었다. 언제 또 그렇듯 사람들이 모였고, 귀신 들린 자를 데려와서 시끄럽게 하는 것인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이 땅에 살면서도 위엣 것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들이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2).”
아무 연락도 없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아이를 두고 마음을 쓰다 접었다. 귀가하여 점심을 먹고 장모를 모시고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흐렸으나 공기는 훈훈하여 바람이 차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장모는 신난 아이처럼 옛날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아내는 듣기 싫은지 저만치 앞서 걷고, 나는 장단을 맞추며 휘적휘적 아파트단지를 돌다 커피숍으로 갔다. 따뜻한 녹차 라떼를 장모와 나눠마셨다. 장모는 연신 옛날이야기를 해댔고, 나는 누굴 말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아내는 지겨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혹시 아이의 문자가 올까 하여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차라리 덜 좋은 직장이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일 오후는 한가하였고 나의 몫으로 감사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전 5:18).”
우리의 날들이 한결 같으면 좋은데, 시련은 예고가 없고 불안은 그에 앞서 달린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주가 아니시면 살 수가 없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이르신 답은 간단하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 기도는 주께 아룀이며 동시에 어떠하든지 주를 찬송하게 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 62:7).
그러므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5-6).
살면서 이를 알고 누리고 살 수 있는 게 복이다. 주와 함께 한다는 일은 변화산에서 뿐만 아니라, 지겨운 현실 저 귀신들이 우글거리며 귀 막고 입 막고 불에고 물에고 집어던지는 곳에서도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나는 내게 허락하신 만큼의 능력으로 산다. 내 몫을 감당함으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또한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그러므로 맡기신 이가 감당하신다.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막 9:34).”
우린 얼마나 어리석으며 더없이 자신을 믿곤 하는지. 더러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과 견주어 저들보다 못한, 혹은 더 나은 것을 비교하며 혼자 씨름하곤 하는 일이다. 그때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36-37).” 주의 일에 하찮은 일은 없다. 내가 둘러보아 교회 안에 휴지 하나를 줍는 일에서부터 귀신 들려 불이고 물이고 가리지 않고 날뛰는 이를 권능으로 내쫓는 일에서도 모두는 어느 게 더 나은 게 아니다.
훗날에 그리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그런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3).” 그러니 서로 누가 큰가? 하고 다투는 일이야말로 속만 시끄러운 일이다. 누가 가끔, 이러려고 죽자고 박사가 됐나? 하고 절망적인 말을 할 때 나는 이를 말해주어도 저는 듣지 못한다. 그러느라 쏟은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가 높이 사기 때문이다. 이에 주님은 일갈하시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40).” 싸울 거 없다. 어느 것이 가라지고 알곡인지는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30).”
그러니 우리는 다만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누굴 뭐랄 거 없고, 스스로도 자책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장모 휠체어를 끌고 어슬렁거리며 생각하였다. 때론 마음이 어려운 것은 스스로가 괜히 주눅이 들어서이다. 돌아오는 길에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 앞을 지나는데, 길가에 주차장에 주차한 차들이 즐비하고, 그 사이로 야광조끼를 입은 봉사요원이 안내봉을 들고 질서유지를 하는 길을 지나오면서… 괜히 면구스러워서 할 일 없이 돌아가는 사람만 같아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 66:1).”
하긴 우리가 서로 견주어 누가 더 큰가하고 견주어 이긴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9:7-12).
누구는 여느 날보다 주일 하루가 바빠 죽겠다는데 나는 여느 날에 비해 주일이 더 한가하고 편하여 쉼을 누리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7-28).” 그래 그럴 거 없다. 나는 나의 몫으로 족한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삼아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 5:19).”
생긴 대로 산다고 주신 이가 계시고, 이를 인정함으로 오늘은 오늘의 수고로 감사할 뿐이어서,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20).” 곧 주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 땅의 논리로 상대적인 게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어서, 다섯이든지 둘이든지 맡기신 데 따른 충성이 옳은 거였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그러하면 또 그러한 대로 주가 더하시는 능력으로일 테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5-6).”
이에,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그러므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1-2).
세상이 무너지고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해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그리하여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스스로 들들 볶아대며 신앙생활을 하는 이도 있고 평온하여 주의 품에 안겨 말씀 안에 거하는 이도 있는 것이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그러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3-4).
아무리 세상은 요지경이라 해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5).
이보다 더 나은 걸 나는 상관없어한다. 그러든가 어쩌든가 나는 다만,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
그리하여,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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